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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학생독립운동 발상지를 가다

입력 2024.11.10. 15:37 이윤주 기자
중심지 광주제일보 기념탑 등 참배
"바른길만이 우리의 생명" 문구 눈길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 만이 우리의 생명이다."

광주제일고(옛 광주고보) 입구에 자리해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비에 쓰여진 문구이다. 이 기념비는 학생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 왜 이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까?

이야기는 1929년 10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기자단은 지난 7일 광주학생독립운동 제95주년 정신계승을 위한 무등일보와 광주동부교육지원청 주최 일일기자체험에 참여, 운동 발상지인 광주일고 곳곳을 둘러봤다.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일본인 중학생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여학생 머리를 잡아당긴 것이 발화점이 되어 일본인 중학생과 조선인 중학생들 사이의 큰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때 '광주일보'는 일본 학생들을 옹호하는 기사를 보도해 조선인 학생들을 비난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광주 제일고 학생들이 분노해 1929년 11월 3일에 일어난 학생시위에 참여, 대부분 학생이 동참하게 됐고 서울, 평양 등 전국 350여 개 학교에서 동참하며 전국적 규모로 확산됐다. 이후 신간회, 청년단체 등이 학생운동을 지원하며 민족해방운동으로 이어졌으나 일본은 학생들을 가두고 언론을 통제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섰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학생들은 끝까지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았다.

광주학생독립운동에는 광주고보의 박준채·왕재일·장재성, 광주농업고등학교의 정동수·정남균·정종석·김한필·문승수·박인생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또 광주교육대학교의 허정숙과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의 신경애가 여학생 대표로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광주학생독립운동은 광주에서 시작됐지만 전국 각지로 확산되며 1919년 일어난 3.1독립만세 운동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독립운동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종욱·이재형·주현호(신광중), 김서현·김의진·노유현(숭일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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