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易地思之'] 윤석열을 누가 책임져야 하나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5.01.07. 10:12
강준만(전북대 명예교수)

"국민을 배반하고 경제를 나락으로 내몬 친위쿠테타를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비롯한 가담자들은 두말할 것 없이 나쁜 사람이다. 문제는 이런 나쁜 사람이 '자신이 믿지 않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국정을 일차적으로 책임지는 대통령을 뽑는데, 실상 후보자의 생각과 비전도 모르고 뽑은 것이다. 지나치게 짧은 후보 선출과 공식 선거 기간으로 인해, 후보자 간 상호검증이나 언론과 유권자에 의한 검증이 실효성을 가지기 어렵고, 결국 연출된 후보자의 이미지가 당선에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후보자 선출과 공식 선거 기간의 확대에 대한 공론화가 필요하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박상인이 "위기의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의 경향신문(2025년 1월 3일) 칼럼에서 한 말이다. 옳은 말씀이다. 대다수 국민에겐 청천벽력 같았던 12·3 계엄을 저지른 윤석열을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이걸 따져 묻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국민의힘(국힘)과 보수 유권자들의 책임을 묻는 주장이 많다. 그게 전부일까? 구조나 제도 이외에 또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없는가?

있을 것 같은데도 그걸 거론하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나는 이건 문제가 있으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른바 게이트키핑(gatekeeping)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게이트키핑은 언론학에선 뉴스를 생산하는 기자나 편집자에 의해서 뉴스가 취사 선택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어떤 분야에서건 문지기의 역할을 거론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기엔 검증도 준비도 안 된 사람이었다는 데엔 거의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다. 그 책임을 윤석열의 소속 정당이 져야 한다는 건 당연하지만, 국힘은 2차 게이트키퍼였다고 보는 게 옳다. 상식의 수준에서 생각해보자.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을 지낸 사람이 대선에 출마하려고 한다. 검사 출신, 특히 검찰 고위직 인사가 다른 경험 없이 곧장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건 위험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며, 실제로 윤석열의 경우엔 그런 반론이 많이 있었다.

타당한 반론이지만 그 누구도 윤석열이 12·3 계엄과 같은 날벼락을 때릴 가능성을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막상 계엄이 저질러지고 나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지만, 그건 사후확신 편향(hindsight bias)에 지나지 않는다. "사후 평가는 늘 정확하기 마련이다"는 명언이 괜히 나왔겠는가.

우리는 전혀 모르던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에 그 사람이 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게 꼭 바람직한 건 아닐망정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대적 삶에서 불가피한 면이 있다. 우리는 이념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편가르기를 하면서도 공적 조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는 능력과 자질에 대해선 공통된 것이 있다는 합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식적·합리적 인성을 갖고 있지 못한 폭군 성향의 사람은 걸러내는 게이트키핑은 편가르기와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윤석열을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으로 발탁한 주체는 누구였나? 문재인 정권이다. 윤석열은 어떤 검사였던가? 윤석열은 대통령이 되기에 부적합한 사람이었을 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검장·검찰총장이 되기에도 부적합한 사람이었다. 1차 게이트키핑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뜻이다. 윤석열이 어떤 검사였는지는 널리 공개된 비밀이었다. 인사 검증에서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였음에도 문 정권은 그 문제에 대해 눈을 감아버렸다.

한국일보 기획취재부장 강철원은 "윤석열 스타일은 바뀌지 않는다"는 제목의 한국일보(2020년 2월 24일) 칼럼에서 검찰 안팎에선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윤석열 스타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럴듯한 대의명분을 설정한 뒤 결론을 정해 놓고 수사한다',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무지막지하게 수사한다', '목표에만 집착해 절차를 무시하고 인권을 등한시한다', '수사의 고수들이 깨닫는 절제의 미덕을 찾아볼 수 없다', '보스 기질이 넘쳐 자기 식구만 챙긴다', '언론 플레이의 대가이자 무죄 제조기다' 등이다."

이걸 문 정권이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문 정권은 윤석열에게 따라붙었던 '칼잡이'라는 별명을 가장 반겼을 게다. 오로지 '앞으로 진격' 밖에 모르는 칼잡이라니,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당시 포스텍 교수 송호근이 "최종병기, 그가 왔다"는 제목의 중앙일보(2019년 6월 24일)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윤석열은 "국정농단, 사법농단 잔재세력의 완전 소탕"을 해낼 수 있는 "적폐청산의 최종병기"로 선택된 게 아니었느냐는 말이다.

강철원은 "스타일을 지적하지 않고 사람을 믿은 정권이 순진했을 뿐이다. 기가 막힌 운명으로 역사에 남을 것 같다"는 말로 칼럼을 끝맺었다. 순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불순했다고 보는 게 더 옳을 것이다. 문 정권의 입장에선 그런 스타일이 적폐청산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거라는 점에서 말이다. 윤석열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는 전반적으로 가혹했고 잔인했다. 그럴수록 문 정권의 지지율은 올라갔다. 그러다가 검찰의 칼끝이 '구 적폐' 뿐만 아니라 문 정권의 '신 적폐'를 향하자 문 정권은 광분했다. 똑같은 검찰이었건만 상대편을 칠 땐 환호하고, 자기편을 칠 땐 '검찰 쿠데타'라며 펄펄 뛰는 내로남불 추태였다.

문 정권은 1차 게이트키핑에 실패한 정도를 넘어서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기여함으로써 역사에 큰 죄를 지었다. 문 정권 인사들은 정략적인 '윤석열 찬양가'를 불러대다가 자신들을 건드리는 '신 적폐청산'이 이루어지자 무리한 '윤석열 때리기'로 윤석열의 인기만 높여 주었고 급기야 유력 대선 후보의 반열에까지 오르게 만들었다.

윤석열에 대해 북 치고 장구 친 건 민주당이었다. 국힘은 그 장단을 이용해 윤석열을 '용병'으로 써 먹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윤석열에 대한 검증을 두고 말하자면 민주당이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닐까? 이건 중요한 문제다. 집권 가능성이 높아진 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성찰 능력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에게 10개의 돌을 던지더라도 1개쯤은 자신을 위해 남겨두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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