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각자도생을 미덕으로 삼는 사회

@김꽃비 독립기획자 입력 2022.12.13. 10:14

매년 이맘때쯤 새해 트렌드를 전망하기 위해 바쁘게 쏟아지는 정보들. 현재로선 희망적이지 못한 예측이 대다수다. 작년에는 어땠을까? 서울대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조명한 2022년의 10가지 트렌드를 떠올려보니 '나노사회'라는 쌉싸름한 키워드가 가장 먼저 스친다. 나노사회는 10억 분의 1이라는 나노(nano)의 의미를 담아 초미세한 입자만큼 극도로 파편화된 사회를 뜻하는데 그야말로 우리 사회가 전통적인 공동체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또는 개인보다 더 미세한 존재로 분류되고 분해된다는 것이다.

다만 나노사회에 대한 전망은 생각보다 더 극심하고 빠르게,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분절화된 나노사회에서 개인은 선택의 중요한 주체가 되지만 스스로의 생존을 책임져야 하는 존재가 된다. 이는 곧 각자도생이 미덕이 된다는 뜻이다.

이제 전 세계는 각자도생의 길로 뛰어들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빗장을 걸어 잠그고 각자 유리한 쪽에 선택적 연결을 꾀하는 경향은 팬데믹 동안 더욱 빠르게 심화됐다.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길어지는 저성장시대, 예측할 수 없는 크고 작은 재난까지 불투명한 미래 속 나 하나 건사하는 것도 힘겹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규범이 정의하는 '바람직한 삶'을 거부하고 고통스러운 굴레만 되는 전통적 공동체의 연결을 자발적으로 끊어내는 MZ세대들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늘날 수많은 커뮤니티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청년들의 삶의 태도는 '각자의 존버(존나게 버티는)', 곧 각자도생이다. 개인의 선택은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는 소중한 권리인 동시에 온전한 책임도 본인이 진다. 다만 타인에게 민폐가 되는 행위는 절대 사절이다.

취업, 결혼, 출산, 육아, 사회적 나이에 따라 요구받는 것이 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1인분의 인생'만을 책임지라는 말이 얼마나 통쾌하고 시원한 해결책일지 말 안 해도 잘 안다. 벌써 두 번의 믿을 수 없는 참사와 코로나19라는 유례 없는 팬데믹을 겪은 청년들이 존버만으로 내 삶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이 통쾌한 해결책이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태도가 됐을 때 그 위험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월 29일, 전 국민의 가슴을 텅 비게 만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한 대한민국을 부르짖어 온 지 벌써 수년, 너무나도 닮은 사고가 또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믿을만한 시스템을 만들자고 함께 분노하고 목소리를 낼 힘이 지금의 침체된 사회 속에서는 없는 것 같다. 책임은 누군가가 지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며 이 끔찍한 사고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우리를 감싸는 은은한 우울을 모른척한다. 일단 나부터 살아남아야 하니까. 하지만 우리 이대로 정말 괜찮을까? 결국은 더 많은 것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사회와 공동체에 충분히 기여하는 만큼 받을 보상이 턱없이 모자란 시대다. 내가 희생하는 만큼 돌려받을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은 시대 '각자도생을 위한 공생'을 고민하자고 미안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다. 1.5인분의 인생을 목표로 삼자라고 말하고 싶다. 해내진 못해도 목표로만 삼아보자. 거창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뒤에 걸어오는 사람을 위해 잠시라도 문을 잡아주는 것, 이유 없이 비방만 가득한 못된 댓글에 '싫어요' 버튼 하나 눌러주는 것 같은 작은 다정함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그날 밤 이태원 그 거리에서도 그렇게 1.5인분의 친절을 베풀어준 사람들이 있지 않았는가.

각자도생은 시대의 흐름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더욱더 분절된 사회를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나조차도 여러 개의 자아로 수많은 커뮤니티 속에 소속돼 살아갈 메타버스 시대라 한다. 각자도생의 나노사회가 유토피아가 될지,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치열한 고민이 그 결과를 만들 것임은 틀림없다. 세계화가 정답이었던 시절이 저물어가는 것처럼 각자도생이 정답인 시절도 저물기 마련이다. 지금부터 우리 각자도생을 위한 공생을 함께 고민하자. 김꽃비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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