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라는 이름의 그리움
새벽비가 내립니다
느슨하게 빠져있는 새벽의 몽롱함 속에
서늘한 빗소리가 손을 뻗어 나를 일으킵니다
빗방울 소리가 계속 톡톡 노크를 하다 이제는 세차게 문을 두드립니다
이른 새벽 찬 비를 맞으며 길을 떠나자고 자꾸 재촉합니다
고원의 티벳 길
밤새 비를 맞아 추적추적해진 새벽별의 촉촉이 젖은 눈매가 생각납니다
새벽 비는 어린 수녀들이 모여 기도하는 소리를 닮았습니다
어떤 때는 그들이 부르는 노랫소리와도 닮았구요
새벽 비를 맞이하는 사람들은 마음의 농부들 입니다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라는 이름의 그리움을 생각해 봅니다
밤 새 내리는 비가 새벽에도 그치질 않습니다
긴 야간 행군
잠깐 처마 밑에 쉬면서
톡톡 톡톡톡 나를 깨웁니다
지친 새벽 비가 거리를 떠나갑니다
그렇지만 가슴에는 아직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비가 남아있습니다
그대라는 그리움을 불러보는
비 내리는 새벽입니다
(한희원)
시그나기의 대평원을 바라보면 가슴속에서 눈물이 흐른다. 까마득한 시간이 지나가며 남긴 세월의 흔적들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멀어지는 풍경들. 억겁의 윤회 속에서 평원을 가로지르며 하얀 길을 홀로 걸었던 순간이 있었을까. 가슴이 이렇게 사무치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바람도 떠나버린 평원을 묵묵히 걷는 여행자들은 꿈꾸는 존재들이다. 평원을 바라보며 상념에 빠져있다 몸을 일으켜 성곽을 걷는다.
마을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지금은 유물이 되어버린 성곽. 그 옛날에는 평원과 마을을 가로막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단절된 두 지형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단단한 모습의 성곽은 사라지고 세월이 스며들어 이끼가 붙어 있는 지금의 성곽이 지극히 평화로워 보인다. 평원을 바라보던 눈길을 거두고 피로스마니 미술관이 있는 시그나기 박물관을 찾아 공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자기들의 색상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보석에서나 추출될 것 같은 블루와 황토색 그리고 에메랄드그린 색상으로 그려진 기하학적인 문양들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현대성을 지니고 있었다. 조지아인들의 타고난 예술적 감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트빌리시의 거리 곳곳에 놓여있는 낡은 피아노, 생을 연주하는 노년의 아코디언 연주자, 걸음을 멈추게 하는 건물의 창틀이나 아름다운 철재 문양 등을 보면서 그들의 예술적 토양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본다.
박물관 2층 피로스마니 미술관의 작품들은 트빌리시의 루스타 벨리 거리에 있는 조지아 국립미술관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피로스마니 개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작품들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피카소도 원초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그렸던 피로스마니에게 영향을 받았다. 기교가 섞이지 않는 무기교의 정신을 느끼게 하는 그림을 피카소는 알아본 것이다. 이 전시장에서 피카소가 그린 피로스마니 초상화를 볼 수 있다. 게다가 피로스마니 작업실을 그린 스케치 작품도 볼 수 있어 화가의 체취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피로스마니의 여운을 품은 채 보드베 수도원(Bodbe Monastery)으로 향한다. 보드베 수도원은 4세기 때 조지아에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녀 니노의 유해가 묻혀 있는 곳으로 경건함이 더한 장소이다. 수도원은 시그나기의 초입에 있다. 시가지를 들어가기 전에 택시나 렌터카로 둘러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수도원 입구부터 직선으로 곧게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어 성스러움이 더했다. 사이프러스 나무는 흐트러짐 없이 직선으로 서 있다. 그래서 무리를 지어 서 있는 사이프러스 나무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장엄함이 느껴진다. 고흐는 홀로 서 있는 사이프러스를 많이 그렸다. 총총히 뜬 별이 서로 안고 돌며 춤을 추는 모습을 홀로 맞이하는 사이프러스를 그렸다. 그는 늘 혼자였다. 성녀 니노도 그러했을까. 신이 그녀와 함께 했을까.
보드베 수도원은 성녀 니노의 수도원답게 아름답고 정갈하다. 잘 가꿔진 녹색의 풀밭과 계단 형식으로 된 낮은 산등성 언덕에 석조로 바닥이 깔려 있어 더욱 아름다웠다. 풀밭에는 보랏빛과 붉은색의 꽃들이 어린 수녀의 순결한 모습처럼 피어있었다. 꽃과 풀밭 사이에 앉아 대평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평온해 보여 어쩌면 여기가 천국의 모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원은 9세기 이후에 건축된 것으로 니노의 유해가 매장되어 있는 오래된 수도원과 새로 지은 성당이 함께 한다. 새로 지은 성당 안은 수도원에서는 보기 드물게 온통 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다. 성당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순결함이다. 아무런 장식도 없이 그저 단순한 하얀 성당의 내부가 그 어떤 호화로운 성화나 장식으로 치장된 성당보다 훨씬 더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나는 하얀 성당 한 귀퉁이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낮은 기도를 드렸다. 구부러진 포도나무의 가지에 머리카락을 잘라 엮은 성녀 니노의 십자가 사이로 그녀의 노랫소리가 나를 조용히 안았다. 구부러진 나무 십자가가 점점 퇴색하며 잃어버린 지금 우리들의 신앙의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이 성당에 들어가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기도를 드리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을 위한 낮은 기도를.
바람이 기도 소리를 따라 푸른 풀밭을 지나 평원을 가로질러 코카서스 산맥을 넘는다. 나의 마음도 바람을 따라 벌써 산을 넘어 떠나고 있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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