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구의 포용도시?
5·18사적지는 억울한 희생자들이 흔적을 방문하는 어두운 여행(dark tour)의 목적지가 아니다. 이곳은 평범하지만 동시에 위대한 사람들의 전설을 만나는 민주주의 전쟁터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음악을 좋아하는 멋쟁이였지만, 독재자의 손에 자신의 피를 묻히면서 역사적인 책임을 물었고,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수많은 윤상원들의 전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이들의 승리를 축하해야 한다.
"5·18을 축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90년대부터 들어왔으나, 아직까지 여론으로 자리잡지 못 하고 있다. 이는 신군부에 의해 시민들의 희생된 사실이 아직도 대중적인 상처로 남아 있고, 또 희생자 유가족들은 축제라는 말을 받아 들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희생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축제가 된 사례는 많이 있다. 독립전쟁 동안 전사자와 병사자를 포함해서 2만4천명이 희생됐으나, 7월4일 미국독립기념일은 미국에서 가장 큰 전국 축제일이다. 전국에서 불꽃놀이와 무료 음악회 등 많은 행사가 펼쳐진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이런 행사를 구경하고 또 식사를 즐기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직후에는 5만명이 희생됐고, 혁명을 뒤이은 나폴레옹 전쟁의 희생자는 100만에 이른다.
그럼에도 프랑스혁명을 기념하는 7월14일 '바스티유 날'은 프랑스에서 가장 큰 전국 축제이다. 상젤리제 거리에서는 군악대를 앞세운 프랑스군의 행진을 구경할 수 있고, 센강가에서도 에펠탑 주변에서도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루브르 박물관은 무료로 개방되는 등 프랑스 전국이 축제 분위기를 즐긴다.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첫 단추가 된 용감한 시민들의 투쟁을 그 후손들이 축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5·18민주화운동은 그 희생도 컸지만, 그 투쟁의 영향력은 다른 유사한 운동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살아남은자들의 투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1980년 항쟁 직후인 5월30일에는 서강대생 김의기가 "동포여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격문을 남기고 투신자살했다. 80년대 초반 서울지역의 대학들 80%가 이차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5·18을 꼽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폭발적이었다.
광주항쟁은 80년대의 풀뿌리 민주주의 투쟁을 촉발시켰고, 결국 6월 항쟁을 통해 민주 헌법을 쟁취했다.
광주항쟁 이후로 친미적이었던 운동권 조차도 미국의 운동가를 거부하고 우리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하는 등 우리 문화에 대한 자각을 깨워 훗날 독자적인 한류의 시작이 됐다.
5·18민주화운동의 역동성은 과거로 사라지지 않았고, 보수와 진보가 대결하는 와중에도 민주주의를 지켜주는 에너지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5·18 사적지는 이른바 "어두운 여행"의 목적지가 아니고, 군부독재와 싸워서 이긴 '인권 탐방'의 목적지가 되어야 한다.
이 기간에 5·18에 대한 첫 종합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아픔을 넘어"를 쓴 이재의를 만나고, 광주항쟁에 대해서 매우 정확한 기록을 남긴 고 김영택 동아일보 기자 등 국내외 기자들도 만나야 한다.
광주항쟁의 진상을 영상으로 알려준 고 힌츠페터, 힌츠페터를 광주로 보낸 고 슈나이스 목사, 슈나이스 목사에게 계엄군의 동향을 알려준 슈나이스 목사의 부인을 만나야 한다. 대사관의 철수 지시에도 불구하고 광주에 남아서 광주사람들의 대변인 노릇을 계속한 미국의 평화봉사단원들과 헌틀리 목사 부부와 같은 외국인도 만나야 한다.
이 기간에는 광주항쟁 이후 민주화를 성공하게 한 전국적인 학생, 노동자 조직, 정치 조직을 포함한 국내연대는 물론 국제사면위원회와 같은 국제연대를 기억해야 한다.
과거에 진 연대의 빚을 갚기 위해서, 군부독재와 대항해서 싸우는 미얀마 활동가와 언론인들을 초청해서 격려하고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5·18 축하 행사의 하나로 군악대를 앞세우고, 과잉진압을 거부한 31사단 고 정웅 사단장과 발포를 거부한 고 안병하 경찰국장의 사진을 앞세운 군과 경찰의 행진이 축제의 분위기를 더욱 북돋을 수 있을 것이다.
유가족을 초청해서 시정부 또는 중앙정부의 감사장으로 민주화에 기여한 공로를 표창하는 행사가 축제의 꽃이 될 수 있다. 희생자들의 희생을 같이 슬퍼하는 것도 위로이지만, 값진 희생 덕분에 민주주의가 승리하고 있음를 축하하는 것은 시민들과 유가족에게는 더 큰 위로가 될 것이다.
5·18은 승리한 민주화운동이다. 그래서 민주주의 축제로 발전해야 한다.?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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