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군은, 꽃이 아니다

@김선녀 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입력 2021.11.14. 13:26

군대 내 성폭력 사건으로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국민적 공분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군 성폭력 근절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군은 이미 2014년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 성범죄에 대해 무관용으로 처벌하겠다고 약속했고, 장병 대상 성인지 교육 시수도 연 1회에서 연 4회로 늘려 재발 방지에 애쓰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국방부의 약속이 무색하게 연이어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군이 자살하는 사건이 되풀이되면서 일부 군인들의 삐뚤어진 성 인지 감수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군 조직은 왜 성폭력 사각지대로 존재하는가? 물론 다른 국가들에서도 군 성폭력의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여기에는 우리만의 경험적 역사성이 더해진다. 그것은 징병제와 가부장제 문화의 부정적 영향에 기인한다. 군은 대표적인 조직문화를 가진다. 특히 한국의 군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위기감이 집단적 무의식으로 존재하면서 우리 사회는 그들만의 가부장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국방 임무 수행이라는 특정 역할로 묵인해왔다. 이러한 방관 속에 군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여군을, 하급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이 반복되면서 인권유린에 무감각해지며 여전히 성폭력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분단국가라는 잠재적 위기의식 하에 수십 년간 군사독재를 겪으면서 남성에게 국가를 방위할 의무를 강제로 부여하는 징병제를 통해 군은 남성중심의 특수조직으로 정착되어왔다. 그에 반해 여군은 군대에 자발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여성보다 군인으로서 자신의 능력 발휘를 기대하고 입대한다.

그러나 실제 여군을 대하는 방식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군은 남성중심적 문화를 고수하는 반면 여군은 '군대의 꽃'이 되기를 요구받는다. 때때로 부대에 '높으신 분'들이 방문하면 차출되어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야 했고, 성폭력을 당해 신고를 하는 순간 '관심병사'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2차 가해가 이어졌다. 이러한 삐뚤어진 성 인지 감수성이 누적되면서 결국 성폭력의 일상화로 나타나게 되는데, 권위주의 개발시대를 거치며 고착화된 우리 사회의 불평등한 성별 권력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대한민국 여군은 올해로 창설 71주년이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후 총을 든 여성 500명의 '여자 의용군 교육대'가 창설되면서 여성도 국방의 임무에 동참했다. 이후 여성들의 부단한 활약과 끈기 있는 도전으로 1997년 공군사관학교에 여자 생도 입교의 문이 열리면서 많은 대학에서 여성 학군사관(ROTC)후보생 모집을 독려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여군은 1만2천600명, 군 간부의 6.8%가 여성이고 매년 조금씩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전체 군 병력 중 2.4%에 해당하는 소수집단이라 부당한 대우를 경험해도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구조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18년 여군 보직 제한이 사라졌지만 기갑·포병 등 12개 병과와 더불어 해군은 잠수함 탑승을 허가하지 않고 있어 여전히 여군 진급은 유리천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군의 성폭력 근절을 위해 개선 방안을 제안한다. 첫째, 이미 여러 전문가가 제안했듯이 민간 중심의 사법기관 신설이다. 구조적으로 불평등한 권력관계, 폐쇄적인 조직문화, 가해자에 대한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와 관용적 처벌은 국방부의 개선 노력에도 불구하고 되풀이되는 군 성범죄 사례를 통해 충분히 경험하고 있다. 둘째, 강력한 가해자 처벌이다. 처벌이 우선되고 강력해야 하는 이유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피해자와 유족들의 억울함과 형벌의 엄격성이 담보되지 못해 성폭력을 중대한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가해자에 대한 당연한 '죄값'이기 때문이다. 셋째, 제한적 연금지급과 계급 강등이다. 경제적 처벌과 더불어 상하관계가 명확한 군 문화에서 '계급 강등'과 같은 명예적 처벌도 강력한 가해자 처벌의 수단으로 수반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의 군대는 징병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가지며 병역기피자는 엄격한 사회적 낙인을 찍는다. 그만큼 한국의 군은 의무와 책임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적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애정과 관심을 쏟게 되는 대상이기도 하다. 이제 군은 변화해야 한다. 여군을 성적 대상이 아닌 함께 전우로, 하급자를 욕구 해소 대상이 아닌 동료로 대할 수 있도록 탈가부장을 실천해야 한다. 그래서 '대한강군'의 위상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선녀 교수(호남대학교 사회복지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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