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조지아를 찾은 러시아 작가 푸시킨, 톨스토이, 고리키 (3)
안개가 거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도 안개가 있다
안개는 서성거리기도 하고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안개가 너에게도 침범한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시야가 흐려 보이지 않는다
안개가 기도를 한다
스스로 걷히기를 기도한다
안개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가 걸어왔던 길은 어디서부터일까
그가 걸어왔던 길은 어떠했을까
안개의 마음을 휘저어본다
그의 중심에 들어가 목소리를 들어본다
어디에도 있을 것 같고
어디에도 없는 너의 실체
어느 순간 안개가 나의 마음속에 들어와
떠나지 않는다
(한희원의 시 -안개- 전문)
인간은 생의 시간을 걸으면서 두 종류의 병을 앓게 된다. 마음의 병과 몸의 병이다. 이 두 병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몸에 이상이 느껴지면 마음을 편하게 갖고 좋은 음식과 숙면을 취하면 자연스레 치유됨을 느낀다. 모든 병이 몸의 내부에서 자가 치유 되지 않고 큰 병으로 진행된다면 생을 견디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불치병도 하나씩 정복해 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환경이 변하면서 알 수 없는 무서운 병을 경험하기도 한다.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이런 변화는 인류의 미래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임을 미리 예고하는 건 아닌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법정스님께서는 살면서 인간관계가 가장 힘들다고 말씀하셔서 놀란 적이 있다. 깊은 산속 암자에서 기거하며 만나는 사람 대다수가 공경하는 분이었을 텐데 인간관계가 힘들다니 의외였다.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요즘처럼 인간관계가 다양하고 복잡하면 더 그렇다.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TV나 유튜브 같은 매체를 통한 간접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상처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관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홀로 살 수는 없다. 간혹 자연의 품속을 파고 들어가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그 삶 또한 녹록치 않을 것이다.
사설이 길어졌다. 예술가 중에는 정신적 고통이 심하고 몸이 병약해지면 이를 치유하기 위해 거처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가 거처를 옮기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작품의 탄생을 예고한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도 러시아 남부지방으로 추방당하고 조지아의 카프카스를 여행하며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가 쓴 시는 훗날 조지아를 찾은 톨스토이에게 영감을 주어 또 다른 작품을 태어나게 했다.
푸시킨은 1820년 6월초부터 8월초까지 카프카스를 방문하였다. 흑해 연안으로 추방당했다가 니콜라이 라예프스키 장군의 집을 방문하고 그 가족과 친분을 쌓게 된다. 푸시킨은 라예프스키 장군의 셋째 딸인 마리아 발콘스카야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마리아 발콘스카야는 푸시킨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지 못한다. 나중에 그녀는 데카브리스트였던 안드레이 발콘스키와 결혼해 유배지인 시베리아 이르쿠츠크에서 생활한다.
푸시킨은 추방지에 있는 강에서 수영을 했다가 심한 감기에 걸린다. 이를 지켜보던 니콜라이 라예프스키 장군의 권유로 카프카스를 여행한다. 그 당시는 러시아와 카프카스가 갈등 상태라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푸시킨은 군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카프카스를 방문한다. 그는 카프카스의 광천수를 마시고 트빌리시에서 온천욕을 하며 몸을 회복한다. 트빌리시에 가면 푸른 타일에 이슬람 양식으로 지은 유황 온천장인 오르벨리아니(Orbeliani Baths)가 있다. 건물 외벽에는 '세상에 이곳보다 좋은 온천은 없다'라는 푸시킨의 찬사가 새겨져 있다. 푸시킨은 카프카스를 여행하며 러시아에서 볼 수 없는 풍광에 감동한다. 그의 시 '조지아 산 위에서', '카프카스의 포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카프카스에 매료되었는지 알 수 있다.
조지아 산 위에서
조지아 산 위에 밤안개 내려앉고
내 눈앞에 아라그바 강이 술렁인다
내 마음 울적하고도 가벼워
반짝이는 나의 슬픔은 온통 그대로 채워졌다
그대만으로, 오직 그대 하나만으로... 나의 우수는
그 무엇도 괴롭히거나 휘저을 수 없다
가슴은 또다시 불타며 사랑하는구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으므로 -푸시킨
카프카스의 포로
슬픈 이별의 날들에
생각 깊은 나의 노랫소리는
카프카스를 생각나게 하는구나.
광야의 은둔자 같은 음울한 베쉬투봉
머리가 다섯 개 달린 벌판과 마을 지배자는
내게 새로운 파르나소스였다.
내 어찌 잊겠는가, 그 깎아지른 봉우리와
솟구치는 샘물과 황량한 평원을,
타는 듯한 광야를, 너와 내가 더불어
젊은 날의 인상을 서로 나누던 곳.
용감한 도적이 산을 타고 말을 달리고
야만적인 영감의 천재가
깊은 정적 속에 숨어있는 그곳을,
너는 어쩌면 여기서
가슴 따뜻한 시절과
모순 가득 찬 정열의 추억을 찾을 것이다.
친숙한 꿈과 익숙한 고난
그리고 내 영혼의 비밀스런 음성을. -푸시킨
한희원은
시인을 꿈꾸던 문청출신의 한희원은 조선대 미대를 나와 교사로 활동하다 1997년 '내 영혼의 빈터'를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열며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50여 차례의 개인전과 국내외 전시에 참여했다. 2015년 양림동에 '한희원 미술관'을 개관했다. 화업 45년 만에 화가의 길을 침잠하기 위해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일년 동안 작업활동을 했다.
- 화가의 안식년, 한희원의 트빌리시 편지12. 산악마을 ‘우쉬굴리’를 향하여(하) 존재로서의길과 나뭇잎/ 바람과 초원/ 그와 같다나는 너를 느끼고/ 네가 나를 느끼는/ 자유로움나의 전부를 내 보이고/ 너를 아는 것/ 그 존재로서의 (한희원 작 ‘존재로서의’)슬픈 영혼을 찾는 조지아 민요 술리코를 가슴에 담고 메스티아와 우쉬굴리 그 먼 이상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우쉬굴리는 메스티아를 거쳐야 갈 수 있다. 트빌리시에서 메스티아까지 가는 교통편은 버스와 기차 또는 비행기가 있다. 조지아는 비행기가 대중화된 이동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비행기가 운항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낭만적인 여행을 기대한다면 밤 기차 행을 추천한다.트빌리시 중앙역에서 밤 9시쯤에 기차를 타면 2~4명이 탈 수 있는 침대 열차가 있다. 이 열차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밤새도록 산악지역 작은 마을의 전설을 휘감은 채 몸을 누인다. 우리는 침대칸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우리가 부르는 술리코를 듣고 다른 칸에 있던 여행자들이 우리 곁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박문옥의 노래가 지친 여행자들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9시에 출발한 밤 기차는 아침 6시에 조지아의 서부 도시인 주그디디에 도착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역에서 조금 걸어가면 메스티아로 가는 마슈르카가 기다리고 있다. 만석이 되어야만 출발하는 낡은 미니버스 마슈르카가 여행자를 싣고 아침을 가르며 메스티아로 향한다.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우쉬굴리에 먼저 가기로 했다. 슈카라 빙하(5,193m) 지역을 둘러본 후 메스티아를 여행하고 트빌리시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메스티아에서 우쉬굴리로 가는 길은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계곡을 끼고 가는 험준한 길이었다. 빙하로 가는 대평원 위에서 바람이 들려주는 신화를 들으며 두 시간을 달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유럽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우쉬굴리였다. 이곳은 70여 가구에 200여명 정도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산과 들녘에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돼지들이 인간과 함께 노닐고 있었다. 우쉬굴리의 정류소에서 여행자들이 만년설에서 시작한 개울 옆에 앉아 지친 몸을 누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숙소는 버스정류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덩치가 큰 주인은 늙은 부모를 모시고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주인은 두 딸을 끔찍이 사랑했다. 트빌리시에서 제법 비싼 돈을 주고 기타를 주문해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두 딸은 박문옥과 화음을 맞춰가며 노래를 불러 주위를 즐겁게 했다. 마을을 산책하다 돌로 지은 이층집에 시네마라는 간판이 걸려있어 들어가 보았다. 우쉬굴리 출신 영화감독 ‘마리암 해치바니’가 연출한 ‘데데’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있었다. 조지아영화로는 드물게 국제영화에서 상을 받은 영화인데 우쉬굴리의 사계절이 배경으로 나오는 슬픈 사랑의 영화였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여주인의 친언니가 감독이어서 직접 만날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영화감독을 만난다고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영화감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수더분한 할머니가 계셨다. 화려한 영화계를 뒤로 하고 고향의 깊은 산속 마을에 정착한 마리암 여사의 삶이 오히려 영화 같았다. 그날 밤 동굴 같은 이층 돌집 영화관에 바람이 찾아들어 담요를 뒤집어쓰고 영화를 보았다. 한참 영화에 빠져있는데 문이 덜컹 열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늙은 소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영화를 보니 우쉬굴리의 겨울 풍경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눈 숲에 갇힌 우쉬굴리. 영화를 보는 내내 몸은 차가웠으나 마음은 따뜻했다.다음날 설산 슈카라 빙하로 향했다. 걸어서 왕복 여섯 시간이 걸리는데 우리는 그날 메스티아로 나와야 해서 지프를 타고 출발했다. 바람과 함께 걸으며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인간의 언어는 어느 순간 영혼을 목마르게 한다. 중간에 지프를 먼저 가게 한 후 가을로 접어든 평원을 걸었다.바람과 풀잎과 개울이 침묵의 평원을 감싸고 있었다. 끝이 없는 아스라한 풀숲 사이를 따라 걸었다. 저 슈카라 빙하를 넘으면 수많은 역사를 함께 한 러시아 땅이다. 러시아의 문호들은 이 높은 산맥을 넘으면 따뜻한 나라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산을 넘었다. 평원이 끊기고 차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나왔다. 여기서 빙하까지 한 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언뜻언뜻 보이는 산길에는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여행자를 위한 카페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기류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은 신화를 향한 손짓이었다. 산길을 걷는 우리들의 영혼도 개울처럼 맑았다. 한참 산길을 오르니 하얀 고산이 눈앞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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