표현의 자유는 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의 해석과 평가의 자유도 보장한다. 이는 결국 표현자에게 비수가 되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마침 역사를 표현의 수단으로 삼았다 제 발등을 도끼로 찍은 사례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나친 중국풍으로 방송 2회만에 광고와 후원이 끊기는 등 인공호흡기를 달게 된 SBS의 퓨전사극 조선구마사를 보자. 조선에서 뜬금 없이 중국풍 음식과 복식이 연이어 등장하며 고증 논란을 일으키더니 의심스러운 장면들이 잇따랐다.
특히 실제 역사에서 '용비어천가'를 지으며 선조들을 추앙했던 세종대왕이 극중에서는 "우리 6대조 목조도 기생 때문에 야반도주했는데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라며 깎아내린다. 태종 이방원은 환각에 빠져 고향 백성들을 도륙한다. 각색이라고 해도 불편한 수준이다.
우리가 아는 조선과 다른 모습이 계속된다. 궁궐은 중국인이 선호하는 붉은색으로 물들고, 급기야 굳이 조선족 등장인물이 연변 사투리로 농악무를 부르는 장면에서는 심증이 굳어진다.
2009년 중국이 조선족의 농악무를 자신들의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한 사실을 떠올린 시청자들은 전율할 수 밖에 없었다. 우리 역사와 문화를 충분히 파악하고 이를 뒤집어 중국의 동북공정 의도에 끼워 맞췄다는 확신을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그동안 조선사의 대중화가 이뤄진 덕분인지 네티즌들은 이것이 단순한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그 탈을 쓴 왜곡임을 지적할 수 있는 안목을 지니게 됐다. 국민 무시하지 말라는 말이 실감난다.
다시 대구 매일신문 만평을 보자. 5·18 당시 계엄군으로 분장한 종부세가 광주 시민으로 분장한 9억원 이상 주택 소유자를 구타한다. "대구 참사라면 풍자할 수 있겠느냐. 타인의 고통을 이용 말라"는 지적에 매일신문측은 "이 정부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할 수 있는 수단을 동원했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천안함 사건을 풍자하기도 했다"고 해명했다.
발언을 토대로 풀이하자면 만평에 굳이 5·18이 등장한 이유는 이렇게 해석될 수 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를 향해 "너희가 그렇게 존경하는 5·18로 한 대 맞아봐라"는 억하심정의 발로이며, 5·18을 대한민국의 역사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와 광주의 전유물로 대구 독자들에게 은밀히 각인시킬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이는 매일신문이 이전에도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반체제 가요'라거나 '5·18 당시 광주교도소를 며칠간 무장공격했다'는 등 5·18을 왜곡하는 글을 실어 왔기 때문이다. 하물며 사설에서도 '5·18 유공자의 특혜 소문에도 이를 잠재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며 잇따라 정치적 소재로 활용했다. 무려 매일신문 사주였던 천주교 사제가 전두환 정권 시절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했던 전력에서는 심증을 풀기 쉽지 않다.
필자는 지난해 7월 '광주의 짝사랑, 언제쯤 대구에 닿을런지'라는 글에서도 이같은 사태를 우려했다. 당시 "지역감정 조장 말라"는 선량한 시민들의 반응을 보며 씁쓸했는데, 실제로 사태가 벌어지니 더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을 기념하는 매일신문의 또 다른 글들이 공존함을 보며 서로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길 바란다.
이 사태에 한가지 사족을 달자면 민형배 의원은 '5·18 왜곡처벌법 1호' 타이틀에 목매지 말아야 한다. 엄연히 법조문에는 '예술, 보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아니한다'는 항목이 있다. 5·18 왜곡처벌법은 '5·18은 북한군이 조작한 폭동'이라는 식의 비특정 왜곡행위를 처벌하기 위함이다. "5·18 왜곡을 막는 법은 악법이다"는 말을 지역 유명 철학자까지 내뱉는 통탄스런 상황에 1호 적용은 명백한 왜곡행위여야 한다. 논란으로 분노를 야기한다고 해서 보훈처에 "처벌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기는 다소 일러 보인다. 처벌이나 법개정 의지는 5월 단체와 논의 후 드러내도 늦지 않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 [무등의시각] 흔들리는 대통령, 흔들리는 지역현안 호남은 또 정치 클리쉐에 당한걸까.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만들겠다던 윤석열 정부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표 광주 약속은 물론 균형발전 약속 어느 것 하나 전진에 방향타가 맞춰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12.72%'. 광주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보수진영 대통령 탄생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만들어 주었건만 불과 반년 만에 '그럼 그렇지' 볼멘소리가 심심찮게 터져 나오고 있다.얼마 전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이 공개됐다. 긴축에 초점을 맞춘 재정 기조를 감안하더라도 실망이라는 평가가 적잖다. 특히 지역화폐, 임대주택, 쌀값 등 소득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서민을 고려한 조치 측면에서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야당이 '정부의 나라빚 걱정을 오롯이 시민들에게 떠넘긴 약자 실종 불공정 예산', '참으로 비정한 예산'이라는 쓴소리를 내뱉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물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광주는 2년 연속 3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국비를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굵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 대거 포함된 덕이다.그렇다면 대통령의, 집권 여당의 호남 챙기기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까? 답은 '아니오'로 기운다.인공지능, 반도체 등 신 경제 미래먹거리 분야에서 타 지역에서는 구현해내지 못한 무형의 아이디어를 대거 유형의 사업으로 전환했던 광주의 작전이 먹혀 들어갔다는 평가가 더 많다.윤석열 대통령의, 국민의힘 차원의 지역 현안 사업 국비 반영 노력이 아닌 광주시의 '개인기'가 더해진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기간 우리 지역에 약속했던 공약 이행도 낙제점이다.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반도체나 인공지능, 미래차 육성 분야는 일부 포함됐지만, 공약 사업인 달빛고속철도와 서남권원자력의료원 등은 누락됐다. 대통령의 약속이 관계부처의 반대(구체적인 정부 기본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도 포함되지만)에 발목이 잡혀버린 우스운 상황만 연출됐다.국민의힘이 전국에서 가장 먼저 광주를 찾아 개최했던 예산협의회에서 약속한 사업도 삐걱거리고 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지난 7월 전남대학교병원 신규 건립과 관련해 "예산 당국에 부탁을 해서 1차적으로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으로 집어넣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당 차원에서 기획재정부와 전남대병원 새병원 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협의했다고 공식화 한 것이다.하지만 결과는 대상 자격 미달. 용도변경을 완료하지 않은 병원 측의 미숙한 행정 때문이라고만 몰아세우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잖다. 앞서 전북, 경북 등도 도시관리계획 변경 전 예타 대상 사업으로 선정된 경우가 있었고, 이번 예타 대상 포함 사업 가운데서도 유사 사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균형발전에 역행하는 수도권 중심 정책도 '말뿐인 지방시대'로 가고 있다.반도체 학과 증원과 수도권 공장 증설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수도권 중심 정책 강화, 국정 과제에 포함된 기업의 지방이전 공약과 투자 촉진도 반대로 가고 있다.대통령의 지지율이 좀처럼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점도 '尹표' 지역혁안 정책 표류 우려감을 키운다.취임 불가 80일 만에 20%대까지 추락했던 대통령의 지지율은 현재까지도 30%대 초반을 겨우 회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지율 지진에서 버팀목이 되어 줄 여당마저 불협화음, 갈라치기 등으로 내홍 중인데다 여사를 비롯한 대통령 주변 논란까지 끊이지 않고 있으니 국정을 온전히 주도 할 윤 대통령의 모습을 언제나 볼 수 있을 지, 언제고 볼 수 는 있을런지 의문 부호가 달린다.겨우 5년이다. 대통령의 정책 집행을 위한 씨앗을 심을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석이 제대로 쌓이지 못하면 '지역맞춤형 성과내기'도 난망에 그칠 것이다.윤석열 대통령의 지방시대가 허울뿐인 약속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본다. 주현정 무등일보 취재1본부 정치행정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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