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3월 8일 그날을 기억하며

@김순옥 광주광역시 여성가족교육국장 입력 2023.03.07. 18:33

유엔에서 발표하는 '성불평등지수(gender inequility index) 세계 15위,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성격차지수(gender gap index) 세계 99위'. 우리나라 성평등의 현주소다. 같은 나라의 순위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는지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 혹자는 성불평등지수가 15위니까 세계에서 15번째로 성 불평등한 나라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궁금한 마음에 지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성격차지수 세계 6위에 르완다, 19위에 필리핀이 랭크돼있다. 남·여 평등하게 어렵게 살다 보니 성격차가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여성들이 성평등한 르완다에 살고 싶어 할지는 모르겠다.

성평등이라는 게 아무리 객관화된 지표일지라도 어떻게 측정하느냐에 따라 많이 다른가 보다. 두 지표를 발표하는 유엔과 세계경제포럼같이 상당히 신뢰할만한 기구조차 상반된 관점을 보이는데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성평등의 정도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2021년도 여성가족부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0대 여성은 73.4%에 달한 반면에 20대 남성은 29.2%에 불과했다. 굳이 이런 어려운 통계를 들이밀지 않더라도 치열했던 지난 대선에서 이대남과 이대녀의 표심이 어떻게 갈렸는지 주변에서부터 느꼈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왜 남자만 군대에 가야 하며, 왜 산업재해 사망률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은지를 말하는 '이대남'에게 '남자니까 참으라'고 해야 할까? 왜 성별임금격차는 줄곧 OECD 1위인지, 왜 내가 화장실 가는 것마저 불안해해야 하는지 한탄하는 '이대녀'에게 '지금 세상이 얼마나 좋아진건데 라떼는 말이야…'라고 해야 할까?

잠시 다툼을 멈추고 두 가지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먼저, 대부분의 평범한 여자와 남자는 서로가 다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다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났으며, 나와는 성이 다른 상대방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아닌 경우도 있다), 아들딸을 낳아서 함께 산다는 사실이다. 여성과 투쟁하면서 살아온 남성은 별로 없고 남성과 투쟁하며 살아온 여성 역시 흔치 않다. 우리가 싸워온 대상은 불평등한 제도였지 결코 남성이나 여성이 아니었다.

또 하나, 우리가 지금 과거보다 나은 성평등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성평등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함께 노력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부처 폐지 논란을 겪고 있는 여성가족부가 처음부터 존재조차 하지 않았거나 중간에 없어졌더라면, 성평등을 위한 제도와 그동안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성평등 수준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115년 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숨진 여성들을 기리며 궐기했고 그러한 노력이 열매를 맺어 미국은 1920년부터, 프랑스는 1946년부터 쿠웨이트는 2005년부터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졌다.

성평등한 세상을 위한 노력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어졌고 우리는 여성 대통령, 국무총리, 당대표를 배출한 유엔에서 인정한 세계에서 15번째로 성평등한 나라가 되었다. 거저 얻은 것은 아니다. 지금이 충분히 좋은 세상이라며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개선이 없었을 것이며 그저 투표권에 감지덕지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지금이 충분히 성평등하다며 그만하자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희망한다. 더 이상 여성가족부가 필요 없는 세상을, 더 이상 성인지예산도 필요 없는 세상을. 공정한 경쟁의 결과가 모두 여성이어도, 모두 남성이어도 불편하지 않은 세상을 희망한다. 지금 우리가 3·8 세계여성의날을 기억하듯, 그날이 되었을 때 우리는 오늘의 노력을 기억할 것이다. 김순옥 광주광역시 여성가족교육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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