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사람의 정신 상태를 파악하는데 그가 쓰는 말과 글만큼 유효한 것도 없다. 2024년 12월 초의 불과 열흘 남짓한 기간. 세계 10위권 선진국에 들었다고 자부하던 대한민국 국민은 나라의 대표, 대통령이란 사람이 난데없이 쏟아부은 5개의 오물 같은 담화를, 황당해하며 보고 듣고 몸을 떨어야 했다. 12월 3일 밤 그가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내세웠던 표현들은 '척결' '패악질' '소굴' '파렴치' '원흉' '괴물' 등 한 나라의 국가원수가 국민을 상대로 말하기엔 매우 거칠고 섬찟한 단어로 가득했다.
국회와 야당이 소굴이고 괴물이며 파렴치와 패악질을 일삼은 척결 대상이었다. 몇 분 뒤 나온 포고령은 영장 없는 '체포' '구금' '압수수색'과 '처단' 따위로 이어졌다. TV 화면에선 자동소총 야간 투시경 등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속속 진입 중이었다. 여의도 밤하늘엔 군용헬기가 순차적으로 날았다. 희끗희끗 눈발도 날렸다. 참으로 비현실적인, 그러나 실재적인 현실이었다. 국민을 척결할 적으로 삼아 총구를 들이댄, 명백한 대통령의 대국민 전쟁 선포였다.
긴 밤을 꼬박 새운 4일 새벽. 국회가 겨우겨우 계엄 해제 요구를 결의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미적대며 3시간 반 더 시간을 끌고서야 해제 담화를 발표했다. 그때도 국회를 향해 앞으로 "무도한 행위를 즉각 중지"하라고 윽박지르다가 느닷없이 "감사합니다"라며 담화를 마치는 등 맥락이 안 닿는 언설을 늘어놓았다. 오로지 증오와 분노에 절어 앞뒤 살핌 없이 내지르는 것처럼 보이던 그의 언행의 괴기함은 7일에는 조금 수그러진 듯했다. 국회의 탄핵 표결이 눈앞에 닥치자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심산이었던지 이번엔 남 탓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3차 담화에서 그는 "국민께 불안과 불편을 끼쳐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많이 놀라셨을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법적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했다. 2차 계엄도 없을 것이며, 자신의 임기 포함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고, 국정 운영도 당과 정부가 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양수도가 불가능한, 국민이 위임한 국정 최고 권한과 임기를 주머니 속 공깃돌처럼 정당에 물려준다는 법외 약속까지 할 정도로 그는 다급해 보였다.
그러나 이건 잠시였다. 닷새 만에 그의 언행은 또 표변했다. 국헌을 문란케 한 헌정질서 파괴범, 내란죄의 수괴로 입건되고 출국금지를 당한데다 즉각 체포 및 하야 탄핵 요구가 들불처럼 번지자 오히려 정면 승부를 걸고 나왔다. 12일 오전 그는 네 번째 담화를 통해 "지금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라고 반격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 있느냐.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국민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국회의원 체포조를 보냈으며 헌정을 무력으로 중단하려 했다는 사실은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는 계엄의 목적이 거대 야당의 '권한 남용'을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 막기 위해서였다며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게 있는가.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한 게 폭동이란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계엄군투입이 국회해산이나 기능 마비 목적이 아니라며 "기능을 마비시키려 했다면 평일이 아닌 주말을 기해 계엄을 발동했을 것"이라는 비논리적인 주장도 들이밀었다. 내란 모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가담자들의 불리한 증언이 쏟아지자 공범들에게 진술 모범답안을 제시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문제는 4차 담화부터는 그가 아예 국민을 두 편으로 가르며 제 편에게 함께 싸우자고 국가적 내란을 독려하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자신이 "그동안 국민만 바라보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재건하기 위해 불의와 부정,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거에 맞서" 싸웠다는 자아도취적 망상과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세우며 적극적으로 국민을 갈라치고 세력을 규합하기 시작한 것이다. '간첩 천국' '마약 소굴' '조폭 나라' '광란의 칼춤' 등 그가 내뱉은 선동적 언어는 급기야 14일 탄핵소추가 결정된 당일 아스팔트 극우들의 구호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직후 낸 5차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뛰었던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이라는 등 낯 뜨거운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며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과 다른 거짓말을 교묘하게 묶어 포장해 전달했다. 진영, 세력이 흐트러지는 걸 최대한 막아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감성에 호소한 것이다. 나라와 국민, 자유민주주의만 사랑했다는 위선의 껍질을 씌워 보이며 나라와 국민이 두 쪽으로 갈려 싸우도록 부채질을 멈추지 않은 것이다.
사실 그의 이런 망상적 분열적 성향은 비상계엄 내란 사태 전부터 예견됐었다. 계엄령 선포 1주일 전인 11월 28일, 천주교 사제단 1466명은 윤 대통령을 향해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시국 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사제들은 "그가 있는 것도 없다 하고, 없는 것도 있다고 우기는 '거짓의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또 "무엇이 모두에게 좋고 무엇이 모두에게 나쁜지조차 가리지 못하고 주먹만 앞세우는 '폭력의 사람', 자기가 무엇을 하는 누구인지도 모르고 국민이 맡긴 권한을 여자에게 넘겨준 사익의 허수아비요, 꼭두각시. 배부른 극소수만 살찌게, 그 외는 모조리 나락에 빠뜨리는 이상한 지도자"라고도 했다. 꼭 있어야 할 것은 다 없애고 쳐서 없애야 할 것은 아끼는 '어둠의 사람', 이어야 할 것은 끊어버리고 하나로 모아야 할 것은 흩어버리는 '분열의 사람'이며 그에게 나머지 임기 절반을 마저 맡겼다가는 사람도 나라도 거덜날 것이기에 더 이상 대통령직 수행은 안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최근 한 사제는 윤 대통령의 요즘 행태를 두고 솔로몬 왕의 잘 알려진 예화를 들어 일침을 놓았다. '산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 소생이라 우기던 두 여인의 송사에서 솔로몬은 "아기를 둘로 나눠 반씩 갖도록 하라"고 판결했다. 정말로 아기를 사랑한 생모는 아기를 안 가져도 좋다,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원했으나 가짜 엄마는 둘로 나눈 반쪽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정말로 나라와 국민을 사랑하고 그를 위해 신명나게 일해왔다는 윤 대통령, 혹시 둘로 나눈 반쪽이라도 갖겠다는 생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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