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제주 빛낸 빛바랜 벙커···광주 빛낼 건축물은?

입력 2022.11.30. 09:36 이삼섭 기자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⑦·끝. 제주 ‘빛의 벙커’
국가 통신시설,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지역 대표 명소로 돋움…섬 전체로 파급
아르떼뮤지엄·노형수퍼마켙 등 줄이어
유네스코창의도시 광주, 가능 자산 많아
제주 성산읍 '빛의 벙커'에서 유명 서양화가의 작품을 활용한 전시가 펼쳐지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공공미술로 지역을 ‘펀(FUN)’ 하자 ⑦·끝. 제주 ‘빛의 벙커’ 

이것 하나로 시작된 제주가 몇년만에 온통 빛의 향연이다. 주인공은 바로 '빛의 벙커'. 옛 국가 통신시설로 사용되던 벙커가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재활용되고, 아르떼뮤지엄과 노형수퍼마켙 등이 잇따라 개관하면서 제주 전체가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특히 빛의 벙커는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물을 원형 보존하거나 허물지 않고 건축물의 특성을 살려 다른 의미의 생명을 불어넣은 사례로, 옛 건축물 활용 논의가 활발한 광주에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시설, 민간 매각 후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빛의 벙커는 제주 서귀포 성산에 있는 옛 국가기간 통신시설로 사용되던 벙커를 재활용했다. 1980년대 지어진 벙커는 오랜 시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국과 일본 사이 해저 광케이블 통신망을 운영하기 위한 국가 시설로 군인들이 상주하던 곳이기 때문이다. 축구장 절반 정도 크기인 900평 면적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흙과 나무를 덮어 산처럼 보이게 위장했기 때문에 '잊혀진 시설'이었다.

이 벙커는 1층 단층 건물에 가로 100m, 세로 50m, 높이 10m, 내부 높이 5.5m에 달했다. 내부에는 기둥 27개가 나란히 있어 탁 트인 시야와 공간의 깊이감이 살아 있었다. 거기에 더해 외부의 빛과 소리가 완전히 차단된 내부 공간까지. 이 같은 특성은 몰입형 전시를 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2010년 국가기간 통신 벙커 유휴공간화에 따라 민간에 매각된 벙커는, 2017년 몰입형 전시 공간을 찾던 사업자 ㈜티모넷에게 발견(?)되면서 비로소 세상과 연결된 공간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불과 공사를 시작한 지 1년만인 2018년 11월 전시관이 개관한다.

벙커 안에서 펼쳐지는 몰입형 전시에 관객들은 환호했다. 개관 1년만에 56만명의 관람객을 달성한 데 이어 2020년 누적 관람객 100만명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클림트 전으로 시작한 전시는 반고흐, 모네, 르누아르. 샤갈, 세잔, 칸딘스키까지…. 대중성 있는 세계적 작가들의 몰입형 전시를 선보이면서 제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거듭났다.


◆900평 5.5m에 펼쳐진 한 편의 캔버스

지난 19일 성산읍 고성리에 위치한 빛의 벙커로 찾아가는 길. 차로 구분도 안 되는 샛길을 한참 들어간 끝에 빛의 벙커를 알리는 표지판 하나 두개 등장하며 낯선 관람객에게 '잘 찾아왔음'을 알렸다. 빛의 벙커 주차장에서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제주에서 으레 보이는 오름에 육중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미디어아트 전시를 알리는 광고판과 철문 사이로 보이는 매표소가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영락없는 군사시설이었다.

철문 사이를 지나 미리 예약해 둔 티켓을 인증받자 또다시 두꺼운 철문이 가로막았다. 이 안에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있다는 게 쉽사리 상상가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의 틈새조차 허락하지 않은 철문을 여는 순간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책에서나 보던 세잔의 명화들이 360도 시야를 꽉 채우고 동시에 웅장한 사운드가 오감을 사로잡았다. 900평, 높이 5.5m의 규모에 이르는 공간에 수십개의 비디오 프로젝터와 스피커가 만들어내는 장관에 관람객은 압도당한 듯 넋을 놓았다. 수많은 사람들은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숨죽인 듯 앉아서 그저 눈 앞에 흐르는 변화에 시간을 맡길 뿐이었다.

전시를 지켜보고 있던 한 관람객은 "작품을 감상한다는 표현보다는 느낀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며 "그림과 음악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느낌"이라고 감탄했다. 또 다른 관람객은 "넓은 공간 자체가 한 편의 그림 같다. 압도적이었다"며 "군사시설로 쓰이던 벙커 안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특별해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빛의 벙커는 그동안 클림트나, 고흐, 모네, 세잔 등의 유명 서양 화가들의 명화 위주로 전시했지만, 앞으로는 이중섭 등 제주를 대표하는 유명 작가들과 신인 작가 등의 작품들도 미디어아트로 전시할 예정이다.

제주 성산읍 '빛의 벙커' 내에서 전시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관람객들이 이를 체험하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제주, 미디어아트 선도도시로 변모

빛의 벙커의 효과는 단지, 제주를 찾는 관람객들에게 볼거리 하나를 준 것 이상의 영향을 미쳤다. 빛의 벙커를 시작으로 제주 전역에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몰입형 전시관이 연이어 생겼다는 점이다.

빛의 벙커에 이어 '아르떼뮤지엄 제주'가 2020년, 노형수퍼마켙이 2021년 문을 열면서 제주가 그 자체로 미디어아트의 성지가 된 것이다.

제주 애월읍에 위치한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과거 스피커 제조 공장으로 사용되던 약 4천500㎡, 최대 높이 10m에 이르는 공간을 개조해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명화를 주로 다루는 빛의 벙커와 달리,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섬이라는 제주의 고유 특색을 스토리텔링한 작품을 주로 선보이고 있어 차별화하고 있다. 제주의 성공에 힘입어 아르떼뮤지엄은 2021년 8월 여수, 12월에는 강원 강릉에도 전시관을 열었다.

제주 해안동에 위치한 노형수퍼마켙은 옛 서커스장을 활용한 전시관이다. 서커스장으로 활용되던 건물답게 약 4천㎡에 이르는 면적과 최대 20m의 높이로 압도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이들 몰입형 전시관은 최대 2만원에 이르는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관람객들의 만족도가 높아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다양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들은 미디어아트의 대중화를 더욱 더 앞당기고 있다.


◆옛 건축물 활용…광주, 활용 자산 많다

빛의 벙커의 사례처럼 옛 공장이나 발전소 등을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으로 활용하는 것을 '아미엑스'(예술·음악 몰입형 체험)라고 한다. 이전의 기능을 상실한 건물을 예술 공간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기존의 건물의 구조를 변화시키지 않고 원형의 모습에 기능만 달리 활용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면서도 관람객들에게는 이색적인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특히 빛의 벙커 앞에는 커피박물관 '바움'이 있는데, 이 또한 옛 병사 숙소를 개조한 것이다. 전시관을 방문한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하나 더 얹어주는 셈이다.

제주시 성산읍 '빛의 벙커'. 사용이 중단된 옛 군사 통신 시설을 활용해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빛의 벙커, 아르떼뮤지엄 제주, 노형수퍼마켙 이 세 건물의 공통점은 옛 건축물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특히 공장이나 서커스장, 벙커 모두 일반적 상업시설로는 사용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런 특성이 오히려 일상적이지 않은 경험을 줄 수 있는 미디어아트 전시장으로 활용하기에는 최적의 장소가 되는 셈이다.

이 같은 사례는 광주의 미디어아트 전시 장소의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광주는 2014년 12월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광주비엔날레,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같은 풍부한 문화 인프라와 함께 빛고을로 칭해지는 빛의 도시라는 이미지를 현실로 구현해내기에 미디어아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주는 창의도시로 선정되고도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별다른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빛고을 시민문화회관에 문을 연 '광주아트플랫폼'이 있지만,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게 현실이다. 미디어아트의 대중화를 위한 미디어아트 전시관이 필요한 상황이다.

다행(?)으로 광주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활용할 건축물이 다수 있다. 특히 임동 전남·일신방직 옛터가 최적지로 주목받고 있다. 개발사가 '더현대 광주'를 중심으로 개발하기로 했지만, 적지 않은 대표적 건축물들은 다른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에 있는 옛 공장 건물들은 박물관, 전시관 등으로의 활용이 거론되고 있다.

박홍근 포유건축사사무소 대표는 "최소 70~80년 전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방직터는 옛것과 하이테크가 공존할 수 있는 곳"이라며 "복합쇼핑몰은 최첨단으로, 공장들은 그것들의 느낌을 살려 옛것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이룬다면 광주만의 정체성, 광주에서만 볼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대표는 "방직터의 공장들은 볼륨감이 크기 때문에 공간적으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갖지 못한 경험을 주고, 인문적으로는 최소 7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어 현대 건축물이 가지지 못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다"며 "미디어아트를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공장들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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