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광장(廣場)에서 커뮤니티 선거로' ··· 대선에서 '지방'이 사라졌다

@유지호 입력 2022.01.19. 16:18


여론은 사람이 모이는 광장에서 주로 만들어졌다. 1980∼90년대 선거 운동은 공간·장소에 맞춰 디자인됐다. 세 과시를 위한 군중은 필수 조건. 대규모 동원 능력과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세는 정치인의 핵심 덕목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권 주자로 발돋움 한 배경이다. TV·신문 등 언론도 가장 주목했다. "광장에 얼마 모였는지" "유세장이 다 찼는지" 여부가 헤드라인으로 뽑혀져 나왔다.

압도적 규모는 기선을 제압했다. 정치인의 인기와 영향력은 '여의도광장 100만'·'조선대 운동장 50만' 등 숫자로 기억됐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출마한 1987년 13대 대선 때 극에 달했다. 돈과 조직을 앞세운 세몰이는 지역 감정 조장과 금권·관권선거 비난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숫자 경쟁은 이들의 지지기반인 지방으로 확전(擴戰)했다. 이른바 '선거 밑천'이었던 지방의 목소리는 쎘다.

여론은 유세장서 모였다 흩어졌다

고등학생 때 처음 접한 대선의 기억. 87년 12월 초쯤 장흥읍내. 노란색으로 도배한 유세차량이 골목길을 훑으며 분주했다. "평민은 평민당, 대중은 김대중" "광주학살 진상 규명" 등의 구호가 확성기에서 날카롭게 뿜어져 나왔다. DJ가 읍내에 오던 날. 동교다리 아래 탐진강변엔 오전 9시부터 인파가 몰렸다. 정오쯤 DJ가 모습을 드러낼 즈음, 다리 위·아래 모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빛바랜 한복에 곰방대를 문 할아버지들부터 낯익은 동네 아저씨·아주머니들까지. 당시 군 인구 8만7천300여 명 보다 많은 10만여 명이 왔다고 했다. 검정색 두루마기 한복을 입은 DJ는 단호했다. 강조할 대목에선 오른손을 들어 칼로 도마를 내려치는 듯한 '칼도마 손짓'과 카랑카랑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청중은 열광했다. "먼 인물이 저라고 좋다냐" "저 말씸 좀 들어보씨요. 청산유수네" "김대중이 인물이여" "말 조심해 선생님한테" "항∼. 그만한 인물이 없제" "서울하고 부산, 전라도 출신들이 다 뭉칠거싱마. 이번엔 될꺼시여".

20여 분 남짓 유세가 이어지는 동안 아침 댓바람부터 소줏잔을 기울이다 불콰해진 아저씨, 넥타이 맨 직장인들과 행상 차림의 장삼이사들이 한 두마디 보탰다. 이들의 말과 바람은 여론이 됐다. 신기루처럼 유세장에 모였다 다시 흩어졌다. 온라인과 뉴미디어 발달은 정치를 개인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TV토론과 여론조사가 대표적. 2000년대 정치 커뮤니티의 시초는 '노사모'다. 온라인 팬덤으로 출발해 노무현이 대권을 거머쥐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방의, 지방에 의한, 지방을 위한'

커뮤니티는 진화했다. 정치성향·연령 등에 따라 활발하게 분화했다. 현실에서의 영향력도 커졌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요동쳤다. 대선 주자들이 '넷심'에 민감한 이유다. 이번 '3·9 대선'의 최전선도 커뮤니티다. 키보드 전쟁은 실시간으로 벌어진다. 댓글에 대댓글 등 민감한 이슈엔 욕설과 가시돋친 설전이 오간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 속도·여론전에 능한 MZ세대는 블루칩이다.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문신 합법화(이재명), 여성가족부 폐지·병사 봉급 월 200만 원(윤석렬) 등 구애가 뜨거운 이유다. 부작용도 많다. 세대·진영간 정보의 양극화와 의견의 극단화. 지지 성향은 명확하다. 보고 싶고 믿고 싶은 정보를 주로 소비한다. 서로 다른 팩트를 믿기에 소통이 단절되기 쉽다. 익명성을 방패로 각종 썰·정보들이 난무한다. 가짜뉴스는 교묘하게 섞인다.

지방 정책·공약은 실종됐다. 대선은 낙후된 지역 발전과 지역민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다. 소통을 통해 지방의 고민을 해결하거나 수 천억 예산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차기 정부의 지원을 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문화수도', 문재인의 '한전공대'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시·공간 제약이 없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표의 확장성이 큰 중도로의 집중 전략에 지방 이슈는 묻히고 있다.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수도권 블랙홀에 중앙-지방 격차와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된다. '역사의 종언'을 쓴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는 부와 정보의 극단화를 정치 양극화의 원인으로 꼽았다. 대선 50여일 앞, 통합·포용의 리더십으로 하나의 미국을 만들었던 링컨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빗댄다. "지방의, 지방에 의한, 지방을 위한 정부". '노잼도시'를 떠나 서울·부산 등 대도시로 향하는 광주·전남 젊은이들의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하는가. 유지호 디지털편집부장 겸 뉴스룸센터장


슬퍼요
1
후속기사 원해요
0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