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1000년 마을 이야기 남구

암울한 시기 모두의 피난처가 되어 준 버드나무 낮은 언덕

입력 2022.07.13. 19:05 박지경 기자
[광주 1000년 마을이야기 남구④] 남구 양림동<하>
김현승 '가을의 기도'로 시작된 길
이수복 '봄비' 그치니 종달새 운다
극작가 조소혜와 정율성이 살았고
황석영·김준태 시인의 숨결도 있다
양림동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 있는 다형 김현승 선생의 '가을의 기도' 시비(詩碑) 그림이다. 이 시비 이외에도 사직도서관 앞 제중로에 '절대고독' 시비가 서있고 무등산 원효사 오르는 길에는 '눈물' 시비가 있다. 그림 김집중 작가

[광주 1000년 마을이야기 남구] 남구 양림동<하>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주여, 때가 왔습니다/여름은 참으로 길었습니다/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얹으시고/들에 많은 바람을 놓으십시오//마지막 과실들을 익게 하시고/이틀만 더 남국의 햇볕을 주시어/그들을 완숙케 하여/마지막 단맛이 진한 포도주 속에 스며들게 하소서….


◆가을 지나면 간절한 마음 담을 수 없어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를 읽으면 릴케의 '가을날'이 떠오른다. 가을은 완성되기 직전의 시간이다. 그대로 흘러가면 겨울이므로, 끝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어떤 소망이 있다면, 그 간절한 마음을 가을이 지나면 더 담을 수 없다. 그래서 늦기 전에 가을에는 기도를 하고, 사랑을 하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비옥한 시간을 가꾸어야 한다.

다형 김현승선생 ‘가을의 기도’ 시비

긴 여름을 지나 이제 과일을 따야 하는 그 막바지의 가을에, 따뜻한 햇볕을 받아 완숙하고, 진한 단맛이 포도주에 스미도록, 이틀만 더 할애해 달라고 기도를 올리는 시간. 가을은 이틀밖에 없다. 이 이틀이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인간의 마지막 시간이다. 이 이틀을 어찌 채울 것인가? 김현승은 기도를 하고, 사랑을 하고, 그리고 '홀로 있게 하소서, 내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홀로 있게 해달라고 한다.

그것은 '지금 고독한 사람은 이후에도 오래 고독하게 살면서/ 잠자지 않고, 읽고, 그리고 긴 편지를 쓸 것'이라는 릴케의 가을과 같다. 포도주에 단 맛이 스미게 하는 비법은 '고독'이다. 오직 '고독'을 통해서만 인간은 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두 시인은 가을에 빗대 말하고 있다.


◆선교·전통·예술여행 등 세 갈래 길

양림동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다. 선교여행길, 전통여행길, 예술여행길.

양림교회에서 오웬-어비슨-조아라-최흥종-유진벨 기념관-우일선 선교사 사택-호랑가시나무와 선교사 사택을 거쳐 수피아홀로 넘어가는 코스가 '선교여행길'이다.

'전통여행길'은 양파정에서 시작하여 양림마을 이야기관-최승효-이장우 가옥-16세기 효자 정엄의 정려와 충견상-3·1만세운동길을 지나 충현원에서 사직전망타워로 빠지는 코스다.

이수복 시인 ‘봄비’ 시비(사직공원)

'예술여행길'은 한희원 미술관에서 펭귄마을-515갤러리-정율성 생가터-김현승 거처-이강하 미술관-갤러리 고철-이이남 스튜디오를 지나 양림미술관으로 나가는 길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길, 푸른길 공원에서 호남신학대학으로 거슬러 오르는, 지금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냥 찻길인데, 그 인도의 길바닥에 양림동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들이 돌과 동판에 새겨져 있다.

극작가 조소혜가 '첫사랑'을 썼던 곳, 광주여상을 졸업한 뒤 은행원을 하다가 혜성처럼 등장하여 '그대의 초상', '젊은이의 양지' 등을 발표하면서 TV드라마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의 작품의 산실이 이 길의 초입이다.

조소혜 옆에는 정율성이 자리한다. 양림동에서 태어나 중국 국가인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팔로군 행진곡)'와 중국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연안송' 등 360여곡을 작곡하여 중국의 3대 음악가로 추앙받는 정율성. 그의 간략한 생애와 '연안송'의 악보가 길 위에 새겨져 있다.

'징소리'의 작가 문순태의 동판이 보이고 몇 걸음 지나 화가 배동신의 동판이 놓여있다. '수채화만을 고집한 한국의 서양화가. 청결하고 단백하며 긴장된 몰입을 하는 작품. 유화가 육식에 비유될 수 있다면 수채화는 채식이라 할 수 있다. 유화가 동적이며 극적인 감동을 연출한다면 수채화는 상큼하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는 글이 실려 있다. 물감을 물에 개어 맑고 소박한 맛의 수채화를 채식에, 물감을 기름에 개어 깊고 풍부한 맛이 우러나는 유화를 육식에 비유한 것이 재미있다. 길 건너에는 이수복의 '봄비'가 새겨져 있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영랑처럼 맑은 시어로 우리말의 예스러운 아름다움을 한껏 드높인, 한국 전통시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그는 이곳 양림동에서 수피아 여고와 숭일고 교단에 섰다.

근처에 황석영이 '장길산'을 썼던 집필지가 있고, 가까이 김준태 시인의 거처도 있다. 풀들이 돋아난 보도블록 위를 느릿느릿 걷다가 솔가지가 떨어진 동판을 손으로 쓸어 그들의 삶과 시를 읽어보면서 양림동의 무엇이 그들을 불러 모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무등을 바라보기 좋은 언덕, 낮은 산과 버드나무숲이 있고, 물이 흐르고, 암울했던 시대 양림동은 그들에게 피난처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주제는 한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

김현승(1913~1975)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목회지를 따라 제주에서 살다가 7세에 광주로 와서 숭일학교를 다녔다. 1934년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게재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졸업 후 양림동으로 돌아와 모교인 숭일학교 교사, 조선대 교수 등을 지냈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은 '견고(堅固)한 고독'이고, 네 번째 시집은 '절대(絶對)고독'이다. 사후 출간된 그의 산문집도 '고독(孤獨)과 시(詩)'다. 그의 줄기찬 주제는 '고독'이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신을 잃은 고독이다. 내가 지금까지 의지해 왔던 거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 허공에서 느끼는 고독이다. 그러므로 나의 고독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고독이면서도 키에르케고르 등의 고독과도 다르다. 키에르케고르는…이 고독을 벗어나기 위하여 팔을 벌리고 그리스도를 붙잡으려 하였다. 그러므로 키에르케고르의 고독은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고독이었다. 그러나 나의 고독은 구원에 이르는 고독이 아니라 구원을 잃어버리는, 구원을 포기하는 고독이다. 수단으로서의 고독이 아니라 나의 고독은 순수한 고독 자체일 뿐이다." 그는 고독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땅거미 질 때 홀로 걸으며 그를 만나다

인간을 고독한 존재로 규정한 것은 키에르케고르와 김현승이 같지만, 고독을 신을 향한 구원의 수단으로서 붙잡으려 했던 키에르케고르와 고독이 구원과 소망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저 순수한 고독, 그 자체일 뿐이라는 김현승은 다르다. '홀로 있게 하소서'라며 가을에 기도를 올리던 초기의 김현승과 '견고한 고독'과 '절대고독'에 이르는 후기의 김현승은 달라졌다.

문학평론가 권영민은 "그는 절대자를 향한 인간의 신념을 노래하기도 하였으나, 절대적인 고독의 경지에 서 있는 인간의 편에서 인간을 옹호하고자 하였다"고 '한국현대문학사'에서 쓰고 있다.

김현승의 시 '가을의 기도'는 동판의 거리에도 새겨져 있고, 호남신학대학교 교정에도 시비로 서 있다. '더러는/ 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로 시작되는 시 '눈물'이 새겨진 시비는 무등산 원효사 계곡에 서 있고, 그리고 '다형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사직도서관 앞에는 '절대고독'을 새겨 넣은 시비가 서 있다.

나는 이제야 내가 생각하던/ 영원의 먼 끝을 만지게 되었다/ 그 끝에서 나는 눈을 비비고/ 비로소 나의 오랜 잠을 깬다//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영원의 별들은 흩어져 빛을 잃지만/ 내가 만지는 손끝에서/ 나는 내게로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오는/ 따스한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나는 내게서 끝나는/ 무한의 눈물겨운 끝을/ 내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나는 영원의 먼 끝에서 나를 찾았다. 거기에 이르러서야 잠을 깨고 나의 체온을 새로이 느낀다. 내게서 끝나는 그 눈물겨운 끝을 주름 잡힌 손으로 어루만지며, 어루만지며.

이 시 한 편을 읽기 위하여 먼 길을 돌아왔다. 우리는 이 '절대 고독' 앞에서 신으로부터 인간에게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다형(茶兄)을 만날 수 있다. 땅거미가 질 때 홀로 양림동을 걸으며, 지극한 고독에 빠져들 수 있다면, 그것은 '넓이와 높이보다/ 내게 깊이를 주소서'(가을의 시)라고 노래했던 다형의 선물이리라. 이광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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