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오후
어느 여름 오후
바흐, 프렐류드의 깊은 저음을
두텁게 입은 햇살이 방 안 깊숙이 찾아옵니다
하루 내 달군 방 벽에 기대어 있으면 느슨한 긴장이 피부 속으로 파고듭니다
알 수 없는 벌레가지나간 얼룩들 그 길의 침묵이 길어집니다
벽에 기대어 햇살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봅니다
눈매가 아름다운지 슬픈지 알 수 없습니다
햇살도 나를 물끄러미 쳐다봅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매는
바라보는 이의 눈매가 슬프면 슬프고 기쁘면 기쁩니다
오후의 햇살이 슬그머니 떠나려 합니다
손을 쥐어 보아도 가벼운 인사도 없이 떠나갑니다
프렐류드가 끝나고도 묵직한 저음이 남아 있듯이
그가 떠난 자리에도 온기가 남아 있습니다
첼로의 음이 멈추고 오후의 햇살이 떠나간 자리위에
나는 아직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습니다
(한희원)
즈바리 수도원을 뒤로 하고 므츠헤타를 향해 산길을 내려온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고개를 돌려서 거센 바람을 견디고 있는 즈바리 수도원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지난한 역사 속에서 자존과 자부심으로 신앙을 지켜왔던 조지아인들이 뿌리 깊은 나무처럼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작은 영토와 적은 인구, 경제적으로도 빈약하지만 그들이 지켜왔던 문화의 뿌리와 예술을 즐기고 사랑하는 마음은 어느 민족보다 깊음을 느꼈다. 이런 국민성 때문에 비록 국토의 일부분을 빼앗겼지만 거대한 강국인 러시아와의 전쟁도 불사했다.
마음속으로 손인사와 미소를 남기고 강을 건너 조지아 옛 수도 므츠헤타로 향했다. 드디어 산 위에서 보았던 그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마을 뒤로 높고 낮은 산들이 겹겹이 모여 마을을 감싸고 있다. 앞으로는 강과 강이 만나 평야를 이뤄 풍요로운 조지아의 천년고도 므츠헤타를 이루고 있다. 외곽 주차장을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마을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들이 그림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잦아 길옆으로 다양한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해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입구에서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조지아에서 두 번째로 큰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 보인다. 므츠헤타는 카즈베기나 고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트빌리시에서 수시로 올 수 있다. 조지아에서 머물며 몇 번 방문한 터라 대성당 입구에 있는 가게 주인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조지아의 유명 관광지에는 작은 화랑이 있다. 보통 화랑에는 작가는 보이지 않고 가족들이 자리를 지키며 그림을 소개한다.
화랑 옆에는 포도주를 직접 만드는 므츠헤타 지방의 유명한 장인이 직접 생산한 포도주를 팔고 있었다. 첫인상이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안소니 퀸을 닮아 조지아의 '조르바'로 불렀다. "헤이 조르바!"하면 크고 우람한 손바닥을 올리며 유쾌하게 웃으며 반긴다. 그가 만든 포도주의 맛이 어찌나 상큼한지 무겁게 닫힌 마음을 시원스레 뚫어주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석류와 포도를 섞어 만든 와인은 형언할 수 없는 맛이다.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오면 직접 빚은 챠챠와 와인을 내놓는데 독한 챠챠와 와인을 몇 잔씩 번갈아 가며 마시면 얼굴이 달아오르면서 취기가 올라온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을 들어가기 전부터 죄스러움을 느낀다. 와인 몇 병을 주문해 놓고 가게를 나서면 조르바는 어깨를 툭툭 치며 특유의 거친 미소로 고마움을 표한다.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입구에는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하는 석조 건물이 들어서 있다. 대성당 앞에 신전이라니... 묘한 이중성이 사람들을 당황케 한다. 그 건물은 관광 안내소로 사용하고 있다.
이제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당 전체가 벽돌로 된 성곽으로 둘러싸여있어 적들이 쉽게 침범하지 못하는 요새처럼 견고하게 지어졌다. 고딕 형식의 종탑은 망루 역할을 하는지 성당 입구에 당당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당 이름은 조지아어로 둥근 기둥을 뜻하는 스베티(Sveti)와 '생명을 주는' 또는 '사람을 살리는'이라는 뜻의 '츠호벨리'를 합쳐져 만든 이름이다. 사람을 살리는 둥근 기둥의 성당. 나는 입구에 서서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대성당을 바라보았다. 이 성당에 예수님의 성의가 보관되었다고 하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호를 긋고 천천히 성당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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