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청정의 풍경은 태초의 거친 아르다움을 선사하고

입력 2020.10.22. 19:20 조덕진 기자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
<48> 남오세티야 전쟁과 라짜지역(하)
'가을 자바하시빌리'

누군가 버린 쓸쓸한 시간을 뒤로하고

당신의 시간 속에 나의 그림자가 희미해질 때

내 그림자 수은등 아래서 더 짙어지네

누군가 버린 쓸쓸한 시간을 뒤로하고

텅 빈 주머니에 얼어붙어 차디찬 마음을 담고 길을 떠나네

지나간 계절이 흘린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리고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가을은, 가을은

내 마음을 알려는지

세월은 흐르고 흘러

너도 없고 나도 없는

허수한 시간의 끝에서

지우고 지워 이제는 희미한

너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나

지워져가는 너의 시간이여

지워져가는 나의시간이여

(한희원)


트빌리시에서 그림이 내 삶의 이유였다면 음악은 나를 위로해 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적막한 화실과는 달리 밖에서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 동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여행자들이 캐리어를 끌고 가는 소리, 가끔씩 들리는 개 짖는 소리, 갑자기 휘몰아치는 돌풍 소리, 양철지붕에 내리는 빗소리,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등 평소 일상적인 삶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날아와 가슴 깊이 파고들었다.

말을 주고받을 상대가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생활하면 모국어를 잊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겼다. 침묵의 공간에서 지내니 그동안 세상의 소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던 작은 소리들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하루 종일 적막이 흐르는 폐쇄적인 곳에 있으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황폐해져 고독이 슬그머니 자리를 잡았다. 고독은 영혼을 깊고 견고한 세계로 이끌면서 우울을 동반한다.

주방에서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하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변해 가는 하늘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본다. "으스스"하고 나뭇잎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에서 파동이 일어났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가 무척 반갑게 느껴지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아 있다 다시 어두운 작업실 방으로 들어오면 유일한 벗인 음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낡고 헤진 검은 소파에 앉아 음악과 속닥거리며 오늘 그려야 할 그림을 머릿속으로 스케치 한다.

'붉은귀향'

트빌리시에서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차이코프스키, 브람스, 라흐마니노프 곡을 많이 들었다. 음악은 이방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영혼을 포근히 안아준다. 음향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연주를 반복해 들었다. 가끔 팝이나 가요를 들으면 위로를 받기보다는 마음을 더욱 가라앉게 했다. 클래식은 주저앉은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어루만지며 토닥여 주었다. 밝고 힘찬 음악보다는 애조를 띤 서정적인 음악을 주로 들었다. 슬픔을 머금은 음악은 눈물을 닦아주는 힘이 있다. 극심한 외로움과 슬픔은 동질적이지만 서로 마주하면 서글픔을 치유하고 위로해준다.

조지아 중서부지역의 가장 북쪽인 암브롤라우리는 어떤 음색을 지닌 곳일까. 조지아에서도 가장 청정 지역으로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라 그런지 상상의 나래가 저절로 펼쳐졌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브람스의 첼로의 저음, 군더더기 없는 슈베르트의 가곡일까.

조지아 여행에서 일반 관광객이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 서북쪽의 우쉬굴리, 중서북쪽의 암브롤라우리, 동북쪽의 달트로, 오말로 지역이다. 러시아와의 국경 지역으로 코카서스 산맥이 이어져 천연의 모습을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청정 지역이다.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 험한 산악 지역을 흔들거리며 장시간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한국 관광객들은 트빌리시 인근만 다녀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지아의 산악 지역 풍경은 유럽 여행에서 흔히 보는 풍경이 아니다. 잘 다듬어진 그림 같은 풍경과는 거리가 먼 태초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저녁 므뜨끄바리강'

치아투라 암브롤라우리는 라짜 지역으로 불린다. 이 지역의 여행은 쿠타이시와 트키불리에서 시작된다. 청정 지역인 라짜는 꿀이 유명하다. 쿠타이시에서 그레미 성당을 지나면 곳곳에 방목하는 가축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트키불리는 오랜 역사를 지진 탄광촌이다. 우리나라 강원도 사북이나 태백의 검은 먼지와 퇴락한 모습이 오버랩 된다. 몇 년 전에는 탄광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를 겪었다.

암브롤라우리로 가려면 트키불리에서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 가을에 이곳에 오면 10월의 산색과 고원은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색으로 물든다. 가을 풍경들이 오래 전 빛바랜 기억으로 인도하며, 퇴락하고 희미한 미학으로 감히 끼어들 수 없는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조지아에서 가장 먼저 와인을 만든 암브롤라우리가 시간에 물들어 간다.

샤오리 호수와 호수 물빛보다 더 맑은 공기와 푸르른 초원,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와 앙칼진 바람에 흔들리는 거친 풀잎, 온 세상을 제 집 마냥 휘젓고 다니는 바람, 눈이 부시도록 투명한 햇살, 속없이 그저 좋은 사람들. 이런 암브롤라우리에 공항이 세워진다는 소문이 들린다. 공항이 생기면 쉽고 편히 갈 수는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암브롤라우리를 눈에 담으려면 지금 가야 한다.

한희원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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