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 강의 시간에 '사치의 제국(우런수, 글항아리)'이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눈 바 있다. 명나라 말기 널리 퍼진 사치 풍조와 유행의 문화를 탐구한 책으로, 사람들이 소비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차별화하며 정체성 경쟁에 나서는 모습을 잘 보여준 책이다. 그렇지만 책의 주제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식이 권력에 복무하는 과정' 혹은 '지식 그 자체가 권력이 되는 과정'이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명나라의 대표적 지배 계층인 사대부들은 본래 유흥을 목적으로 여행을 즐겼다. 수많은 노비와 기녀, 악사들을 대동했으며, 배를 타고 유람하며 술판을 벌이는 것이 그들의 여행이었다. 그런데 명나라 말기, 성장한 상인 계층이 사대부들의 여행 문화를 모방하기 시작한다. 개중에는 강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사대부들보다 더한 사치와 유흥을 부리는 자들도 나타났다. 이에 사대부들은 신분적 위기의식을 느꼈고, 난데없이 '여행의 품격'을 내세우며 상인 계층과 자신의 여행을 차별화하기 시작한다. '여행의 도'를 얘기하며 자주적이고 검소한 여행을 추켜세우는 한편, 술 마시고 유흥하는 여행이 시끄럽고 번잡하다며 깎아내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사대부들의 말과 글, '지식'을 통해 이론화되고 정립됐고, '지식인'으로서 사대부들의 권위에 의해 수용됐다.
우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경제력에서 상인 계층에게 뒤처져 '사치 경쟁'은 불가하니, 품격을 내세우는 사대부들의 행태가 말이다. 그러나 지식의 힘은 이러한 부분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자신들의 우스운 행위에 우월성과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람들의 가치 체계를 바꾸는 힘 말이다. 이제 사대부들은 기존의 룰대로 경쟁할 필요가 없다. 다시 자신이 짠 판 위에서, 앞선 위치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가는 '지식'이 결정한다. 지금 보면 황당하지만, 당시에는 실제 차별과 학살의 근거가 됐던 우생학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식은 언제나 위협적이다. 유명한 문구처럼, 펜은 칼보다 강하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언론을 가장 먼저 통제하고자 하는 것도, 언론이 그 자체로 권력이 되는 것도, 잘 나가는 기업들이 산하에 싱크탱크를 꼭 하나씩 두는 것도, 대부분 그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사람들의 가치 체계를 지배하고 조작하고자 하는 의지 말이다. 하지만 이는 역으로 지식의 저항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지식이 지배적인 가치 체계를 형성하는 힘만큼, 동시에 그 체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가치 체계에 도전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창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얼마 전, 지식의 이러한 저항 가능성을 매우 잘 보여준 기사 한 편을 읽었다. 미디어오늘의 '서구 언론, 지금도 집단학살이 없는 듯 말하고 있다'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다루는 서구 언론들의 보도 방식을 비판하는 중동 역사가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역사가는 서구 언론이 언어 기교를 통해 이스라엘의 만행을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공격에 정당성을 부여해 준다며 비판했다. 그는 현재 서구 언론이 내보내는 기사의 제목을 수정하며(헤드라인 픽서) 그들이 숨긴 진실을 폭로하는 중이다. 기존의 가치 체계를 지키는 지식(서구 언론)과 이에 저항하는 지식(역사가의 헤드라인 수정)이 부딪히는 순간이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누가 옳은 것일까. 선택은, 그 지식이 어떠한 가치에 복무하는지 알면, 한결 쉬워진다. 물론 정답은 없다. 선택만 있을 뿐이다. 당신의 지식은, 당신의 앎은, 무엇에 복무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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