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은 마음 감옥 창살 허물고
9월의 저녁
몇 번의 폭풍우가 지나고
9월이 간다
마음속의 자유와 감옥이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사그라졌다
인생의 길이 다 그런가
강가에 핀 수선화처럼
나무숲을 소리 없이 걷는 바람처럼
고원의 하얀 길을 걷는
긴 호흡처럼 살고 싶은데
쓸데없는 욕망과
마음속에 자리 잡은 공허를 두리번거리며 살고 있었다
저녁 무렵 찬바람에 씻길 대로 씻겨 가느다랗게 변한 초생달이
가슴에 박힌다
여윈 그림자 곁에 앉아
나를 안는다
그림자가 흘린 눈물이 따뜻하게 손등에 흐른다
짙어가는 산마을 너머
노을이 창백하게 맑다
나는 너의 두손을 잡는다
생이 희미하게 웃고
길을 간다 -한희원
조지아에 와서 하루 종일 혼자 시간을 보냈다. 조지아로 떠날 채비를 하며 먼 이국땅에서 홀로 지내야 한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지만 어떻게 혼자 시간을 보낼지에 대한 대비를 하지 못한 채 떠나왔다. 이렇게 철저히 혼자 고립되어 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막막하고 무서웠다. 마음을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떠나기 전에 마음의 훈련이 필요했다는 것을 조지아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고국에서는 하루가 너무 짧았다. 얽히고설킨 많은 일들과 사람들 속에서 살다보니 작품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작품으로만 숨을 쉬고 싶어 조지아로 왔다. 비록 내가 선택한 삶이지만 여기에서 이렇게 고립된 생활을 하니 무척 힘이 든다. 인간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와 적당한 스트레스가 주어진 일이 있을 때 삶의 활력을 느낀다. 힘든 일을 마무리하고 맞는 휴식은 영혼을 치유하는 명약이 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한한 자유를 꿈꾸는 자아와 그 자유를 속박하는 또 다른 자아가 존재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속의 감옥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자유를 향한 여행이 부디 성공하기를 소망한다.
하늘과 맞닿을 것 같은 히말라야 고봉의 산악 길을 걸으며 혹은 고독의 끝자락을 만나는 티베트 고원을 떠돌다가 영혼의 자유와 마음속의 감옥을 동시에 만날 수도 있다. 강가를 걷다가 건실한 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때 불현 듯 다가왔다 사라지는 마음속의 파동. 방황하고 있는 내 영혼의 빈터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나.
조지아의 여행길에서 수많은 교회를 만났다. 어찌 보면 조지아 여행은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를 찾아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길은 험준하지만 교회가 있는 장소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다. 신앙의 역사가 조지아를 비롯한 이웃나라 아르메니아의 역사와 동행한다.
천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품은 교회에 들어가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묵은 감옥의 창살이 허물어지며 평온함이 깃든다. 평화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이에게 고루 파고든다. 오랜 세월동안 스며든 기도하는 삶은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 어두운 창가로 다가와 부드럽게 쓰다듬어 준다. 교회 안에서 숨죽이며 타오르는 촛불은 신의 눈물이다. 눈물은 눈물을 닦아주는 힘이 있다. 눈물이 없는 신앙은 교만의 덩어리일 것이다.
쿠타이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바그라티 대성당이었다. 대성당은 우키메리오니 언덕 위에 터를 잡고 있다. 바그라트 3세가 통치할 시기인 11세기 초에 지어진 이곳은 1692년 이메레티 왕국을 침범한 오스만에 의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었다. 그때 천장이 붕괴되고 말았다. 지금은 지붕이 옅은 터키블루 색으로 다른 성당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쿠타이시에 있는 겔라티 수도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바그라티 대성당은 널따란 잔디에 덮인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성당 종탑 계단에 앉아 강가에 펼쳐진 도시를 바라보면 그간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며 위안을 얻게 된다. 풀밭 위의 거대한 철 십자가는 녹색의 풀밭과 묘한 대조를 이루며 쿠타이시를 수호하는 듯 했다.
쿠타이시 근교에는 겔라티 수도원이 있다. 겔라티 수도원은 조지아의 지성인을 탄생시킨 곳이다. 겔라티 수도원의 아카데미는 조지아의 저명한 신학, 철학, 과학자를 배출하였다. 이오아 네페트리치나 아르센 이갈톨레이 같은 학자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 수도원에는 12~17세기의 벽화와 필사실도 잘 보존되어 있다.
쿠타이시를 떠나면서 우키메리오니 언덕에서 조우했던 바람을 잊지 못할 것이다. 언덕에서 바라다 본 리오니 강과 인간의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아름다운 오페라하우스의 모습에서 지난했던 여정을 잊게 하며 안식을 안겨준다. 대성당을 감싸주는 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지붕을 덮고 있는 옅은 터키블루 색이 햇빛에 반짝이며 속살거린다.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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