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I ♡ 광주비엔날레

@정은영 문체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운영과장 입력 2024.12.15. 18:51
정은영(문체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기획운영과장)

나는 살아오면서 5.18 민주 정신의 도시 광주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 크기와 무게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광주가 '광주비엔날레'의 도시인 것도 뿌듯했다. 지난 11월 베니스비엔날레의 현장 베네치아에 다녀온 후, 광주비엔날레에 대한 나의 애정은 깊어졌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광주비엔날레 30주년 기념 아카이브 특별전 '마당: 우리가 되는 곳'이 열리는 일 지아르디노 비앙코 아트 스페이스였다. 전시명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30년 시각예술을 통해 세계 공동체가 당면한 문제를 다루는 '마당'의 역할을 해왔다는 자기 인식이 뚜렷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이라이트는 5.18 당시 주먹밥을 담았던 '양은 함지박'이었다. 역사적 맥락에서 광주비엔날레는 5.18 민주항쟁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탄생했다. 그러한 역사와 현재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아, 현재진행형으로 광주정신과 세계와 결합시키는 것이 광주비엔날레의 존재 이유이다. 광주비엔날레가 어렵다는 말을 가끔 듣는다. 비엔날레를 보면서 시각적으로 불편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아서이다. 그러나 예술은 불편함을 통해 우리를 깨어나게 한다. 비앙코 아트 스페이스 입구에는 광주비엔날레 30주년 인터뷰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광주의 원로 대표작가 강연균은 "가끔 나도 몰라요. 그게 미술이죠. 그렇듯이 비엔날레는 성공도 실패도 없는 것이다"고 했다.

베니스비엔날레는 지아르드니와 아르세날레에서 '이방인은 어디에나 있다(Foreigners Everywhere)'라는 주제로 펼쳐지고 있었다. 유심히 관람객들을 살폈다. 연령으로 보면 삼사십대, 사오십대가 많았고, 간혹 은퇴한 백발의 노년 부부, 아이들과 이십대도 보였다. 미술계 종사자, 미술 애호가를 중심으로 비엔날레를 다녀가는 것은 광주나 베네치아나 마찬가지였다. 미술에 대한 경험과 애정이 켜켜이 쌓이면서 찾게 되는 것이 비엔날레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래도 광주비엔날레에 다녀가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유력 정치인이 다녀가거나, K-팝 스타들을 홍보대사로 내세우는 데 애를 쓰는 이유도 이러한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실험적 현대미술의 최전선을 표방하는 비엔날레의 특성상 대중 전시 이벤트를 지향하는 전략은 애초에 모순일 수 있다. 세계 미술계를 향해 다양성과 포용성, 광주정신을 발신하는 마당으로서의 광주비엔날레를 각인시키는 것이 더 나은 소통전략일 수 있다.

베네치아에는 비엔날레말고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었다. 그 중 크리스토퍼 뷔헬의 전시, '몬테 디 피에타(Monte di pieta)'는 단연 압권이었다. 오래된 건물의 지하 1층부터 3층까지를 모두 '거대한 망한 전당포'로 꾸미고 있었다. 전시 규모와 아이디어에서 진짜 통 크게 미친 전시였다. 이 전시는 비엔날레와는 별도로 돌아가는 명품브랜드 프라다 재단의 전시였다. 베니스비엔날레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도, 베네치아의 민간 미술관, 갤러리들이 활기차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 피노 컬렉션의 팔라조 그라치와 폰타 델라 도가나, 산마르코 광장의 루이비통 매장 전시장 등이 그러한 곳들이다.

광주비엔날레 기간 광주에도 다양한 볼거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벼락과 같은 축복'처럼 쏟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 가능성을 올해 비엔날레 기간에 열렸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김아영 작가 전시, '예술공간 집'의 이매리 작가 전시, 양림동 골목을 채웠던 양림골목비엔날레에서 보았다. 공공만 나선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민간의 역량을 키워야 할 일이다. 광주의 미술시장이 자생력을 가져야 하며, 그 기반 위에 국내외 유명 갤러리들의 뛰어난 역량도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광주에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을 유치하는 것보다, 국내외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의 분관을 유치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일 수 있다.

광주의 비어 있는 공간의 활용에 대한 생각꺼리를 던지는 전시도 있었다. 중국의 여성 작가 위 의 '또 한 사람이 죽었어(Another One bites the Dust)' 전시가 열린 곳은 자비기도원 성당이었다. 억압적 사회에서 유약하게 고통받는 인간 군상을 그린 위 홍의 대작들이 옛 성당 벽면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 그림을 보기 위해 내 시간이 그 공간에 머물 때, 베네치아의 자비기도원 성당은 애정할 수밖에 없는 인생 장소가 되었다. 베네치아에 옛 궁전과 성당이 많다면, 광주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 '소년이 온다'의 무대 상무관 등 5.18 사적지가 많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호텔 건물인 무등산장호텔 등 역사와 스토리가 있는 등록문화재도 있다. 광주다운 이 공간들도 비엔날레 공간으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자비기도원 성당에서의 평화와 위안을 잊을 수 없듯이, 광주비엔날레를 방문한 사람들은 그 장소에 대한 애정 토포필리아(Topophilia)로 광주를 기억할 것이다.

광주비엔날레를 경험하고 광주를 애정하게 되었다는 외국인 예술가도 만났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안무가 콘스탄자 마클라스는 광주에서 온 나를 보자, "광주비엔날레 원더풀"을 외쳤다. 몇 년 전 공연차 방문한 한국에서 광주비엔날레를 봤다며, 그 계기로 광주가 좋아졌다고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장르라는 경계를 넘어, 광주와 세계의 예술가를 연결하고 있었다.

제15회 광주비엔날레가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30년 세월 동안 모두가 애썼다. 광주비엔날레는 문화도시 광주가 세계에 내놓을 만한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다른 도시가 부러워할 만하다. 광주비엔날레는 광주시민 모두의 자랑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지난 30년만큼 앞으로 30년,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애정을 듬뿍 주고, 아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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