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중학교의 3학년 학생이 교내에서 흉기 난동을 부린 사건이 공중파 방송의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 보도 장면을 함께 시청하고 있던 필자의 아들은 겁에 질린 표정에 엄마가 몹시 걱정된다는 손길을 더해 필자와 눈을 맞추고 얼굴을 어루만져 준다. 실체가 없는 어떤 위로의 정령이 세상의 모든 교사에게 건네는 위로와 치유의 손길인 듯 느껴졌다.
미국의 윤리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개인적 감정인 '분노'를 사회·정치적인 영역으로 끌고 나왔다. 분노에는 누군가를 무시함으로써 그의 지위 격하를 초래하는 '지위 격하에 대한 분노'와 분풀이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분노, 즉 피해에 대한 앙갚음을 해야 하는 '인과응보의 분노'가 있다고 그녀는 소개한다. 이 두 가지의 분노는 과거지향적이며 상대방에게 굴욕을 안기길 원하는 원한과 복수가 깔려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분노, 미래 지향적 분노로 '이행 분노'를 이야기한다. 이행 분노란 규범적 불합리성을 보고 공분하면서 미래 지향적 방안을 모색하는 이성적 단계로 이행하게 하는 분노이다. 또한 그녀는 가족, 연인, 친구 등의 친밀한 영역에서 분노가 아닌 슬픔으로 문제 해결이 충분하며, 직장과 일상 등의 중간 영역에서는 분노보다 아량이나 소송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으며, 공공 및 복리 등의 공적인 영역에서 올바르게 표출된 이행 분노만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청소년들의 분노는 어디서 기인하며 어떤 모습일까. 청소년 분노의 원인을 사회적 불평등과 소득 격차, 경쟁 위주의 입시 문화에서 찾는 것은 기본 옵션이다. 여기에 시대상을 반영한 접근을 해 보자. 올가 토카로추크의 '잃어버린 얼굴'의 주요 소재는 SNS와 부풀려진 자아이다.
SNS라는 공간에서 부유하는 자아는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기 쉽고 부풀려지기 쉬우며, 자존감이 바닥난 인간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하는 책이다. 최근 조사된 10대의 높은 자살률과 SNS의 상관관계에 대한 유의미한 결과가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우정이나 관계의 욕구가 높은 청소년들에게 SNS를 포함한 가상 공간에서 맺어지는 파편화 되고 피상적인 인간관계는 스스로를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경계를 잘짓지 못하는 청소년들도 많다.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10대들이다. 인쇄된 지면은 고정된 페이지가 있으나 클릭과 스클롤로 페이지를 유랑하는 디지털 환경은 페이지라는 선이 없다. 사회 통념상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점점 늘어난다. 친구가 교사에게 생활지도를 받는 모습을 숏폼 관람하듯이 관람하고 대상화하여 비하하고 무시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으며, 과거에 비해 또래 간에 신체에 위해를 가하고, 욕을 쉽게 하는 자극적이고 원초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모습도 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생활지도를 하려 들면 모두, 장난이고 다른 학생들도 그런다고 뭉개기 일쑤다. 경계의 모호성은 확실한 경계 지음과 부딪히고 이것은 강요와 억압으로 받아들여 질 수 밖에 없다. 낮은 자존감, 무시, 불안함, 강요로 받아들여지는 외부의 자극은 쉽게 과한 불만인 분노로 터져 나올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교육 주체들은 청소년들의 분노를 어떻게 정치적 영역으로 끌고 나와 생산적으로 해결해야 할까. 누스바움에 따르면 학교는 공적인 영역이므로 규범적 불합리성과 관련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행 분노가 올바르게 표출되고 생산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교사, 학부모, 학생이 주체로서의 권리를 인정받고 민주적인 시스템과 문화가 구성되고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분노를 다루기 위한 교육의 방향과 정책, 청소년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무엇인지 이야기 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학교 자치와 민주주의는 관련 정책과 교육 당국의 노력 부족으로 여전히 피상적으로 학교 내에서 자리 잡고 있다. 학교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학교에서조차 빡빡한 수업 시수와 업무, 생활지도라는 물리적 여건이 만만치 않아 수준 높은 공론의 장이 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학교와 교사에 대한 분노는 여전히 지위 격하와 인과응보의 과거지향적 분노만 되풀이되고 있다.
또한 소득보다는 웰빙을, 그리고 사회 연대 가치를 지향하는 뉴질랜드의 웰빙 예산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환경, 건강, 노동, 소수 민족, 아동'의 핵심 영역을 기준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국민의 정신 건강, 아동들의 행복한 삶 보장 등의 삶의 만족도를 향상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만들어나가는 노력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우리의 상황에 맞게 만들어지고 추진되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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