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이 컬러플하다. 알록달록 무늬가 있는 의상을 몇 차례 갈아입고 패션쇼를 하는 것 같다. 형형색색 수국의 바다에 흠뻑 빠졌다. 파스텔 톤으로 곱게 물든 몽글몽글한 수국은 하늘높이 쭉쭉 뻗은 편백나무 아래에서 파랑, 보라, 빨강, 흰색으로 자태를 드러냈다. 화려한 치장이라기 보다 수수하게 활짝 웃는 아가씨의 민낯처럼 보인다.

산속에서 펼쳐지는 수국꽃의 향연은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수국의 든든한 그늘이 되고 있는 아름드리 편백과 소나무, 참나무 역시 특별하다.
각양각색 수국은 풍선 같다. 빨강, 파랑, 노랑, 보라, 흰색의 수국 꽃이 빵빵하게 부풀려 있어서다. 수국은 여름의 주인공이다. 무더운 폭염이 내리쬐는 기간이 열흘이 넘었는데도 줄기와 꽃이 생생하고 싱그러워 청정함이 느껴진다. 해송과 편팩나무는 날이 뜨거우니 더 진한 피톤치드를 내뿜는 것 같다. 코끝에 스치는 상쾌한 향기는 한여름의 선물처럼 다가온다.
불현듯 수국 생각에 광주서 찾아온 이에게 향기 가득한 최고의 환영 인사다. 무더위에도 루비아나벨, 니코블루, 앤들레스썸머 등 수국의 모습에서 감탄사가 쑹쑹 터져 나온다.
수국을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쁜 관광객들의 얼굴에서는 꽃과 나무에 완전히 매료된 표정이다. 젊은 여성과 남녀 청춘들이 유달리 많이 눈에 띈다. 모자에서 의상까지, 똑같이 맞춰 입은 여성들을 비롯한 남녀 커플들은 특별한 인생 사진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으로 발걸음을 한 것 같다. 아름다운 수국과 울창한 편백숲이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영향이다. 보성 겸백면 수남리 주월산 자락 성림원의 7월 중순의 풍경이다. 정은조 전 한국산림경영인협회장은 "정원을 하지 않았으면 이곳까지 젊은이들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면서 "정원이 예뻐 사진을 찍으면 잘 나와 인스타그램에서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고 웃었다.
성림원은 윤제림 내 숲 정원이다. 윤제림은 대를 이어 명품 숲으로 만들어진 대한민국 임업 발전의 증표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동란을 거치면서 황폐화해진 대한민국 산들이 산림녹화의 깃발 아래, 집단 조림으로 시커먼 나무숲으로 변한 곳 중의 하나이다. 세월이 흘러 선친이 일궈낸 산을 아들에 의해 융복합 산림복합경영문화 중심지로 역사를 쓰고 있는 생생한 현장이다.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 '윤제림'
윤제림의 1세대 주역은 고 정상환씨고, 현재 윤제림의 주인은 정은조 회장이다. 1960~1970년대 순천과 벌교를 중심으로 꽤 큰 사업을 하던 고 윤제(允濟) 정상환씨는 수입의 대부분 편백, 삼나무, 밤나무 등을 심는 조림사업에 주력했다. 생전에 일군 조림 규모가 265㏊였다. 1㏊가 3천평이니 감히 놀랄만한 면적이다, 고(故) 정상환씨는 1978년 조림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는 대단지 밤나무를 심어 밤나무농장을 운영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밤나무골로 불렸다. 밤나무가 고령화되자 참나무로 수종 갱신했고, 지금은 우리나라 참나무 채종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치 참나무가 건강함을 뜻한다. 윤제림은 정상환씨 별세 이후 자녀들에게 분할 상속됐다. 자녀 중 맏이었던 정은조 회장이 형제들의 지분을 다시 매입 한 평의 산도 남의 손에 가지 않았다. 정 회장은 이후 27㏊ 산을 더 사들여 지금은 337㏊에 이른다. 정회장은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계속 고민했다. 선친이 물려준 산을 잘 지켜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돈 되는 산림으로 전환에 관심을 두고 많은 노력을 했다.

◆편백 숲에 피어난 명품 '성림원'
윤제림 영농조합법인에서는 임산물 재배와 치유, 휴양, 교육 등 다양한 산림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성림원도 산림경영의 한 파트이다. 그렇다고 대충할 일은 아니었다. 보성 겸백까지 와서 보고 갈 만큼 명품정원이 목표였다.
정회장의 부인(최성림) 이름을 딴 성림원의 규모는 5만평이다. 윤제림 전체 면적의 20분의 1임에도 적지 않은 면적이다. 우람한 편백나무 아래 성림(聖林)원은 '성스러운 숲정원'의 이름에 걸맞게 크게 8개 사이트로 구성됐다. 화려한 수국지대가 인공적이라면, 억새원에서는 자연미가 넘친다. 공간마다 포인트를 주었다. 구절초, 핑크물리, 억새 등 계절마다 색다름을 연출한다. 정원을 시작하는데 있어 최우선적인 고려 사항은 윤제림의 부존 자원인 편백과 오래된 나무 활용이었다. 탐스럽게 꽃핀 수국은 물론 선친으로부터 정성들여 가꾼 나무들이 어우러져 윤제림의 과거와 현재가 방문객들에게 울림을 주고자 하는 바람이 컸다. 정 회장 부부의 희망대로 편백나무 숲속 정원을 찾는 이들은 지금까지 심었던 5만그루의 군락을 이룬 아름다운 수국과 울창하고 우람한 나무들이 연출하는 멋에 반해 탄성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성림원에서 보여준 나무 밑에 수국을 심는 것은 과감하고 실험적인 방식이었다. 평소에도 "화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정 회장의 연구와 노력의 결과였다. 정회장은 국내외 이름난 정원을 찾아 벤치마킹을 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정원을 어떻게 더 업그레이드 시킬 것인가에 대한 발걸음은 그치지 않는다. 수국이며 각종 식물들의 발육 상태를 밤낮으로 관찰해 시기 적절한 처방은 물론 생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식물들을 교체하고, 해외 유명한 정원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관람객 위주에서 불편사항을 개선하는 손길은 빼놓지 않는 일상이다.


◆차별화된 민간정원 롤모델 우뚝
이렇게 그의 열정이 녹아있는 정원의 풍경은 SNS나 블로그에 소개돼 입소문이 났다. 성림원이 선을 보인 지는 5년에 불과하나 2020년 전라남도 민간정원 제12호, 아름다운 정원 최우수상 등 남도 정원의 중요한 포인트로 자리매김했다. 성림원의 매력은 우거지고 아름진 편백 참나무 소나무 등과 어우러진 숲속의 정원이다. 어른만이 아닌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자연 친화 공간과 색감 예쁜 조형물이 동화 속 놀이공원을 연상시킨다. 전망 좋은 곳에 설치된 벤치는 확실한 뷰포인트로서 역할을 한다. 꽃과 나무도 예쁘고 특색을 강조한 공간 구성은 전국에서 마니아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사계절 찾아오는 사진작가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림원의 아름다움이 시공간을 넘어 업데이트 되고 있다. 성림원은 수국 꽃이 한창인 요즘 주말과 휴일에는 매일 대형버스 10여대 등개인과 단체 방문객이 5천~6천여명에 달할 정도이다.
특히 안갯속에서 베일을 벗는 편백숲과 수국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서울, 부산 등에서 '오픈런'을 목표로 찾아오는 이들이 있을 만큼 전국구 수국 명소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했다.
성림원은 퀼리티가 높고 매니아 중심으로 운영하는 장기전략을 세우고 있다. 편백나무 숲 정원의 컨셉이 초창기에 강하게 작용할 만큼 앞으로도 성림원만의 매력 포인트를 키워 민간정원의 경쟁력을 만들어겠다는 포부이다.
정은조 회장은 "최근 몇 년간 전국적으로 정원 열풍을 실감한다. 정원이 지자체마다 상품이 되면서 공공부분의 투자가 엄청 많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민간 영역의 경쟁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오직 차별화된 콘텐츠만이 살아남을 수 밖에 없어 더 연구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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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릿재 넘으면 만나는 솔과 매화의 노래
그는 화순 너릿재만 넘으면 행복한 사람이다고 한다. 너릿재는 화순과 광주 학동의 경계에 있는 고갯길이다. 광주에서 화순, 화순에서 광주방면으로 오고가는 길목이다. 그에게는 전자가 해당된다. 광주 남구 봉선동에 있는 집보다는 화순 이양의 정원으로 갈 때 신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화순 이양의 정원에 새벽에도 왔다 가곤 한단다. 그의 이름은 임병락. 올해 62세인 그는 야생화를 좋아하고 소나무와 매화나무에 빠져 정원을 만들었다. 그가 아끼는 보물단지는 화순 이양에 자리 잡은 솔매음정원이다. 소나무와 매화를 좋아해 솔매음정원으로 명명했다. 언뜻 솔내음정원으로 들린다. 솔매음정원을 네비게이션에 입력하면 강원도 인제에 있는 솔내음정원으로 안내된다.승용차로 굽이굽이 산고개를 넘어 보성 복내 방면의 도로를 따라 갔다. 지금은 교통이 발달해 어려움은 없었지만 꽤 오지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찾아간 간 날은 오후 3시를 조금 넘었음에도 해가 많이 짧아진 겨울이라 찬 공기가 온몸에 파고들어 왔다.화순 솔매음정원은 이양면 옥리에서 보성 복내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해있다. 정문에는 지난 2022년 지정된 전남도 민간정원 19호 표착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집' 글귀의 표지판이 문 앞에 붙어있다. 정원에 들어서니 입구 양옆으로 땅바닥을 향해 드리워진 소나무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소나무의 밑동은 꽈배기 형태로 기괴한 자태가 장관이다.초입에서 만난 현해(懸解) 소나무에 놀란 것도 잠시 팽나무, 매화나무들이 연달아 시선을 압도한다. 나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예사롭지 않다.정문에서 안채까지 100m 정도인데, 기품 있는 수형의 향나무와 또 다른 기기묘묘한 소나무들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소나무와 매화나무가 어울러진 정원의 겨울 풍경은 청아함이 듬뿍 묻어난다. 매화꽃과 향기가 만발할 내년 초 봄에 방문하고 싶은 간절함이 커졌다. 정원에서 화사하고 은은한 빛깔의 꽃과 향기를 뿜는 것을 상상만 해도 마음속에서는 벌써부터 향기가 진동하는 것 같다.정원은 안채 뒤 산으로 이어진다.단절 없이 자연스러운 구조이다. 비밀의 정원이다. 안채 정원이 주인장의 안목과 열정으로 소나무 수집품을 모아 놓은 곳이라면, 산 쪽의 간은 정원지기의 또 다른 놀이터이다. 이곳은 세월을 품고 소나무며 편백, 단풍 등 다양한 수종들이 주인공들이다.산길 주변은 얼마나 손길을 쏟았는지 단정하고 정갈함이 묻어난다. 솔매음정원의 주인공은 소나무와 매화나무이다. 궁극적으로 나무와 새들이 어우러져 자연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수종들이다. 궁극적으로 소나무와 매화를 중심으로 자연의 음표를 만들어 새들이 깃들어 지저귀는 무공해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숲속 공연장을 연출하는 것이다.솔매음정원에는 조선솔, 백송, 황금송 등 소나무 76종이 있고 한중일 3국의 유명한 매화 후계목이 자라고 있다. 특별하게 소록도 처진 매화의 후계목은 3m 정도 자랐다. 소록도 처진 매화 후계목은 지난 2003년 매미 태풍 때 부러져 고사하기 전 씨앗에서 발아한 묘목을 가져다 키운 나무이다.솔매음정원의 나무들은 스토리도 다양하다.임 대표가 얼마나 나무에 진심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문 입구에 심어진 드러누운 형태의 소나무 2그루는 목포-보성 경전선 철도 공사 구간인 보성읍에 있었던 나무였다.원래 4그루였는데 다른 조경가와 나눠 2그루씩 적지 않은 돈을 주고 구입, 옮겨온 이력을 갖고 있다. 보성읍에서 이 나무들을 옮겨오는 데에는, 옆으로 길게 퍼진 줄기가 1차선 도로 폭보다 넓어 줄기 일부를 잘라 냈다. 어쩔수 없이 제거했지만 그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 아깝다고 했다.임 대표가 결혼 기념식수로 심은 향나무는 당시 광주 지역구 국회의원과 경합하면서까지 손에 넣은 나무여서 볼 때마다 감회가 남다르다.그때 수백만에 달한 나뭇값은 엄청 큰돈의 가치가 있었다. 임 대표는 당시 아버지께서 벼를 매상해 나뭇값을 보태주셨는데, 나중에 용달차에 싣고 오는데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구입 당시에도 수형이 아름다웠던 향나무는 40년이 흐른 뒤에도 부부의 연륜만큼이나 기품 있는 자태로 정원을 빛내고 있다.임 대표에게 경중을 가릴 나무가 있겠느냐마는 탤런트 고현정씨 문중의 산에서 옮겨온 소나무도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옆으로 멋진 수형을 보인 소나무 2그루는 고씨 문중의 반대를 물리치고 어렵게 구매가 성사돼 겨울에 일주일 작업 기간을 거쳐 옮겨 심었다.그러나 아쉽게도 한 그루는 결국 임 대표와 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렵게 구한 이 나무는 임 대표의 손에서 죽은 나무 중 하나에 속한다.화순 이양 출신인 임 대표는 어려서부터 나무가 좋았다. 선친이 마을의 새마을지도자여서 동네에 나무를 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아 온지라 나무를 심고 가꾸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신혼 초 아내가 근무하는 고흥의 한 초등학교에서 나무를 키우는 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다.당시 이 학교에서 재배하던 구상나무 52그루를 구입해와 집 뒤의 산에 심었다. 이 나무들은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그러다 법학을 전공하고 경찰학원에서 형사법 강의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학원계에서 은퇴하고 본격적으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에 뛰어들었다.인기 절정의 강사료와 날개 돋친 듯 팔린 교재 인세 등 적잖은 목돈은 경제 활동을 중단했음에도 그가 나무를 구입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자금줄이 됐다. 임 대표가 꿈꾸는 솔매음정원은 특색 있고 지속가능한 우리나라 식물학습장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우선 10년 후 솔매음정원에서 목련축제 개최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목련 집산지인 충남 태안의 천리포수목원을 가지 않고도 목련의 향연을 즐기도록 함이다.현재 이곳에는 162종의 목련이 자라고 있다. 또한 울릉도 식물원을 만드는 것이다. 솔매음정원에는 울릉도 서식 식물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는데 안뜰 뒤편에 울릉도원을 집약시켜 우리나라 식물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어 한다.솔매음정원에는 구상나무, 꼬리말마풀, 특산식물 50종과 위기 멸종 식물이 자라고 있다.솔매음정원에서는 우리나라 꽃을 비롯한 식물 감상을 넘어 학습정원으로 지속 가능한 목표를 구체화하고 있다.전통 한옥에도 관심이 많은 임 대표는 정원 입구에 탐진 최씨 104년 된 현승재를 통째로 광주 동구 선교동에서 옮겨와 복원 작업을 하고 있다.내년 봄이면 이 한옥은 멋진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변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솔매음정원은 정원계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잔잔한 구성으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전주 시민정원사들은 매년 3월초 솔매음정원 투어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을 한단다. 이 때는 변산바람꽃과 복수초가 피고 노랑색 꽃과 향기를 뿜는 남매가 이들의 활동을 깨우는 시기이다."정원을 만들어놓으니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고 인연을 쌓고 소통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잘한 것이 정원을 만든 것입니다".정원주 입장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새벽에도 찾아올 만큼 그의 마음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정원을 향한 열정이 향기와 꽃을 피우며 사람들을 하나, 둘 불러 모으고 있다.혹시 내년 봄 솔매음정원 매화꽃 향기가 전해져 발길을 재촉한다면, 주저치 말고 떠나 보시길. 인상좋은 정원지기의 꽃세상을 들어보는 것도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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