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미친여자 뒤엔, 늘 슬픈여자가 있고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입력 2024.06.04. 15:50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위원장
김다정 광주청년유니온위원장.

지난 4월 22일, 이슈의 블랙홀이 될 하나의 기사가 뜬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하이브로 부터 배임 혐의로 내부감사를 받고 있다 는 내용이었다. 하이브는 BTS를 키운 회사고 어도어는 하이브의 자회사다. 쟁점은 두가지 였다. 민희진이 경영권 탈취 목적으로 핵심정보를 유출했고, 하이브는 이에 대응하고자 민희진을 해임하려 한다는 것.

그리고 3일 뒤, 25일 민희진 대표가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시간 동안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여론은 완전히 뒤집혔다. '이 개저씨들이' '맞다이로 들어와' 등 어록을 남기며 회견 당시 민대표가 착용한 티셔츠와 캡모자는 품절이 되기도 한다.

경영권 분쟁으로 시작된 이 사건은 한국 엔터업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업계 1인자의 입에서 직접 들을 수 있었다는 것에 파격적인 시사점을 더했다. 사건의 시작은 민희진이 대표로 있는 어도어가 모회사인 하이브에 제기한 '내부고발 문서' 였다. 민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자주 이 내부고발 문서를 언급한다.

그리고 지난 17일, 이 내부고발 문서에 대한 내용이 보도된다. 민대표가 제기했던 내부고발의 주 내용은 '음반 밀어내기 지시' 거부, 항의문서 였다. 먼저 이 사태는 엔터업계의 구조를 알아야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음반 밀어내기 란 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 일정 부분을 구매하도록 해 판매량을 올리는 방법으로, 중간 판매상은 물량을 소진할 때까지 멤버들을 동원하는 팬 사인회 등의 행사를 열어 팬들의 음반 중복 구매를 유도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음반을 사서 듣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스포티파이, 멜론 등 플랫폼을 통해 듣는 스트리밍 문화가 보편적이다. 대중들은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접하지만, 팬들은 소장목적으로 구매, 음반 1개 구매 당 자동으로 응모되는 팬싸인회 이벤트에 당첨되기 위해 음반을 구매한다. 실제로 팬싸컷(팬싸인회 당첨되기 위한 구매량 커트라인) 이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로 음반구매는 이미 팬싸인회, 앨범 구성품인 포토카드 수집 등의 부차적 이벤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음반은 한국에서만 잘 팔린다는 것이다. 미국 음반산업협회(이하 RIAA) 기준 2013년 미국의 CD 판매는 1억 7830만장에서 지난해 2023년 3700만장으로 줄었다. 한국 써클차트 400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는 2013년 830만장에서 지난해 1억 1580만장으로 늘었다. 전세계적으로 음반에서 음원으로 시장이 옮겨 간 사이, 한국만 역주행 하고 있는 것이다. 음반의 과잉공급으로 인한 환경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가 되어 왔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음반기획사가 앨범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2017년 56톤에서 2022년 802톤으로 약 14배 이상 늘었다. 하이브 지분 7% 를 소유하고 있었던 국민연금은 이번 사태로 평가액 701억원을 잃었다. 국민연금은 탈탄소·탈석탄 투자를 한다고 밝힌바 있다.

한국의 보이그룹이 테일러스위프트 보다 앨범을 더 많이 팔고있으나 그들의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적고 그들의 이름도 모른다. 차트가 왜곡되고, 대중들은 음악을 향유하는데 있어 다양한 선택지를 잃는다. 작은기획사, 혹은 발품팔아 뛰는 인디 뮤지션들은 생활고에 시달린다.

초동판매율이 높으면 일시적으로 기획사의 주가는 상승한다. 한국 아이돌들의 평균 활동기간은 길어야 4주다. 자연스레 활동이 끝나갈때쯤 다시 주가가 하락하고 이 떨어진 주가를 회복하려면 앨범판매율을 더 높여야 한다. 같은 곡구성에 사진만 다른 앨범을 또 찍거나, 남은 물량을 소진하려 아티스트들은 팬싸인회, 자체컨텐츠 등 주로 팬들을 상대하고 팬덤의 분위기를 살피는 감정노동에 시달린다. 음악적 성과없이 오로지 이미지로만 소비되는 아티스트들에게 음악이라는 업이 과연 재미있을까? 아이돌의 노동권 또 한 오래동안 지적되어온 케이팝의 어두운 면 중 하나다.

하이브의 첫 시작은 중소기획사 흡수다. 몸집을 불리고 넥슨 전 대표, 김앤장 변호사 출신들을 섭외하며 경영진을 꾸렸다. 하이브 이사진 7명은 전원 남성이다. '이 개저씨들이' 회견장에서 민 대표의 욕설이 납득이 되는 이유다.

'투자자 만난다고 성매매업소에 드나드는 분들도 다 감사하셨는지요'

'내가 당신들처럼 골프를 치기를 해, 술을 마시기를해'

민대표가 같이 골프접대도 하고, 술도 마시고, 하이브 남성들의 우정에 치어리더의 역할을 했다면, 민심장사 라고 불리는 엔터업계에서 내부 감사를 주제로 3일간 무리하게 여론전을 했을까? 하이브 사태는 여성임원이 겪는 차별 뿐 아니라 대중음악의 다양성 파괴, 앨범 과잉공급으로 인한 환경문제, 아티스트 노동권 등 다양한 문제들을 드러냈다. 엔터업계가 만들어온 병폐들을 업계 1인자가 직접 '그것은 문제다' 라고 말했던 두 시간이였다. 어도어는 전직원 42명 중 여성이 40명이다. 민대표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여론이 그에게 기울어진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안다. 미친여자 뒤엔 늘 슬픈여자가 있고,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는 가끔 눈에 뵈는게 없는척, 머리풀고 덤벼들어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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