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의 '우문우답'] 큰절에 대하여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입력 2022.12.06. 10:06

큰절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됐는지는 모르겠다. 예의염치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 같기도 하고,

절에 가면 사람들이 부처님 앞에서

큰절을 하는 걸 보면 불교의 영향

같기도 하다. 큰절은 보기에 따라서는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공비례이므로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관혼상제는 좋은 점도 있으나 과도히

번잡한 것은 오히려 질곡이므로

과감하게 간소화하는 게 옳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큰절 문화도

한번 재고했으면 하는 게 나의 희망이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오늘은 오래 된 우리 풍속인 큰절 문제를 논해보고자 한다. 큰절이라 함은 큰 사찰이 아니고,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는 공손한 인사법을 말한다.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므로 누군가는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한번 말문을 열어본다.

KBS TV의 인기 프로그램인 '전국 노래자랑'의 진행자가 송해의 타계 이후 바뀌었다. 처음에는 이호섭, 임수민 콤비가 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영호남 화합의 좋은 그림으로 보였다. 그리고 작곡가 이호섭은 가요에 관한 한 워낙 만물박사이고 노래도 달인이므로(이호섭은 수년 전 KBS의 '가요무대'에 나와서 이미자의 '황포돛대'를 너무나 멋들어지게 불러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프로의 진행자로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무슨 연유인지 재고, 장고 끝에 김신영이라는 젊은 여성이 진행자로 최종 선발되었다.

나는 김신영이라는 사람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고향 대구 출신 개그 우먼이라고 하니 좀 더 호감이 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원래는 안 보던 프로였는데 최근 세 번 시청을 했다. 김신영씨가 대체로 조심스레, 그리고 겸손하게 잘 진행을 하는 걸로 봐서 앞으로 잘 정착될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딱 하나 옥의 티가 있다. 그것은 뭐냐 하면 김신영씨가 전국 방방곡곡 어디에 가든지 노래자랑 프로 첫 머리에 반드시 수많은 청중을 향해 무대 위에서 엎드려 큰절을 올리면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젊은이로서 어른들 앞의 예의바른 행동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내 눈에는 그런 좋은 의미보다는 "아니, 저렇게까지? 저건 불필요하거나 과잉 행동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한 사람이 이렇게 큰절을 하는데 만일 다른 사람이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당연히 비교가 되고, 심지어 건방지다 이런 느낌을 줄 우려가 있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걸 '그레샴의 법칙'이라 부른다.

한 20년 전쯤 일이다. 이의근 당시 경북도지사한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도지사로 당선된 뒤 유림의 고장 안동을 첫 방문하는 날 차를 타고 안동시 외곽에 도착하니 안동 유림을 대표하는 노인 몇분이 흰 도포 자락에 흰 수염을 휘날리며 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계시더란다. 그래서 얼른 차에서 내려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부터 올리면서 "아이쿠,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밖에 나와 계십니까?"하고 인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노인들 말씀이 "새 도백(도지사의 옛말)이 오신다는데, 어찌 앉아서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도지사가 기민하게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기에 망정이지 만일 보통대로 그냥 서서 인사를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꼭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새 도백은 예의범절을 모른다" 이런 핀잔을 들었을는지도 모른다. 그 에피소드를 듣고서 나는 "아, 정치가는 정말 힘들겠다. 정치란 보통 사람은 할 수 없는 직업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 정치 뿐이랴. 회사, 학교, 군대, 경찰, 공무원, 종교단체 등등 우리 사회 구석구석 이런 예의범절이 오랜 세월 확고히 자리잡고 있어서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하면 버릇없는 사람,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쉽다. 우리는 인터넷과 무선 핸드폰 없이는 하루도 살기 어려운 현란한 21세기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예전 풍속이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 역사에 보면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으로 도망가 농성하던 인조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린 끝에 두 달 만에 청나라에 항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항복식을 올린 곳이 서울의 삼전도다, 거기서 청태종은 높은 단 위에 떡 하니 앉아 있고, 인조는 왕의 복장 대신 상복을 입고 단 밑 땅바닥에 엎드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치욕적인 예를 치러야 했다. 삼배구고두가 무엇인가. 땅바닥에 세 번 절을 하되 한 번 절할 때마다 세 번씩 땅바닥에 이마를 찧는 것이다. 그러니 절을 세 번, 머리 찧기를 아홉 번 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조선의 왕이 땅바닥에 이마를 찧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것도 처음에 이마 찧는 행동이 너무 약하다는 청나라 관리의 질책을 받고는 이마에 피가 흐를 정도로 세게 찧어야 했다. 아, 망국의 설움이여.

큰절이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와 정착됐는지는 모르겠다. 예의염치를 중시하는 유교의 영향 같기도 하고, 절에 가면 사람들이 부처님 앞에서 큰절을 하는 걸 보면 불교의 영향 같기도 하다. 큰절은 보기에 따라서는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과공비례이므로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다는 생각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 특히 서양인이 한국인의 큰절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솔직히 조금 걱정도 된다. 서양인은 아예 큰절을 하지 않으므로 짐작컨대 한국인들이 큰절하는 걸 보면 도무지 이해를 못할 것이고, 심지어 치욕적으로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지 않을까. 큰절은 글로벌 스탠다드와 거리가 멀다.

나는 가끔 제자들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주는데, 식이 시작하기 전 신랑에게 부탁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순서에서 웨딩 드레스를 입고 있는 신부는 큰절을 할 수가 없고 하니 신랑도 큰절을 하지 말고 신부와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하라는 부탁이다. 이런 부탁을 하지 않으면 십중팔구 신랑은 바닥에 넙쭉 엎드려 큰절을 하기 때문에 나는 꼭 그런 부탁을 한다. 안방이라면 또 몰라도 예식장 바닥에 양복을 입은 신랑이 큰절을 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도 신부는 옆에 서서 절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의 관혼상제가 크게 간소화되고 있다. 이건 몹쓸 코로나가 가져온 유일한 장점이 아닌가 한다. 관혼상제는 좋은 점도 있으나 과도히 번잡한 것은 오히려 질곡이므로 과감하게 간소화하는 게 옳다고 본다. 이번 기회에 우리의 큰절 문화도 한번 재고했으면 하는 게 나의 희망이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 큰절은 미풍양속인가, 과공비례인가. 이정우(경북대 명예교수, 참여정부 대통령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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