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상생이 없는 상생일자리

@이예지 입력 2024.04.09. 16:16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2020년 광주시에서 완성차공장인 '광주글로벌 모터스가' 문을 열었다. 지역 맞춤 일자리 공약에 뿌리를 두는 지역 주도형 노사 상생 일자리를 내걸며 당시 정부와 지자체는 기존 완성차기업의 절반 수준으로 연봉을 책정하는 대신 노동자들에게 주거·의료·교육 등을 지원하는 이른바 '사회적 임금'을 지급하기로 한 바 있다.

상생안의 내용은 시급제 도입, 자동차 업계 최초 '무노조 경영' 등 파격적이었다. 노사 동수가 참여하는 상생협의회가 노조의 역할을 대신하되 누적 생산량이 목표 수준에 미치기 전까진 임금과 복지수준을 동결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광주시가 '광주형 일자리' 사업장이 위치한 산업단지 내 어린이집 운영 예산을 삭감했다. 노동계의 반발로 다시 복원했지만, 애초 약속한 사회임금이 구두로만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이는 처음이 아니다. 가장 큰 혜택이었던 주거지원 정책 또한 난항을 겪었다.

오는 2029년까지 GGM 주변 1만3천세대 규모의 임대주택 조성 또한 지체되고 있다. 광주시는 빛그린 산단 인근 송정동에 LH공사가 지지엠 노동자를 위한 51㎡ 크기 임대 아파트 300가구를 지어 2030년부터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라고 밝혔으나 이미 사회 임금에 대한 논란이 몇 차례 벌어진 상황에서 시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사상생' 이라는 광주형 일자리의 기조에 금이 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GGM 임원 중 노동계 임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윤몽현 GGM 대표이사는 현대차 그룹 출신이며 지난달 3월 취임한 김대식 부사장 또한 현대차 그룹 임원 출신이다. 같은 달 취임한 염규성 비상무이사 또한 광주은행 부행장을 지냈다. GGM은 정관상 내부 임원은 노사균형을 맞추게 돼 있다. 그러나 광주그린카진흥원이 이사 3명 중 2명(대표이사·부사장), 광주은행이 1명(비상무이사)을 지명한다. 현대차 출신으로 이사 2명을 지명한 광주그린카진흥원의 원장 역시 현대차 부사장 출신이다.

GGM이 업계 평균보다 낮은 임금을 상쇄하기 위해 제시했던 사회적 임금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고 출범 이후 2022년 6월까지 50여 명의 퇴사자가 발생했다. 그에 더해 노사 상생이라는 주요 가치를 전면으로 반박하는 임원진 선임으로 또 한 번 논란에 휩싸인 광주형 일자리. 지방에 살아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은 오래가지 못하고 GGM은 현대차의 하청으로 전락했다.

어쩌면 예견된 일일지도 모른다. 광주형 일자리 공장을 만드는 과정 가운데에 산재 사망사고로 두 명의 노동자가 생을 달리했다. 이때 공장 건설의 원청인 광주시와 현대는 유가족에게 금액을 보상하는 것으로 때웠으며, 직접적인 책임은 하청 업체에게 모두 떠넘겼다. 공식적인 사과는 없었다. 노사상생을 기조로 문을 열었지만 사실상 하청노동자의 죽음으로 완성된 것이다.

2019년 박광태 전 광주시장이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큰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그가 저지른 비리, 도덕성에 대한 논쟁을 논외로 하더라도 완성차공장이라는 매우 기술집약적이고 전문적인 경영이 필요한 곳에 전문성과 경험이 전혀 없는 이를 시가 추천을 통해 선임했다. 당시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이를 보은 인사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퇴직공무원들의 은퇴 후 일자리로 시작한 광주형 일자리는 이제 현대차의 하청업체가 돼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끊이질 않는 걸까? 사회연대 일자리는 그 자체가 허상인 걸까?

아니다. 필자는 먼저 4대 원칙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대화가 부재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형 일자리의 상징과도 같았던 상생일자리재단이 경제진흥원에 흡수되며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이하 일자리재단)으로 명칭을 바꾸고, 민선 7기 노사민정협의회에서 합의한 노동인권회관 건립 또한 무산됐다. 광주시는 올해 민간 위탁기관들에 대한 대대적인 예산삭감을 추진하면서 모든 노동정책 집행기관을 일자리재단으로 일원화하고자 했다. 이미 몇몇 노동사업들이 재단으로 흡수됐다. 그리고 재단 직원들은 상당수 경총 등 경제단체 출신들이다. 일자리재단은 광주형 일자리 확산 자문회의도 진행한다. 행정의 편의에 맞게 대화 파트너를 구성하고 노사민정협의회 등의 사회적 대화기구들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구성된 기구들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기 어렵다. 당장 보이는 지표개선, 혹은 성과지표를 논하는 것에서만 그치게 된다. 결론은 지역주도형일자리 사업과 같이 단기간 통계상의 고용지표를 위한 사업들만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에 꼭 청년담론이 동원된다. 청년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정치권의 핑계가 돼버린 듯 하다. 도대체 청년일자리가 무엇일까, 정부와 지자체가 그냥 청년을 고용하기만 하면 그것이 청년일자리인가? 일자리 정책을 단순히 개수를 늘리고, 대기업을 유치하고, 공장을 짓는 방식으로 접근해선 안된다. 더 포괄적인 개념인 고용정책에 대한 논의를 시작으로 지역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일자리들을 어떻게 함께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토론을 '행정이 불편해하는 사람들과도' 함께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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