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향' 사적지는 엄숙해야?
정적인 콘텐츠 위주에 사람들 발길 끊겨
전일빌딩 등 큰 투자에도 '홍보 부족' 지적
"단순 나열…유적지간 차별화한 경험 필요
"쌍방향적이고 동적인 콘텐츠로 변화해야"
[스페셜 기획│노광탈 프로젝트⑦ '의향' 사적지는 엄숙해야?]
5·18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의향의 도시' 광주는 전역이 5·18 사적지다. 어디를 가나 쉽게 사적지를 볼 수 있어 시민들 일상 곁에 사적지가 있는 셈이다. 5·18 사적지만 29곳이고 5·18민주화운동기록관, 5·18기념문화센터, 5·18자유공원 등 관련 시설·공간도 많다.
그러나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곳이 5·18 사적지다. 상당수 사적지들이 시민들은 물론, 광주를 찾는 관광객에 외면받으면서 잊혀져 있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는 가지지 못한 자랑스러운 자산인 5·18사적지들이 시민들로부터도 외면받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평면적 구성과 중복된 콘텐츠를 꼽는다. 이는 5·18사적지간 연결성이 부족한 점이 원인으로 꼽히는데 한 사적지를 찾은 방문객이 다른 사적지를 방문하고 싶은 기대감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5·18 사적지 자체가 역사의 현장이고 5·18 교육의 장소인만큼 시민들과 접점을 높이고 내·외부 방문객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광주시 내 5·18 사적지들을 다크투어리즘 측면에서 통합적으로 연계하면서 콘텐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도심 한가운데에도 인적 드문 사적지
5·18사적지 17호인 상무대 옛터가 있는 5·18 자유공원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 본부 기능을 하며 수많은 시민들을 향해 고문과 구타가 이뤄진 곳이다. 군사법정과 헌병대 영창 건물을 비롯해 식당, 목욕탕 등 당시 시설들이 고스란히 보존·복원돼 있고 역사 전시실도 있어 5·18 역사교육현장 필수코스다.
그러나 최근 찾은 5·18자유공원은 인적을 찾기 힘들었다. 광주 도심인 상무지구 내 3만3천여㎡에 이르는 공원인 탓에 휴식을 취하거나 산책을 나온 시민들이라도 있을법했지만 간혹 한두명씩 있을 뿐이었다. 왕복8차선을 두고서 맞은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비지니스와 관람 등을 위해 찾는 김대중컨벤션센터가 있지만 5·18자유공원으로 발길이 이어지진 않았다.
한참 지켜보는 동안 간혹 한두명이 외곽 산책로를 따라 걷기도 했지만 건물을 구경하거나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시민들은 없었다. '포토존'임을 알리는 조형물과 당시 헌병대가 시민들을 체벌할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 등 볼거리가 있었지만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기엔 역부족이었다.
산책로를 걷던 고등학생 장모(17)씨는 "학교에서 사적지 방문을 숙제로 내줘서 전시장도 들어가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솔직히 교과서로 공부하는 느낌이라 금방 나왔다"면서 "공원 자체는 조용해서 가끔 오는데 사람도 없고 좀 분위기가 무겁다 보니 사람들이 잘 오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5·18자유공원 내부 전시실이 있는 자유관에 들어서자 눈에 들어온 것은 휑한 시멘트 바닥과 벽면을 따라 줄줄이 5·18민주화운동 관련 텍스트 전시물들이었다. 자유관을 나와 영창, 식당, 법정 등을 차례로 가보니 80년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모형으로 재현한 게 인상적이었다.
자유관을 방문했다는 60대 남성 이성호씨는 "5·18 발생 과정이나 역사적 의의 같은 거는 금남로에 있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더 자세히 볼 수 있으니까 여기는 상무대 옛터라는 장소에 맞는 이야기들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정적인 콘텐츠 외에도 역동적인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5·18자유공원은 연극적 요소를 가미한 영창체험, 법정체험을 제공하고 있지만 단체관람객만을 대상으로 예약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대부분 관람객들이 방문한다 하더라도 단순 전시, 재현 조형물 등을 보는 시각적 관람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개관한 전일빌딩 가보니 "몰라요"
5·18사적지 중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동구 전일빌딩245는 어떨까. 금남로 시작점이자 옛 전남도청 맞은편에서 5·18 역사 현장을 지켜본 전일빌딩은 리모델링 과정에서 헬기사격을 증명하는 탄흔이 발견된 중요 사적지다. 450여억원을 투입한 끝에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치고 5·18기념문화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하지만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 여전히 시민들에 녹아들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전일빌딩245 앞에서 만난 회사원 정모씨(31)는 "매일 여기를 지나다니는데도 그냥 회사건물이라고 생각했다"며 "총탄 흔적이 있는 건물이라는 걸 알았다면 들어가 봤을텐데…"라고 말했다.
정씨뿐만 아니라 이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전일빌딩을 방문 여부를 물은 결과 '가봤다'고 답한 시민은 손에 꼽았다. 상당수는 "이곳이 5·18 사적지인 것을 몰랐다"고 답했다.
전일빌딩 내부로 들어가자 인적이 드물어 썰렁한 모습이었다. 기존 5·18사적지와는 다르게 시민에 개방된 '문화 공간'을 지향하며 건물 내 휴게시설, 도서관, 포토존, 휴게데크, 소규모 공연장, 전망 공간 등이 있다. 그럼에도 관람객보다 직원이 더 많은 모습이었다.
콘텐츠는 다른 어떤 5·18 관련 장소보다 풍부했다. 들어서면서부터 나선형 모양의 계단, 22개국 언어로 된 아트월, 미디어아트 작품, 관람객이 남긴 멘트와 사진을 띄워주는 '광주만인보', VR 헬기사격 체험 콘텐츠 등 첨단 기술을 응용한 콘텐츠도 많았다. 전일빌딩245 모형을 AR디바이스로 비춰 헬기사격 흔적을 살펴볼 수도 있었다. 특히 360도 공간벽을 대형 미디어월로 활용해 광주를 표현하는 미디어아트 영상과 상호작용 미디어캔버스는 인상적이었다.
이곳을 찾은 관람객들은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도 잘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광주지역 대학생이라고 밝힌 20대 여성 김현진씨는 "역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사적지고 이렇게 좋은 콘텐츠가 많은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단순한 역사 나열은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어"
광주지역 내 수많은 5·18 관련 공간이 시민과 동떨어져 있다는 불만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왔지만 별다른 개선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 단순히 5·18역사와 현장을 재현하는 데 그치고 있고 일회성 학습공간 이상의 경험을 제공해주지 못하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적지마다 비슷한 구성, 반복되는 내용으로 재방문을 하고 싶은 만족감, 다른 사적지를 가보고 싶은 기대감이 들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어 놓고도 홍보가 안 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왔다.
5·18 관련 단체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김모씨(29)는 "5·18이 아픔의 역사고 현재까지 고통받고 있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사적지든 프로그램이든 결코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된다는 점에는 누구나 공감하는 부분이다"면서도 "그러나 1차적으로 광주시민이 외면하고 찾지 않는 사적지라면 광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광주를 찾는 방문객들도 찾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곳의 5·18 사적지를 찾았을 때 다른 사적지를 가보고 싶어하는 기대감이 들게 하는, 소위 사적지간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사적지마다 차별화된 경험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등일보가 지난 5월 광주지역 2030세대를 대상으로 '5·18 인식조사'를 했을 때도 응답자들은 "내용의 반복과 영상물뿐이라 갈수록 흥미가 떨어진다", " 단순히 역사 나열뿐이라면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 비교분석해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적잖은 응답자들은 "홍보가 부족해 잘 안가게 된다"고 말했다.
◆사적지간 통합·연계 필요…"콘텐츠 경쟁력 갖춰야"
5·18사적지를 시민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방문하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다크 투어리즘' 관점에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연계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다크 투어리즘은 5·18 사적지처럼 비극적인 현장을 방문하는 관광으로 역사적 사실을 공부해 교훈을 얻는 동시에 휴식·체험 등 복합적 기능을 갖추는 것이다.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등도 이 같은 관점에서 안내해설사와 동행하는 '오월길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사적지를 통합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부 단체관람객 위주로 운영되는 한계가 있다. 광주관광재단은 운영하는 '오월의 버스투어'는 다양한 연극과 함께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5·18민주광장 등 주요 사적지를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이 역시 지난 5월에만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임미란 광주시의원은 "안내판, 건물, 거리, 추모비 또는 상징물로 이루어져 있는 현재 (광주) 다크 투어리즘 콘텐츠로는 방문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의 내용과 깊이는 지극히 한정적이고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크 투어리즘의 핵심 목표는 방문객에게 역사적 교훈을 전달하고 비극에 대한 정서적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이라며 "다크 투어리즘 현장은 단순 비극적인 장소로서의 의미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과거와 미래 현재를 이어주는 미디어로서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임 의원은 "다크 투어리즘도 관광의 일종인 만큼 관광객의 방문을 유도하고 소비하고 싶어 하는 콘텐츠의 경쟁력이 중요하다"면서 "죽어있고 일방향적이며 정적인 다크 투어리즘 콘텐츠를 생동하며 쌍방향적이고 동적인 콘텐츠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안혜림기자 wforest@mdilbo.com
- 갈수록 걱정되는 5·18 조사위 종합보고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등이 지난 25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대동홀에서 '5·18조사위 보고서 평가 간담회를 열고 5·18조사위가 내놓은 직권조사 과제별 조사결과 보고서를 평가하고 있다. 임정옥기자 joi5605@mdilbo.com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작성 중인 종합보고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잘못 알려진 5·18 역사를 바로잡아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는 수단이 돼야 할 보고서에 5·18의 역사적 배경이나 성격 등이 일절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27일 5·18조사위에 따르면 5·18조사위는 오는 6월26일까지 대정부 권고안이 담긴 종합보고서를 발간해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한다.5·18 진상규명 특별법 제34조에 '활동이 종료될 경우 6개월 이내에 위원회의 활동 전체를 내용으로 하는 종합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어서다.5·18조사위는 대통령실과 국회에 보고를 마친 뒤 종합보고서와 함께 진상규명 의결서, 백서를 공개할 예정이다.또 지난 4년간의 공식 조사 활동 기간 확보한 진술과 수집한 사진·영상 등 모든 자료는 국회 동의를 얻어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할 계획이다.그러나 작성 완료 기간이 석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종합보고서의 구성이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전체 1천400쪽 분량의 종합보고서는 제1장 총론(200쪽), 제2장 계엄군의 진압작전(200쪽), 제3장 민간인 희생(350쪽), 제4장 인권탄압사건(300쪽), 제5장 북한개입설(100쪽), 제6장 진상규명 불능 과제(250쪽) 순으로 구성됐다.하지만 보고서 어디에도 5·18이 일어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성격, 진상규명을 시작하게 된 이유, 진상규명이 갖는 의의에 대한 서술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반면 국내 대표적인 민주화운동 중 하나인 부마민주항쟁의 진상조사보고서에는 '유신체제에 대항해 발생한 민주화운동',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저항의식 확산' 등 항쟁의 역사적 배경과 '유신체제의 종말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의의가 자세히 담겨있다.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도 8·15 광복 전후 제주도의 상황이나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 4·3사건의 도화선이 된 3·1사건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다.이와 관련 정다은 광주시의회 5·18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제1장 총론에 위원회의 설립과정, 조직·예산·연도별 조사 활동, 대정부 권고안이 담기는 데 사실 설립과정이나 조사 활동은 백서에나 들어갈 내용이다"며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5·18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성격, 5·18이 갖는 의의를 종합보고서에 싣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이어 "5·18조사위의 종합보고서가 새로운 왜곡·폄훼의 근거가 될 것 같아 심각하게 걱정된다"며 "지금이라도 종합보고서를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초안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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