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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째 살아 숨쉬는 광주학생독립운동

입력 2024.11.10. 15:28 이윤주 기자
이경채 사건 도화선 항일운동
5·18 등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역사 시간 교과서의 한 면을 장식하던 '광주 학생 독립운동'. 나주역 사건을 계기로 1929년 11월 3일 시작된 우발적인 학생들의 항일 운동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에는 그 이면에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1929년 나주역 사건이 있기 3년 전 최규창의 하숙집에서 15명의 학생이 성진회를 결성하였다. 하지만 조직이 노출된 후 자진 해산했다. 이후 성진회의 의지를 이은 독서회가 결성되고 이후 항일 운동에서 소통과 협동을 주도했다.

광주 학생 독립운동이 나주역 사건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태라고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광주 학생 독립운동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진행된 항일 운동이다. 그 중심에는 이경채가 있다.

이경채는 1928년 6월 일본과 천왕을 비판하는 전단을 살포했다는 이유로 퇴학을 당한다. 이 사건으로 광주지역 학생들의 동맹 휴학이 본격화된다. 또한, 이경채는 소녀회의 최순덕과 접촉해 시험지를 백지로 내는 백지동맹을 유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경채는 체포로 구금된 이후에도 그 의지를 꺾지 않고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 상하이, 충칭을 거쳐 중국의 장교가 되어 일본에 맞서 싸운다.

이러한 배경 아래 나주역 사건을 도화선으로 촉발된 광주 학생 독립운동은 1929년 11월 3일 광주지역에서 시작되어 1929년 11월 12일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1930년 1월까지 총 3차례에 걸쳐 약 320학교 5만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항일 운동으로 확대됐다.

이렇게 하나로 뭉친 광주 학생들의 정신은 1930~40년대 독립운동으로 이어졌고, 해방 이후 독재 정권의 탄압과 압제 아래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숨 쉬며 5·18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이끌며 아직도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송희재·이채원·전수빈·표수민·하준서(경신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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