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명의 청년이 커다란 횃불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한다. 그들의 뒤에 피켓을 든 사람들이 따르고 있다. 미로센터에서 출발하여 종각 앞으로, 그리고 5·18민주광장에 멈춘 청년들은 퍼포먼스를 이어간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펼쳐지는 그들의 춤사위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다. 피켓을 든 사람들이 마이크를 든다. "Free! Free! Palestine!" 지나가는 시민들이 걸음을 멈춰 이들을 바라본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행위 예술인가?
'데모'라는 이름의 이 퍼포먼스는 이번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의 프로그램 중 하나다. '데모'의 창작자인 퍼블릭 무브먼트에 의하면 이 작품은 '우리가 어떻게 사회적 구성체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지역 공연팀과 만든 하나의 대중 운동이다. 이들은 공공 공간 속 정치적인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 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광주의 정치적 유산을 신체적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이들의 설명대로라면 '데모'는 5.18의 상징적 장소인 민주광장에서 국가폭력과 저항, 그리고 민주주의의 탄생을 다룬 훌륭한 작품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Free! Free! Palestine!"은 뭐란 말인가? 바로 말하면 이것은 퍼블릭 무브먼트의 '데모'가 아니라, 이를 반대하는 또 다른 데모다. 그리고 5.18을 그려낸 퍼포먼스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이 한자리에 놓인 이유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여러 파빌리온 가운데 하나인 CDA Holon 파빌리온의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CDA Holon은 이스라엘 홀론시에 위치한 예술 기관이다. CDA Holon 파빌리온의 주 후원사인 다니엘 하워드 재단, 미팔 하파이스, 아트포트 텔아비브는 다양한 문화·예술 사업을 통해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이미지에서 핏빛을 지우고 있다. 또한 후원사 중 하나인 스트라타시스는 글로벌 군산복합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이스라엘 제조 기업으로 이스라엘 점령군 IOF에게 무기 부품을 공급한 혐의로 비난받고 있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스라엘 파빌리온의 기획자와 작가는 휴전을 외치며 스스로 전시를 거부했다. 하지만 뒤이어 개최한 광주비엔날레에서 이와 관련한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31개 파빌리온은 국가뿐 아니라 기관도 참여했다지만 국가를 연상시키기 어려운 기관명은 CDA Holon이 유일하다. 불과 지난해에는 이스라엘 파빌리온이라는 국가명 아래 CDA Holon을 표기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명을 지운 것도, '데모'가 지역 학생들을 안무가로 내세워 마치 한국이 5.18 퍼포먼스를 하는 것처럼 만든 것도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정치적 상황들 말고 작품 자체로만 보라는 요구가 있을 수 있다. 혹은 '분쟁국가는 예술을 할 수 없나?', '작품이 국가 이데올로기에 반대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형성에 관한 존재론적 성찰을 시도하는 CDA Holon 파빌리온의 작품들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적어도 그 작품들에서 그들의 나라와 대립하는 타자의 비명은 소거된 것처럼 보인다. 동굴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사유를 펼치는 듯한 그 작품들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동시대 자국의 이슈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다시금 '데모'를 본 날을 떠올려본다. 퍼포먼스는 총기 발포, 폭행, 강제 연행을 연상시키는 폭력적인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생명과 일상을 파괴하는 자국의 폭력적 만행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이, 타국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의 역사를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이러한 작품은 불의에 저항하는 5·18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었다고 볼 수 없다.
그날 '데모' 옆에서 팔레스타인문화연대가 전시와 공연을 중단하라는 입장을 발표했고 녹색당의 연대 발언이 이어졌다. 데모의 데모. 이 중첩된 데모야말로 나에게는 어떤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데모'는 자신을 반대하는 데모를 통해서만 현재성을 가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데 '데모'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은 다른 쪽에도 있다. 이 사태에 광주의 문화·예술인과 지식인들, 그리고 언론이 지나치리만큼 조용하다는 것이다.
최송아 시민자유대학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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