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낡은 건물에서 나온다

@조용준 조선대명예교수 입력 2021.03.22. 09:50

산업사회가 끝난 후 도시의 부와 활력을 상징하던 공장이나 창고 등의 산업공간은 생명력이 다한 듯했다. 많은 도시가 이를 없앤 후에 그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 등을 세우는 것을 도시발전이라고 여겼다. 이른바 산업공간 이전적지의 경제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활용이었다. 어떤 도시는 시간과 공간의 결합을 통하여 전통문화를 부흥시키고,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산업공간에 창조적 아이디어를 담아 도시 활력의 화룡점정이 되도록 했다.

전자는 활력을 만들지 못한 반면, 후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도시활력의 새로운 동력이 되면서 그 가치는 크게 중요시되고 있다. 폐쇄된 해군 조선소를 친환경 산업의 연구 및 제조센터로 재탄생 시킨 뉴욕네이비야드, 옛조선소 공장을 국립예술대학으로 이용하고 있는 프랑스 낭트시의 창조지구, 폐쇄된 화력발전소를 현대 미술관으로 재생시킨 영국의 테이트 모던, 문화예술 발전소로 재생시킨 헬싱키의 카펠라 전선공장 등 도시공헌 사례들은 수도 없다.

우리 도시는 예로부터 문화예술의 특질이 활발한 문화도시였다. 정부도 문화전당을 만들어서 문화도시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러나 문화도시의 한 축인 도시환경의 문화적 보존이나 이용에는 소홀히 했다. 20세기 최대의 도시학자로 칭송을 받고 있는 제인제이 콥스의 "새로운 아이디어는 낡은 건물에서 나오지 새로운 건물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도시에 딱 맞는 지적이다. 개발 사업으로 생활친밀형 자산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서 누적적 다양성마저 잃고 있다. 결코 아시아 문화중심 도시다운 모습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남·일신방직에 대해 보존과 개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전남·일신방직공장이 단지 근대산업시대 자산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시아 문화전당 못지않은 도시의 화룡점정이 될 수 있는 우리 도시의 마지막 산업공간이기 때문이다. 16세기 중반에 로마 교황 식스터스 5세는 로마의 7개 언덕에 있는 7개 성당을 연결하여 순례자들이 순례하게 했다. 그러자 성당은 물론 거리가 활성화됐다. 지금의 필라델피아 도시구조를 만든 에드먼드 베이컨은 이를 '인장 성장'이라 칭하고 도시활력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도시디자인 구조라 했다.

금남로를 중간 매개체로 한쪽에는 아시아 문화전당이, 다른 한쪽에는 전남·일신 방직공장이 입지하면 이들 두 개의 문화시설과 주변 지역은 물론, 금남로까지 활성화시킬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도시디자인 구조는 결코 흔하지 않은데 우리 도시에 있는 것이다. 산업공간의 가치 지향적 활용은 우리 도시의 위상과 지향점을 더욱 분명하게 해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산업공간의 모습과 가치 등 현황파악이 중요하다. 그런 연후 활용방안은 도시건축, 문화예술 정책, 산업정책의 중심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 시민적 합의도 있어야 한다. 행정의 도시비전과 의지는 더욱 중요하다.

많이 활용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도 넓어진다. 일본 가나자와의 방직공장은 전남·일신 방직과 너무나 비슷하다. 그곳은 도시설계와 문화정책, 산업정책이 결합해 멀티미디어 공방, 드라마 공방, 아트 공방, 뮤직공방 등 5개 파트가 있는 시민 예술촌으로 재탄생했다. 연 이용인원만 100만명에 달한다. 우리 도시에도 이제 이런 산업공간을 활용한 문화예술공간이 하나쯤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문화도시답다. '도시·역사를 바꾸다'의 저자 조엘 코트킨은 도시가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에는 모두 역사와 그 역사가 일으킨 변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했다. 전남·일신방직공장이 사적 소유이고, 도시 재정 자립도 등을 고려하면 어려움이 있으리라 추정되지만, 시민과 행정, 소유주가 머리를 맞대면 도시에 공헌하는 여러 방법이 있으리라 여겨진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에 걸맞은 큰 그림을 기대한다. 조용준 조선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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