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높이제한 폐지는 오히려 촘촘한 규제의 시작이다

@함인선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입력 2023.03.08. 10:35

지난 21일 강기정 시장이 발표한 층수 제한 폐지 계획에 대해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 방침이 개발자를 위한 개악이라는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비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동안 광주의 도시 공간 정책이 큰 원칙 없이 대증적 처방에만 의존해왔는바 이번도 새 단체장의 조변석개 조치 중 하나가 아니냐는 우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방안은 지금 광주에 무엇보다 필요한 '도시경쟁력 강화'라는 더 큰 틀에서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21세기 세계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처럼 국가보다는 다시 도시 간 경쟁의 시대가 되고 있다. 또한, 개발과 양적 성장이 미덕이던 전 시대를 반성하며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이 생성되고 이를 먼저 받아들여 도시 간 우위를 점하려는 시기이기도 하다.

세계 선진도시들의 2040, 2050 장기 비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키워드들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개발과 성장'에서 '복원 및 지속가능성'으로, '규제와 관리'에서 '포용 및 협정(참여)'으로, '확산과 발전'에서 '압축 및 안전'으로 등이다. 또한, 이를 구현하기 위한 도시관리 방식에도 큰 변환을 읽을 수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단일용도 지역지구제'에서 '복합 및 특별 지역지구제'로의 변화다. 주거/상업/공업지역 등으로 도시공간을 구분해 사용하는 단일용도제로는 21세기 도시의 다양성과 복합성을 담지 못한다. 이에 용도를 입체적으로 복합하거나 창의적 계획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풀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아예 용도를 미정으로 두는 white zone제를 도입하여 마리나 샌즈 같은 명물을 얻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3기 신도시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둘째, '토지이용 계획제'에서 '형태기반형 규제'로의 변화이다. 지역별 건폐율/용적률/최고높이만으로 건축물을 관리하는 방식은 효율적이기는 하나 도시 집합 경관의 품격이 저하된다. 이에 많은 선진도시들은 먼저 도시설계(urban design)를 하여 형태 기준을 만들고 이를 개별 건축물에 요구한다. 높이는 물론 지붕의 모양, 입면 재료와 창문 모양까지 정하기도 한다. 파리의 구시가지는 높이 37m로 엄격히 제한되나 외부에는 높이 제한이 없다. 런던은 주요 조망점에서의 경관통로(view corridor) 내부는 높이를 제한하되 그 밖은 푼다. 요컨대 장소에 따라 차등규제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셋째, '사후 심의형'에서 '사전 공공기획형'으로 방식이 바뀌고 있다. 완성된 설계를 대상으로 공공성을 확보하려다 보니 사후 심의제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위원의 주관에 따르다 보니 임의성과 예측 불가능성도 문제가 된다. 많은 선진도시는 시가지 전역에 대한 형태기반형(Form-based) 지구상세계획을 갖추고 이와 불일치되는 사안만 심의한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것이 없기에 서울에서는 절충안으로 '신속통합계획'이라는 방식을 도입한다. 공공과 민간이 초기부터 협업하여 계획을 수립하는 사전공공기획제도다.

이렇게 볼 때 금번 발표한 '도시경관 및 건축물 디자인 향상 제도개선 방안'에는 도시관리 방식 변화의 추세를 따르려는 여러 시도가 읽힌다.

첫째, '지표 위주 관리제'에서 '지표+품격 통합 관리제'로의 변화다. 현재의 건폐율/용적률/최고높이 등에 대한 일률적, 정량적 지표를 디자인의 품격, 공공기여 확대 등의 정성적 지표와 연동해 운용하겠다고 한다. 양에서 질로 전환하겠다는 마땅한 시도라 하겠다.

둘째, '일률적 높이 관리'에서 '지구 특성에 따른 차등관리'로 바꾸겠다는 것은 더 촘촘한 형태기반형 규제로 전환하겠다는 의지로서 옳은 방향이다. 예컨대 시 외곽부는 높이 제한을 풀되 원도심은 30층보다 훨씬 낮은 범위로 규제해야 한다. 다만 2040 경관계획의 7개 중점 경관 관리구역 뿐 아니라 시가지 전역에 대한 지구별 상세계획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셋째, '사전 공공기획형 통합심의제'의 도입이다. 공공성 확보 및 디자인 품격 향상을 위해 초기 단계부터 공공과 민간이 협업하거나 설계공모 혹은 디자인 특화 등의 프로세스를 거치는 경우 통합심의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미 세종시와 서울시가 도입하여 뚜렷한 성과를 얻고 있는 제도다. 다만 이 제도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기존 심의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이 과제다.

광주는 2019년에 국내 최초로 도시·건축을 아우르는 최고 규범인 '광주도시·건축선언'을 선포한 바 있다. 선언이 지향하는 가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혁신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이번 방안이 더욱 정교한 디테일과 시민적인 호응을 갖추어 세계적인 품격의 도시 광주로 가는 발걸음의 시작이 되기를 기대한다. 함인선 (광주시 총괄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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