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구의 포용도시
'총,균,쇠'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UCLA대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사회 발달 수준의 차이가 나타난 것은 유전자 때문이라기 보다는 지리 환경의 차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는 나일강 등 강 주변의 기름진 벌판이었다. 여기에서 농업생산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고대 문명이 꽃 필 수 있었다.
광주를 뺀 대부분의 타 지역 교류센터는 지방자치단체 산하 재단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운영비 전체를 지원 받고 설립되었다. 광주국제교류센터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시의 재정 지원이 매우 빈약했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교류센터와는 매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야 했다.
1999년 광주시가 국제교류센터 설립을 제안했고, 필자는 전남대 영문학과 교수라는 이유로 강권에 못 이겨 무급 소장 자리를 받아들였다. 모든 보직이 2년마다 바뀐다는 국립대학의 관행에 익숙했기 때문에 필자는 교류센터 소장 일도 2년만 맡고 있으면 다른 사람이 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불운의 시작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후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센터 운영에 들어가는 시간은 물론 센터의 설립 목적을 수행할 사업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다. 첫 해 6월에 민간경상보조비 3천만원을 받았는데, 이 예산에는 급여를 줄 수 없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더욱이 통장과 금전출납부와 실제 쓴 돈을 삼위일체로 맞추라는 소장의 방침을 따른 영문과 출신 간사는 6개월 동안에 1천만원을 쓰고 2천만원을 반납했다. 2000년엔 보조비가 1천만으로 줄어들었다. 첫 해에는 인건비가 부족하고 사업비가 남아서 고생이었는데, 둘째 해에는 인건비와 사업비가 동시에 부족해서 더욱 큰 고생이었다. 광주시가 주도하는 일이어서 관심을 보이고 이사회에 참여했던 지역 유지들의 관심도 멀어져 갔다.
궁여지책으로 한국인과 외국인을 회비 회원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사업을 돈이 들지 않는 자원활동 중심으로 추진했다. 2001년에 국내 처음으로 시작한 영어월간지 광주뉴스의 기사 작성과 교정을 자원활동 기자와 편집자가 담당했다. 토요강좌를 2003년에 시작했는데 코로나로 문을 닫을 때까지 강사료를 지출하지 않았다.
광주전남 투어를 2005년에 시작했는데, 가이드로 지금까지 도와주는 워런 파슨씨(현 계명대 교수)에게도 수고비를 지출하지 않았다. 2006년에 광주가이드북을 만들 때에는 지금 조선대 복지행정학과에 있는 마리아 리삭 교수가 전남대 영문과 인턴 학생들과 함께 책을 편집했다. 2018년에 시작한 교류센터의 시민합창단의 지휘자인 진성인씨 역시 수당을 받지 않는다. 오는 6월에 광주를 떠나는 리사 카사오스 씨는 오랫동안 미술교실을 운영하면서, 교류센터를 한국인과 이주민이 같이 참여하는 제3의 공간으로 확장해 주었다.
1995년에 광주시가 시작한 '광주외국인의밤'에서는 외국인을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전통 공연을 보여주었다. 현재 '광주국제교류주간'에서는 한국인과 이주민들이 함께 음식점과 문화체험관을 운영하고 있다.
광주국제교류센터의 현재 모습은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환경 결정론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예산이 설립 목적을 달성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환경 요인 때문에 교류센터는 지역민과 이주민을 회원과 자원활동가로 초청해서 함께 모두가 서비스의 시혜자와 수혜자가 되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 교류센터에서는 지역민과 이주민이 함께 주인이 되는 포용사회 모델이 형성되었고, 이 정신을 간사들과 이사들이 공유하고 있다.
현재도 후원회원 960명과 후원회비 1.4억원은 광주국제교류센터가 포용도시 광주를 위해 일하는 중요한 기반으로 작동하고 있고 그 결과로 지난 5월20일에는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됐다.
신경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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