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청와대 정부'가 '복지부동'을 키웠다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1.11.23. 09:33

'청와대 정부' 체제하에선 무엇보다도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명하복을 생명처럼

여기는 '군대'가 돼 버린지 오래다

'청와대 정부'는 관료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 관료를 개혁 대상으로 보았다

청와대가 어떤 큰 방향은 제시해 주더라도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만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 모든 걸 꽉 틀어쥐고 일방적인

지시만 내려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겠다는

발상, 이게 바로 복지부동을 키운 이유다

지난 7월 2일 대통령 문재인은 '소재·부품·장비 산업 성과 간담회'에서 "기습 공격하듯이 시작된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자립의 길을 걸은 지 2년이 되었다"면서 "오히려 핵심품목의 국내 생산을 늘리고 수입선을 다변화하여 소부장 산업의 자립도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갖게 된 교훈은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도 우리의 강점을 살려나가되, 핵심 소부장에 대해서는 자립력을 갖추고 특정국가 의존도를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라고 했다.

가슴 뿌듯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4개월 후 '요소수 대란'이 터졌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를 향해 전진했다"고 선언했었지만, 보통사람들에겐 이름도 생경한 요소수 하나 때문에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4개월은 짧지 않은 시간이니 '소부장의 교훈'은 잊었다고 치자. 중국이 요소수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처음 발표한 게 10월 11일이었지만, 청와대는 11월 5일에서야 TF 팀을 꾸렸다.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11월 9일 한겨레는 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에 요소 비료 문제 정도로 생각했고,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 등 해당 부처에서 중국의 요소 수출제한 조처의 파급 효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청와대의 반응을 전했다. "대통령 임기 말 공무원들이 안 움직이는 게 눈에 보인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말도 전했다.

결국 공무원의 복지부동(伏地不動) 탓이라는 이야긴데, 이에 대해 언론의 비판이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심각했다는 데엔 동의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가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 공무원의 복지부동을 유도하고 촉진한 정부였기 때문이다.

2017년 8월 문재인은 취임 후 첫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말씀이었지만, 결과를 놓고 보자면 영혼 없는 말씀에 불과했다.

집권 초기 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나타난 적폐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공무원 불복종권을 위한 법 개정까지 추진했다. 인사혁신처가 개정안을 주도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까지 받았다. "공무원은 직무를 수행할 때 소속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하여야 한다"는 국가공무원법 57조에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위법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거나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인사상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는 문구가 추가됐다. 어떻게 됐을까? 법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이 문구는 국회에서 실종되고 말았다.

이후 문 정부는 공무원의 '복종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공무원의 영혼을 강력히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명실상부한 '청와대 정부'가 되고 말았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2018)에서 청와대 정부를 "대통령이 임의 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자의적 통치 체제"로 정의하면서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정부가 청와대로 협소해지고, 열렬 지지자들의 여론만 크게 들리게 되면, 시민은 분열되며 정치는 적극적 지지자와 반대자로 양분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민주적 원리에 맞는 책임 정부가 아니라 청와대 정부를 만든 것이 가져온 폐해는 생각보다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 정부' 체제하에선 무엇보다도 이견이 용납되지 않는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생명처럼 여기는 '군대'가 돼 버린지 오래다. '청와대 정부'는 관료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 관료를 개혁 대상으로 보았다. 2019년 5월 10일에 일어난 '사건' 하나가 많은 걸 말해준다. 그날 민주당 원내대표 이인영과 청와대 정책실장 김수현은 당·정·청 회의 전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잠깐만 틈을 주면 엉뚱한 짓을 한다"거나 "장관이 없는 한 달 사이 자기들끼리 이상한 짓을 했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관료를 좋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한국 공무원의 대민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한국 공무원은 세계 어느 나라 공무원보다 수준이 높다"고 예찬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건 그런 공무원이 복지부동을 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해주는 시스템의 건설과 이를 위한 리더십이다.

문 정부의 선의를 이해하자면, 아마도 관료를 확실하게 장악해야 제대로 된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관료는 노예가 아니다. 청와대가 어떤 큰 방향은 제시해 주더라도 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줘야만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다. 모든 걸 꽉 틀어쥐고 일방적인 지시만 내려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내겠다는 발상, 이게 바로 복지부동을 키운 이유다.

이와 관련해 그간 일어난 크고 작은 일들을 기록하자면, 한 권의 책으로 내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대통령이 한마디만 했다 하면, 별 실속도 없는 대통령의 심기 경호를 위한 일에 선량한 공무원을 압박해 불법이나 불법 의혹 사건을 저지르게 한 일들도 있었다. 그런 강요된 충성심이 관행이 되면 공무원 조직은 복지부동의 수렁으로 빠져 들 수 밖에 없다. 영혼은 홀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공복(公僕) 의식은 물론 자율성과 능동성과 창의성도 동시에 사라진다. 요소수 사건은 그걸 말해주는 결과일 수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반드시 치러야 할 비용이 있다는 뜻이다. 공무원의 영혼을 지켜주는 일도 명암(明暗)이 있는 것이지 무조건 좋거나 나쁜 게 아니다. 정부는 공무원이 영혼을 갖게 되면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을 걱정하겠지만, 통제에만 집착하면 더 큰 걸 놓치게 된다. 아니 통제를 하더라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머리'와 '가슴'을 써서 해야 할 일을 힘으로 억눌러서 해보겠다는 건 어리석다. 내 영혼 중한 줄 알면 남의 영혼도 존중해줘야 한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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