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두나무와 복숭아나무의 만남

@무등일보 입력 2021.11.29. 11:38
강신기 전 광주시 기획조정실장
강신기 전 기획실장

이대도강(李代桃, 쓰러질 강:사람인人변에 지경강畺). 이(李)는 자두나무이고, 도(桃)는 복숭아나무이다.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 대신 쓰러지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복숭아나무의 병충해가 심해서 옆에 자두나무를 심어 놓으면 벌레들이 자두나무에 집중되어 복숭아나무가 무사히 자랐다고 한다. 중국 '악부시집(樂府詩集)'에 실린 '계명(鷄鳴)'이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복숭아나무 우물가에서 자라고, 자두나무 그 옆에서 자랐네. 벌레가 복숭아나무 뿌리를 갉아먹으니, 자두나무가 복숭아나무를 대신하여 죽었네. 나무들도 대신 희생하거늘, 형제는 또 서로를 잊는구나' 이 시는 두 나무의 희생과 성장을 통해 형제 간의 우애에 빗댄 것으로 작은 것을 희생하여 큰 것을 취한다는 의미로 많이 쓴다. 여기서 이대도강이라는 성어(成語)가 나왔다. 나의 살을 내주고 적의 뼈를 취하는 전략이다. 전쟁에서 피아는 각기 장단이 있어 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강화하는 전략이 없으면 승리를 거두기 어려운 법이다. 병법 36계에 나오는 '싸움에는 반드시 손해가 따르기 마련이다. 부분적인 손해를 무릅쓰고, 대국적인 이익을 취해야 한다(勢必有損,損陰以益陽)'는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제20대 대통령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오면서 주요 정당의 대선후보들이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매타버스(매일타는 민생버스)는 호남을 훑고 있다. 이 후보는 25일 첫 일정으로 전두환씨가 사망한 직후 세상을 떠난 5·18 광주 항쟁 부상자 이광영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5·18 학살에 대한 고백과 반성은 물론 최소한의 사과조차 하지 않은채 세상을 떠난 전두환씨 조문은 가지 않아도 계엄군에 의한 총상을 입고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세상을 버린 이광영씨의 빈소는 꼭 찾겠다는 이 후보의 의지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어 목포, 신안, 해남, 장흥, 순천, 여수, 나주, 영광 등 광주·전남 전역을 돌며 민심을 청취하는 등 바람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국가균형발전 정책 제시와 호남의 미래를 열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맞춤형 공약을 내놓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4박5일의 마지막 날인 29일은 대선을 꼭 100일 남겨둔 의미가 큰 날이다. 이날 광주에서 전국민 선대위 회의를 갖고 선대위 인선도 마무리할 계획이어서 사실상 출정식 및 정권재창출의 깃발을 올리는 의미를 갖게 된다. 이날 오전 이후보는 영광을 들러 광주로 오는데, 영광이 경선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의 고향이어서 두 사람의 만남에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광주는 의향이자 예향이며,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다. 임진왜란과 한말의 의병, 일제강점기, 광주학생독립운동, 그리고 5·18민주화 운동에 이르기까지 나라가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불의가 정의를 가로막을 때마다, 분연히 떨쳐 일어나 이를 바로잡은 우리 지역만의 정신적 물줄기가 있다. 광주는 도시 이름 뒤에 '광주정신'이 붙는 가치와 자존의 상징이며, 민주주의를 위해 피를 흘렸고, 평화를 위해 값진 희생을 바쳤으며, 인권을 위해 언제나 깨어있는 도시이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부동산 개론서' 한권쯤은 읽은 사람들이라면, 광주사람들은 누구나 '정치학 개론서' 한권쯤은 다 독파한 내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광주는 그동안 호남의 승리를 위해 투표한 것이 아니라 5·18 가해자의 패배를 위해 투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18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시민의식과 함께 뛰어난 정치의식을 선물했다.

다시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많은 광주시민들은 29일 오전 영광에서 어떤 만남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무와 나무의 만남, 사람과 사람의 만남, 두 사람의 성씨가 오얏리(李)씨여서 이씨 둘이 만나면 자두나무와 자두나무의 만남이 되지만, 이날은 자두나무와 복숭아나무의 만남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날 이대도강은 그저 만남이 아니라, 광주정신이 담긴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다.강신기 전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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