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허 상류엔 용문이라는 물살 거센 협곡이 있다. 이 곳에 모인 잉어들이 급류를 거슬러 뛰어오르는데 성공하면 용이 된다고 한다. 이를 스토리텔링 한 게 '등용문' 설화다. '들어가기 힘든 문'이라는 뜻으로, 신분상승의 표상이 됐다.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오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 의례를 의미했다. 입시학원 이름으로 유명했던 이유다.
광주에도 이 같은 '어변성룡(魚變成龍)' 전설이 깃든 곳이 있다. 조선시대 천등산(현 광산구 운수동 일대) 강가에 만든 연못에서다. 이 곳에 살던 잉어가 천둥번개치며 장대비가 내리던 밤, 여의주를 문 채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이 때부터 물고기 등을 닮았던 산은 어등산이 됐다. 지금은 골프장으로 변해버린 인근 용담골에도 비슷한 설화가 있다.
산의 형상 물고기를 닮아
예부터 상서로운 산이었다. 호국의 상징이었다. 석봉(해발 338m)은 비교적 낮지만 정상을 쉽게 내주지 않는다. 호남의병의 맥을 잇는 원동력이 됐다. 구한말 항일 의병 활동의 본거지였다. 임진왜란·정묘호란 당시 의병들과 얽힌 이야기도 많다. 국란이 있을 때마다 분연히 일어났던 민초들의 삶과 죽음이 오롯이 담겼다.
개발은 더뎠다. 국방과 깊은 인연 탓이다. 1951년부터 군부대 포 사격 탄착지로 쓰였다. 무반동총 같은 보병화력도 집중됐다. 군사교육시설인 상무대가 94년 말 장성으로 이전한 뒤 새로운 발전동력을 찾았으나 난항을 거듭했다. 시민 종합체육·휴양타운(96년), 구한말 의병현창 사업지(98년), 태권도공원 유치(99년), 역사관광거점단지(2000년) 등 번번히 실패했다. 그린벨트와 환경단체 반대에 발목이 잡혔다.
민선 3기들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서남권을 대표하는 테마파크로 조성 논의가 시작된 건 2002년 11월부터다. 그린벨트 해제를 전제로 84만평(277만6천860㎡) 규모의 테마파크형 관광단지 조성이 추진된다. ▶특급호텔·콘도 등 유원지 시설 ▶27홀(대중제 9홀·회원제 18홀) 규모의 골프장 등 체육시설 ▶경관녹지 등 2004년 '빛과 예술의 테마파크' 사업으로 구체화된다.
사업은 장기 표류했다. 핵심이었던 민간자본 유치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사업비는 모두 5천80억원에 달했지만, 지방자치단체 지정 관광단지라서 국비지원을 못 받는 상황이었다. 수익성이 관건이었다. 2005년 민관합의를 통해 정해진 상가시설 규모는 2만4천170㎡(7천311평). 이 규모를 둘러싸고 늘리려는 사업자측과 고수하려는 지역 상인들 간 힘 겨루기가 되풀이 됐다.
경제 상황도 녹록치 않았다. 사업 초기 공모에 참여했던 민간 사업자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과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잇따라 들어갔다. 설상가상, 불발탄도 문제를 꼬이게 했다. 2007년 4월부터 시작해 1∼2년쯤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됐던 제거 작업에 4년이 걸렸다. 광주·전남 건설업계에도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그 간 모두 5곳이 사업을 포기했다. 낮은 수익성과 재정난 탓이다. '어등산의 저주'란 말이 나온 이유다.
애물단지에서 '등용' 기회 잡나
애물단지로 여겨졌던 어등산 관광단지 사업이 전환점을 맞았다. 지난해 말, 서진건설과의 법정공방이 마무리된 게 계기가 됐다. 얽힌 실타래가 풀린 것이다. 곧바로 신세계가 리조트와 쇼핑몰을 포함한 53만6천900㎡(16만평) 규모의 대형 복합쇼핑 단지를 만들겠다는 세부 계획안을 내놨다. 광주를 호남 관광의 관문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는 거다.
연간 관광객은 3천만 명으로 추산됐다. 2박 3일 이상 체류형 관광단지를 통해서다. 콘도와 레지던스, 시니어 시설이 있는 리조트 복합단지, 식당가를 포함한 쇼핑시설 스타필드, 골프연습장과 실내 스포츠장 등 체험형 활동 시설 등이 들어선다. 상전벽해다. 어등산은 공공 프로젝트로 추진됐다. 45년간 사격장으로 황폐해진 곳을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으로 돌려주자는 취지에서다. 입지는 좋다. 도심 외곽에 있어 교통 혼잡이나 주차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유통 빅3' 대기업 중 한 곳인 롯데도 눈 여겨 보는 이유다. 아직 사업계획서는 제출하지 않았다.
어등산이 용문 협곡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가려 한다. 앞서 말한 '등용'의 과정이다. 복합쇼핑몰이 도시를 바꿀 순 없다. 하지만 새로운 도시 브랜드 창출로 인한 문화관광 산업 발전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 복합쇼핑몰은 핵심 콘텐츠다. 다만 전제가 있다. 아시아문화전당으로 대표되는 문화중심도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도시 광주'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다시 짜야 한다. 지하철·트램 등 교통 인프라와 문화관광 연계 프로그램, 관련 산업 육성, 지역 소상공인들과 상생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려면 사나웠던 지난 17년 간의 고통스런 여정을 꼼꼼하게 들여다 봐야 한다. 실패 사례에 대한 처절한 반성과 개선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야 '노잼도시' 광주가 한 단계 도약하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 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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