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31(토)
현재기온 19.7°c대기 보통풍속 0.9m/s습도 40%
한희원의 트빌리시편지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47> 남오세티야 전쟁과 라짜지역(상)

입력 2020.10.14. 18:25 수정 2020.10.15. 19:17
아픔도 행복도 모두 안은 땅
한희원 작 '트빌리시, 화분에 핀 꽃'

짙은 밤과 눈부신 햇살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깨었다 잠들기를 반복했다

'그래

생은 이런 거야'

어디선가

알 수 없는 공간 너머에서

쉰 목소리로

운명이 말을 건넸다

마음 밖의 세상에서는

꽃이 만발하고

만추가 눈부셨다

다시 어둠

다시 눈부신 날

다시 잿빛 눈물

다시 그대의 소리 내어 웃는 웃음

아! 그렇구나

생이라는 것이

(한희원의 시 '20201001' 전문)

한희원 작 '별과 나무와 늙은 사람'

10월이 다가오니 산빛이 달라지고 강이 흐르는 소리도 깊어진다. 5000m가 넘는 고산이 즐비한 조지아의 북부지역에 9월이 되면 벌써부터 산언덕에 있는 나무들이 눈부시게 변한다. 여름 내내 입고 있던 녹색의 기운을 버리고 짙은 노랑과 황금색으로 언덕의 운치를 지키고 있다. 햇살과 바람에 우수수 온 몸을 떨며 지상에서 마지막 향연을 즐긴다.

언젠가 9월에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를 간 적이 있다. 러시아용 카키색 미니버스를 타고 바이칼 주변의 나무숲을 달렸었다. 무리지어 산을 덮은 나무들과 공허함이 스며든 들녘에 나무 한그루가 황금색 은빛으로 홀로 서 있었다. 우리네 인간은 늙어갈수록 피부가 메마르고 거칠어진다.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점점 볼품이 없어지는데 나무는 황혼녘에 이르러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다. 나무는 햇빛을 받으면 더 찬란해지다가 바람이 날리면 온몸을 흔들며 격렬하게 춤을 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 가을의 고독을 잊고 덩달아 환희에 젖는다.

조지아 북부의 가을은 나무들이 부르는 거대한 '환희의 송가'이다. 코카서스 산맥의 서북쪽의 우쉬굴리, 메스티아. 중서부 지역 라짜의 암브롤라우리. 지금은 러시아 땅으로 귀속된 북동부의 오세티야. 그리고 카즈벡산과 스테판츠민다. 가장 북동쪽에 있는 달트로, 오말로로 이어지는 이곳 코카서스 산맥의 가을은 가을이 부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의 환상을 최대치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쿠타이시에서 북쪽으로 향하면 조지아인들이 가장 청정하다고 말하는 트키불리, 치아투라, 암브롤라우리를 갈 수 있다. 북부 산악지역에서 흐르는 리오니 강은 산과 산을 넘어 이메레티주의 중심 도시 쿠타이시를 가로질러 흐른다. 암브롤라우리는 조지아에서 가장 때 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정경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 땅에 속해 있는 오세티야와 맞닿아 있다.

오세티야는 조지아의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2008년 8월에 일어난 조지아군과 친 러시아 성향의 남오세티야 분리주의자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1991~1992년에 일어난 전쟁으로 남오세티야는 사실상 독립국이 되었지만 국제적으로는 조지아의 일부임을 승인 하에 봉합되어 전쟁의 씨앗이 드리워진 지역이다.

한희원 작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

2008년 남오세티야 전쟁에서 러시아 연방군은 남오세티야 지역의 러시아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으로 참여하였다가 조지아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러시아는 조지아 전역에 공습을 시작했다. 조지아는 사실상 러시아에 항복하였으나 러시아는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그해 8월 12일 러시아는 공격을 종료하였고 13일에 유럽 연합 의장국인 프랑스의 중재로 평화안에 합의하였다. 14일 미국이 조지아 전쟁에 개입할 것임을 선언하자 러시아의 반발이 이어지고 16일 날 러시아가 최종적으로 평화안에 서명하였다.

2019년에 러시아 하원의원의 조지아 국회의사당 연설사건에서 비롯된 시위는 두 민족 간의 뿌리 깊은 감정에서 기인하였다. 조지아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인 암브롤라우리와 최고급 와인 '판치카라'를 생산하고 있는 이곳은 전쟁의 아픔을 겪은 현장과 이웃하고 있다. 우리는 만남과 이별이 맞물리고 행복과 불행이 언제나 맞닿아 있는 삶을 살아간다. 역사의 현장도 우리의 삶 속에서 폭발하듯이 숨죽이며 꿈틀거리고 있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srb.co.kr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