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칼럼] 잠 못 드는 밤일지라도

@김꽃비 독립기획자 입력 2025.01.14. 15:02
김꽃비 독립기획자

김꽃비 독립기획자

최근 SNS와 뉴스를 통해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단어가 소개된 이후로 이와 관련된 밈들이 연쇄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이 말은 사실 정확한 의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안, 긴장감에 시달리는 현재 대한민국 국민들의 심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큰 공감을 얻었다. 혼란한 국내외 정세에 많은 이들이 잠 못 드는 자신의 상황을 공유하며 점점 더 광범위하게 인용되고 있다.

'내란성'이라는 말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심적 혼란을 의미함과 동시에 국가의 존립과 헌법질서를 흔드는 심각한 '내란죄'를 지칭하는 중의적 의미로 쓰인다. '내란'이라는 단어에 나라 안의 혼란과 내면의 혼란이라는 두 가지 뜻을 담은 것이다.

실제로 친구들과 가짜뉴스가 아니겠냐며 반신반의하던 '계엄령'이 실제 상황임을 깨달았던 12월 3일 그날 밤 나도 새벽까지 밤잠을 설쳤던 것은 물론이다. 이후로도 탄핵소추안 가결까지 국회에서의 긴장 국면, 현재 영장 집행을 둘러싼 공수처와 경호처의 대치 상황 등 매일 밤 뉴스를 끄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내일은 어떤 사건이 생겼을까 두려워 뒤척이다 밤이 길어진다.

연말의 비극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희망찬 새해를 겨우 며칠 앞둔 12월 29일 모두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소식이 뉴스를 다시 한번 뒤덮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애도 기간에도 불면증은 이어졌고 깨어있을 때는 뉴스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사고 당시 모습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매일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나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뉴스를 그만 보고 싶은데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지금까지 전한 소식들이 모두 오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지며 '내란성 불면증'은 전 국민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내란성 우울증'으로 확산되는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사건이라 생각하니 시간이 지나도 우울함과 비통함에서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계엄령 속에 우리는 누구나 80년 5월의 광주 시민이 될 수 있었다. 그날 국회에서 혹시라도 무력 충돌이 일어났다면, 용기 있는 양심의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아찔하다. 80년 5월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울며 쓰라린 세월을 보냈다. 몇십 년이 흘러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소식이 오랜만에 광주 시민들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도시 전체가 위로의 포옹을 건네던 2024년이었다. 그런데 44년 만에 난데없이 현실 속에 등장한 계엄령이 광주 시민들을 다시 한번 그날로 소환했다. 역사 속에서만 등장했던 총칼이 현재의 우리 앞에 놓였다.

연말연시 어렵게 휴가를 내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했을 행복한 여행도 여느 집의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실제로 사고가 있기 일주일 전 우리 집도 어머니의 퇴직을 기념해서 온 가족이 함께 태국 치앙마이 여행을 다녀왔다. 부모님과 5살 조카까지 함께한 여행이었다. 당시 무안에서 취항하는 항공편이 없었던 탓에 인천까지 힘들게 갔지만, 무안공항에서 탈 수 있었다면 당연히 그쪽으로 갔을 터였다.

누군가에게 특별히 일어난 아주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매일 밤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 살아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에서 마주한 따뜻한 온기를 기억해내려 한다. 일생에 단 한 번 만난 적 없는 희생자들을 위해 국화꽃과 편지를 들고 전국의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의 위로를, 영하의 추위에도 거리를 밝혔던 색색의 응원봉이 내뿜은 뜨거운 빛을 기억하려 한다. 한강 작가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라고 다시 한번 질문했던 것처럼, 이런 시대에도 희망은 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 속에도 불을 밝히는 존재들이 있다. 그것은 타인을 향할 때 비로소 뜨거워지는 사람들의 온기였다. 그 온기를 기억하며 용기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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