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석의 '발견과 되새김'] 가을, 참사에 우리가 무너지다

@이하석 시인(대구문학관장) 입력 2022.11.22. 09:39

'우리 아이들'의 삶이 자유와는

거리가 먼 감시와 처벌의 구조 속에서

경쟁 관계로 구속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구속'이 풀리는 마법과도 같은 것의

상징이 '할로윈 축제'라 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어, 또는 가까스로 취직이 되어

갑자기 해방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자유를

만끽하려 모인다. 이번 사태는 자유를 만끽하려

밀집된 젊은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의 들끓는 욕구가 제대로 분출되지 못한 채

그 출구가 병목현상을 빚는 바람에 빚은 참사

이런 현상에 대해 당국은 항상 예견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감시 사회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여전히 불안은 남는다

-가을

늦가을. 조락의 계절이다.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 때가 좋은 때다"(이생진의 '낙엽')라는 시가 돌아다 보이는 때. 또는 "사람들 발길이 낸/ 길을 덮는 낙엽이여/ 의도한 듯이/ 길들을 지운 낙엽이여/ 길을 잘 보여주는구나/ 마침내 네가 길이구나"(정현종의 '낙엽')라는 깨달음으로 낙엽 덮힌 길을 걷는 때.

그러나 낙엽도 시기가 있다. 온통 노랗게 무너져 내려 가로를 덮던 잎들을 쓸어 담는 인부들을 본다. 한동안 낙엽들을 내버려두어 바람에 날리거나, 낙엽 밟는 버석거림으로 가을의 기분을 물씬 느끼게 하더니, 그 기분을 이쯤에서 추스르는 게 적당하겠다라는 듯 이제 쓰레기로 취급하여 거둬들이는 것이다. 다시 깨끗하게 청소되는 도로들이 생소하다. 잎들이 지고 앙상하게 드러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하늘처럼 텅 빈 느낌이다.

변화를 예감하면서 단풍 든 숲길을 서성이던 설렘이 아쉬움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들이 행여 어깨라도 치면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초조해지는 탓이리라. 어떤 이에게는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게 아닌지 자책하는 초조와 안타까움에 빠지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아무튼 사색, 우수, 상심의 계절감이 복합적으로 휘몰아치는 나날이다. 위 내시경 통고를 받은 것처럼 문득 내 몸과 마음을 돌아본다. 새삼스럽게 우리의 삶이 이런 계절감을 챙기지 못할 정도로 부대끼지 않았는지 자책하기도 한다.

-참사

깊어가는 가을에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시월말의 이태원 압사 참사다. 낙엽처럼 져간 엄청난-무려 150여명이라니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생명들, 그것도 젊은 생명들이 무참히 희생된 것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아연하여 뉴스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외신에서는 세월호 이후 최악의 참사라고 표현했다.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하지만,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불안과 분노, 죄책감을 더 느낀다.

정부는 11월 5일까지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사고 현장의 참혹한 사진과 영상이 여과 없이 공유되는 일도 생겼다. 참사일수록 면밀하게 사건을 조사하면서 고인들의 존엄이 지켜져야 하는데, 그런 통제력이 상실된 듯 보인다. 비난과 혐오가 여전히 들끓으면서 쟁점화하는 듯도 하다.

새삼, 이런 참사가 나와 가족뿐만 아니라 우리 주위의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청소년 학생들의 부모들은 "그동안 좋은 대학 보내기에만 골몰하여 몰아세웠는데, 이번 참사를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애들 스스로 하고 싶은 걸 하게 놔둬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동안 가둬놓듯 한 가운데 한 방향으로만 몰아세우며 키워온 자녀들의 삶이 이런 참사 앞에서 무색해질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게다.

-감옥의 시선

새삼 영화 '프리즌'과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떠오른다. '프리즌'은 2017년에 개봉된 나현 감독의 데뷔작이다. 크게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3백만 가까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석규와 김래원의 연기가 볼만 하다. 범죄자들이 감옥 안에서 교도소장과 교도관들을 일정한 뇌물을 통해 부하를 부리듯 지배한다. 청부범죄는 물론, 감옥 안에서 조직을 키우고, 부를 축적한다. 범죄자들은 권력을 휘두르고, 그 권력을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한다.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풍자하고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영화의 끝 부분에서 김래원이 그들이 갇힌 곳을 감옥이라고 강조하자, 한석규는 "아니다, 이곳은 나의 무대이자 일터"라고 일갈하는 게 인상적이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사회가 더 이상 '연극의 사회'가 아니라 '감시의 사회'임을 보여준다고 했다. 근대인은 '더 이상 무대 위에 존재하지 않으며, 각각의 개인을 톱니바퀴처럼 작동시키는 파놉티콘이라는 기계 안에 갇혀 있는' 감옥 안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선 어느 누구도 감시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영화 '프리즌'이 감옥 속에서 더욱 바깥 세계 이상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여줌으로써, 감옥과 감옥 바깥의 경계를 없애버렸다면, '감시와 처벌'은 현대인들의 삶이 감시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감옥의 삶임을 보여준다. 정보 사회에서 이런 감시의 눈은 더욱 교묘해진다. 오늘의 우리 현실이 이와 다르지 않다. 이런 현상은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교육 체계 역시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삶이 자유와는 거리가 먼 감시와 처벌의 구조 속에서 경쟁 관계로 구속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구속'이 풀리는 마법과도 같은 것의 상징이 '할로윈 축제'라 할 수 있다. 대학생이 되어, 또는 가까스로 취직이 되어 갑자기 해방감을 느낀 젊은이들이 자유를 만끽하려 모인다. 이번 사태는 자유를 만끽하려 밀집된 젊은이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의 들끓는 욕구가 제대로 분출되지 못한 채 그 출구가 병목현상을 빚는 바람에 빚은 참사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당국은 항상 예견하고 대비해야 하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감시 사회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여전히 불안은 남는다.

이 사태로 인해 가을의 계절감이 더욱 비통해지는 듯하다. 낙엽 지듯 허망하게 떨어져간 아까운 이 땅의 젊은이들의 영정 앞에서 우리는 참담하게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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