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사봉에 올랐다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입력 2021.01.05. 17:35


인곡마을 어진골짜기 위로 요 며칠 내린 눈이 소복하다. 뽀드득 소리에 세배길 동심이 살아난다. 밑바닥은 얼었다. '또 미끄러지지 말고 조심하세요.' 막내의 아침 당부가 뇌리를 깨운다. 저수지가 제법 크다. 입석제인 이유를 곧 알게 됐다. 개울가에 큰 돌이 서있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바닥엔 길게 패인 둥그런 돌까지 있다. 누가 그랬을까? 아니라면 자연의 조화라니, 경이로운 일이다. 눈을 거슬리는 산중 전봇대와 들쑥날쑥 이정표도 보인다. 국가지점번호 푯말에 거리표기를 더하면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석장생이 나타난다. 머리에 벙거지, 주름 이마, 왕방울 눈, 주먹코, 꽉 다문 입이 장군의 풍채다. 절 입구이니 살생과 수렵을 말라는 금표(禁標)다. 독 다리를 건넌다. 넓고 길쭉하면서도 두툼한 판석을 고임돌 위에 올렸다. 천년을 넘은 선인들의 지혜와 혼이 묻어난다. 오작교를 닮은 바윗돌 위에 층층나무가 뿌리를 내렸다. 도구통 위의 돌탑이 따라한다. 쌍계사(雙溪寺) 터에 도착했다. 도선국사 이후 한때 19개 암자를 거느렸다하나, 그 많은 발자취는 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없다.

'남도오백리역사숲길' 표지 위로 상수리, 산갈, 떡갈, 굴참, 갈참, 졸참 6형제가 벌써 새순을 준비 중이다. 대나무 이파리의 눈을 털어내는 안내가 계속된다. 잠시 발을 멈춘다. 저기 배를 내밀며 오는 진주인을 기다려야 한다. 늘 동행이 필요하다. 나무계단 위로 능성길, 반짝이는 고개를 더 넘어서니 정상이다. 산불조기발견 초등진화카메라와 삼각점(청풍12) 안내판이 반긴다. 막걸리 한잔으로 '고시레'를 한 후, 목을 축인다. 이 맛이다. 산이 좋은 이유다. 서광목장 터는 활성산 풍력발전이 한창이다. 그 자락에 뱅뱅이골이 있다. 한 여름에도 냉기가 든다는 곳이다.

국사(國師)는 나라의 스승을 말한다. 덕행이 높은 스님에게 내린 왕조시대 최고의 법계였다. 그 가르침이 고픈 것인지 전국에 열 곳이 넘는 봉우리(峰)가 있다. 그 중의 으뜸은 영험하고 기운 찬 이곳이 아닐까? 월출산 천황봉 동쪽, 백마산을 낀 해발 615m 높이다. 금정천을 남에서 북으로 흐르게 하고 탐진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그 위치를 신경준(1712~1781)은 산경표(山經表)에서 '쌍계산 나주남육십리'라 했고, 오늘날엔 '금정면 용흥리 용두로'가 되었다.

국사봉에 오르면 북으로 금성산과 모후산, 동으로 조계산과 제암산, 남으로 수인산과 천관산을 마주할 수 있다. 그런 연유로 괴나리봇짐을 지던 나주, 화순, 장흥, 보성, 강진 사람들의 길목이었고 구한말 호남의소 사령부가 되어 영암의병의 기치를 올렸다. 하지만 한국전쟁 땐 빨치산과 연결되며 큰 슬픔을 겪었다. 그 험하던 덤재를 이젠 국도 23호선으로 쉬 지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지난 아픔까지 잊혀가게 해서는 안 된다.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일이요, 치유와 상생을 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런 염원과 각자의 소망을 담은 후 하행길이다. 의성인이 앞장선다. 맹감나무 잎으로 망개떡, 엄나무 순, 돌배나무 가시, 보리수 포리똥나무, 느릅나무 껍질로 염증치료, 개복숭아 꽃, 팽나무 굴곡, 산딸나무 십자가, 때죽나무 열매로 고기잡이, 옮기면 죽는 자귀 등 나무이야기가 막힘이 없다. 옛 가파치 현자 같다. 한국농업경영인 금정면협의회의 철쭉 밭도 좋다. 임도를 따라가니 작은 목장과 무엇을 위한 것인지 파헤쳐진 곳도 나온다. 무분별은 안 된다. 길가의 솔밭과 오랜 벚나무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 사월이면 흐드러질 그들을 보러오자고 한다.

백마마을이다. 새집이 많다. 인접 도시인의 생활공간이다. 하지만 1가구 2주택에 해당되다보니 한계가 있다. 농막으로 취급하면 비켜갈 수도 있는데... 농촌을 살리는 촉매제가 되고 코로나19로 어딘들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요즘시대에 딱 제격인데...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 영보정을 둘러본다. 느티나무, 소나무와 잘 어울러졌다. 망호리, 송평리, 동호리, 양장리까지... '삼인행 필유아사' 셋이 가면 반드시 스승이 있다며 몸과 마음을 다진 정월 초이틀이었다. 석양빛도 좋다. 전동호 전남도 건설교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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