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살면 재미있게도 '광주정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한 번쯤 듣게 된다. 묻고 싶다. 과연 어떤 도시에서 지역명에 '정신'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그것이 무엇일까 이렇게 끊임없이 고민할까? 광주정신이라는 것은 5·18민주화운동과도 연관이 깊다. 1980년 5월 거리에서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 평화, 인권, 나눔, 공동체의 정신과 감동적인 실천들이 '오월정신', '광주정신'이라는 단어로 치환돼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지난주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와 광주 전역에 자리한 31개의 파빌리온이 뜨거운 열기 속에 개막했다. 그중 비엔날레 창설 30주년을 맞이해 마련된 '광주 파빌리온' 은 가장 주목을 받는 전시였다. 전시를 총괄한 안미희 감독은 광주정신을 '무등(無等, equity)'으로 해석하며 '문화적, 정신적 중추로 광주의 지역성과 역사를 대변하는 무등'을 재조명했다. 광주정신을 무등의 정신으로 확장하며 동시대의 고민과 미래세대의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한 것이다.
특히 광주정신을 해석하는 미래세대의 새로운 관점과 가능성을 논의한 집담회 의 흥미로운 텍스트들을 아카이브 전시로 만나볼 수 있었다. '광주', '오월', '무등'을 주제로 지역 현장에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온 청년 기획자, 활동가, 예술가, 연구자 등이 에 함께 참여해 유의미한 목소리를 들려줬다.
광주에는 1980년 5월의 끔찍한 참상을 직접 겪은 사람들과 당시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등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로부터 5·18의 기억을 전승받은 '비경험세대'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광주에 사는 1980년 이후의 세대들은 물리적으로 직접적인 5·18에 대한 경험은 없지만, 다른 도시와 비교했을 때 '5·18에 대한 기억이 가득한 비경험세대'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광주 곳곳에서 5·18을 계속 듣고,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1980년으로부터 44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이 비경험세대들은 5·18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다음 세대에게 전하기 위한 '기억의 주체'가 될 것을 요구받고 있다. 작년 광주시의회의 청년의원들이 마련한 릴레이 발언에서 정다은 의원이 "광주의 시민들은 원하지 않아도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는 이유로 5·18을 상속받는다"라고 외쳤던 것처럼 말이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비경험세대로서 '광주정신', '오월정신'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아왔기에, 개인적으로도 '지금 동시대의 사람들이 해석하는 5·18의 가치와 새로운 담론들이 얼마나 '광주정신'에 담기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다. 새로운 세대에 의해 지속적인 재해석을 도전받지 않는 역사는 현재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정신을 무등(無等)의 정신으로 해석하고 '다채로운 높낮이의 신호로 변환해 발송하는 기지국'을 자처한 이번 광주 파빌리온 전시가 반갑게 느껴졌다.
몇 달 전 청년들이 참여했던 한 공론장에서 왜 서울정신, 대구정신이라는 말은 없는데 광주 청년들에게만 '광주정신'을 강요하는지 한탄한 적이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자신은 한 도시가 그 도시의 이름에 '정신'이라는 말을 붙이고 그것이 무엇일까 계속해서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멋지게 느껴진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광주정신'이라는 말이 새삼 멋져 보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니까 기억해"라는 태도보다는 새로운 세대가 '광주정신'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물리적 부딪힘의 자리들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없을무(無)에 등급등(等)을 쓰는 무등은 '등급이나 차별이 없다'라는 명사적 의미도 있고 '그 이상 더할 수 없는'이라는 부사적 의미도 있다. 미래세대에게 널리 기억될 '광주정신'은 무등한 이야기에 또 새로운 무언가를 더해보는 그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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