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해 12월 3일 밤에 야만의 내란이 시작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간다. 용감한 시민들의 깬 마음과 행동들이 그 야만을 저지했다. 온 세상이 놀랐고 우리 스스로도 놀랐고 스스로 또 자랑스럽다. 우리는 지금도 내란을 극복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섣불리 중단하거나 게을러서는 안된다. 민주주의 파괴세력을 철저히 청산하고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반복하지 못하게 막는 일에 우리 모두 힘을 합하여 함께 나가자.
광주는 안다. 대한민국 온 나라가 다 안다.1980년 518민주항쟁을. 비록 45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그날의 고통을 잊지 못한다. 그 생생한 기억들이, 그 두렵고 처참한 기억들이 오늘, 내란극복의 힘이 됐다. 그 처참한 기억들을 이 사회가 잊지 않도록 소중하게 간직하고 전달해야 한다. 이번의 내란극복과정에서도 그 엄동설한에 응원봉을 들고 눈밭에 쓰러저, 전국에서 모인 트랙터 시위대가 남태령에서 막혔을 때 온 나라가 같이 싸우고 지원하며 밤을 새워 이겼다. 눈 속에 묻히는 목숨에서도 아름다운 빛은 찬연했다. 1980년 광주의 기억이 그들을 깨워 일으켰다. 그때 함께한 기억이 그때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이.
1980년 5월 18일 일요일 아침 전남대학교 정문, 도서관으로 가려던 학생들을 무장한 군인들이 막았다. 1979년 10월 박정희독재정권의 폭정에 항거한 부마항쟁에 무자비한 폭력진압으로 대응한 박정희가 그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의분에 찬 총탄으로 쓰러지고 사태수습을 빌미로 정보수사권력을 손아귀에 쥔 전두환 일당이 12.12쿠데타에 이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던 터에 학생과 시민들이 한 목소리로 민주화 여정을 재촉했지만 거짓으로 학생들과 민주시민들을 속이고 5월 17일 밤 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 발령하고 권력야욕을 만천하에 들어낸 것이다. 학교앞의 시위를 무차별 폭력으로 진압하기 시작하여 학생들을 광주 시내로 내몰았다.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데모가 있었으나 시위학생의 수도 적었고 계엄철회를 외칠뿐 비교적 평온했다. 그런데 그 날 오후 3시경에 예고도 없이 금남로에 공수부대를 대거 투입하고 시위대와 남녀 노소 행인 시민을 구분하지 않고 곤봉과 총검으로 구타하고 체포했다. 그 날 오후 7시부터 광주시 전역에 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저녁부터 온 시가 공포와 분노에 휩쌓였다. 5월 19일 아침에는 등교하는 학생과 출근하는 시민들을 사전 예고도 없이 검문하고 학생들과 출근하는 젊은 직장인들까지 모두 잡아내렸다. 그 후로는 시내버스 수색, 구간별 통행제한, 차량에서 잡아내리고, 행인들을 잡아내 겉옷을 벗겨서 차도나 육교를 가로막는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시내는 갈수록 더 삼엄한 분위기가 되었고 공수부대를 피해서 상점이나 가정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끝까지 쫓아 잡아갔다. 이후로는 곤봉, 총검, 최루탄, 실탄사격을 자행했고, 시민들의 항쟁도 점점 더 격렬해지고, 온 시가지가 전장이 되었다. 시내 곳곳을 다니며 군인의 만행을 목격한 택시기사들이 공설운동장에서 금남로, 도청을 향해 차량시위를 하고, 시민들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무장을 했고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군부는 시민들을 폭도로 몰았고 시민들은 공포에 떨었다. 온 시민들이 시위대를 도와서 물을 공급하고 주먹밥을 만들었다. 시민군은 군인과 경찰이 버리고 떠난 경찰서 관공서 은행등 주요 시설들을 지키고 자경단을 만들어서 온 시내의 안전을 지켰다. 군과 경찰이 떠난 광주는 해방구였고 대동세상이었다. 시의 외곽은 봉쇄되어 차량과 시람의 통행이 차단되고 생필품과 의약품도 구할 수 없었다. 일반 환자는 물론이고 시위 도중에 총상을 당한 환자도 혈액과 링거액이 부족해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시내에선 내과계 개업의들이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을 위해 수술도구를 새로 구입했고, 총상 자상 또는 구타 상처환자들이 신원이 노출되는 걸 꺼려 진료차트에 실명을 기록하기를 두려워했다. 전화는 감청되고 시외전화는 차단되었다. 텔레비전에선 특정 가수의 유행가만 나오고 신문도 철저히 검열되었다. 이렇게 처참하게 버려진 도시에서 5ㅤㅇㅝㅎ 27일 군인들이 재점령할 때까지 광주시 전역에서는 약탈 강도 인명피해 등 강력사건이 하나도 없었다. 곡물이나 생필품의 사재기도 전혀 없었다. 놀라운 일이다. 시민의 공동체, 대동세상, 연대와 연민의 삶들을 이어갔다, 우리 시민들의 이 공통경험은 우리의 자랑이었다, 이 경험이 우리를 하나되게 했고, 민주주의 공동체에 대한 자긍으로 자리잡았다.
겨울 마당을 서성여본 사람은 안다. 겨울바람은 매섭다는 것을. 바람은 공기의 움직임일 뿐이지만 나무에 부딪히면 소리를 만들어낸다. 잎이 다 떨어진 나목, 잎이 무성한 동백, 침엽수인 소나무, 대밭을 지나는 바람의 소리를 우리 귀는 쉽게 구분한다.
민주주의의 귀중함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도도하게 흐르는 민주주의가 어디에 부딪혀서 어떤 소리를 내는지. 조화와 화합의 소리가 무엇인지 안다. 그 소리는 크고 또 깊다. 소리가 더 커 갈수록 서로의 믿음이 더욱 깊어간다는 것을. 그 믿음이 커지면 민주주의도 더욱 탄탄하고 깊어진다는 것을. 여러 소리가 섞일수록 더 융숭깊어진다. 여러 가지 나무들이 모여서 일구는 숲이 더 아름답듯이. 그래, 그 바람이 산을넘고 강을 건너 너른 들판을 가없이 넓고 크게 나가게 하자.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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