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스크를 벗었다. 2020년 10월 이후 27개월 만이다. 광주에서는 이보다 두 달 빨리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를 썼다.
차를 운전할 때도, 사무실에 혼자 있을 때도 그냥 쓰고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 마스크다. 쉬는 날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사올 때나 쓰레기 버리러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갈 때, 세탁소에 옷 찾으러 갈 때면 세수를 하지 않아도 마스크로 가릴 수 있어 편했다. 얼굴 표정도 숨길 수 있어 좋았다. 오히려 안 쓰면 어색했던 때도 많았다. 감염 우려 때문 만이 아니라 옷처럼 마스크가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했다.
고맙지만 불편도 했다. 마치 속옷 같아 벗자니 허전하고, 착용하자니 답답함을 감수해야 했다. 감염병의 시대, 마스크는 가장 기본적인 방역 수단이 됐지만 그만큼 불편함을 참아야 하는 그야말로 '애증의 경계선'을 오갔다.
지켜줘 고맙지만 불편도 했다
3년째 접어든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일일이 나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뚜렷한 것은 전 국민의 마스크 착용이다.
2020년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코로나 공포'가 현실화하면서 마스크가 불티나게 팔렸다. 한순간에 마스크 수요가 폭증하다 보니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광주·전남 곳곳의 약국들은 마스크를 사려는 시민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새벽시간대 도심 외진 곳에 있는 마스크 공장까지 찾아가 마스크를 구하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광주 시내 모든 약국이 '마스크 품절'인데 상무지구 한 대형약국에서만 넉넉하게 재고를 쌓아두고 1인 10장씩(장당 7천원) 판매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들 데리고 가 한꺼번에 35만원어치를 샀던 때가 기억난다. 당시 일행이 네 명이던 내게 10장을 덤으로 판매하겠다던 인심 좋은 그 약사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귀하디 귀한 마스크는 정부의 '공적 마스크 제도' 도입 이후 가격이 안정되고 사재기 현상이 없어지면서 대란 국면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한장 두장씩 어렵고 귀하게 사서 모았던 마스크는 일회용이 아닌 하나로 사나흘을 버텼고, 비축에만 몰두한 나머지 지금 우리집에는 2~3년 묵은 KF94 마스크가 300장 넘게 쇼핑백에 담겨 한구석에 놓여 있다.
아까워서 써보려고도 했지만 언젠가부터 모양이 새부리처럼 편하게 바뀌고 V라인도 살리면서 색상 또한 다양해진 탓에, 유행 지난 마스크는 고이 모셔둔 상태다. 마스크가 '필수템'이 돼 패션으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아끼면 똥 된다'는 얘기가 의미 있게 다가오는 케이스다.
지난 3년여동안 마스크는 갈등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마스크 착용 문제로 말싸움, 폭행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대중교통에서 마스크 미착용 때문에 시비가 붙는 사례가 많았다. 거리에서 흡연자들이 턱스크를 한 채 가까이 붙어 이야기를 나누며 바닥에 침을 뱉는 행위가 한 때 사회 문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취객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착용을 요구한 아르바이트생과 시비가 붙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부작용도 속출했다. 코로나 시대 학생들의 언어와 발달을 지연시키고, 숨쉬기가 불편하다는 호소가 급증했다. 겨울철 안경 김 서림과 습기로 안경 착용자들의 불편을 가중시켰다. 얼굴 트러블을 호소하며 의료기관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
일상 자유 만끽 vs 아직 어색하다
당장 벗어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던 마스크는 1월30일 0시를 기해 착용 의무 조치에서 권고로 전환됐다. 하지만 막상 벗으려니 어색하다. 아직은 쓰는 게 더 익숙하게 느껴진다. 청개구리 심보처럼 벗으라니 쓰고 싶다.
마스크 해제 첫날과 그다음날 도심 풍경은 6대 4정도로 나뉘었다. 아직도 마스크를 벗지 않고 유지하는 쪽이 더 많았다. 자유로운 일상을 3년 만에 만끽하고 싶은 마음도 큰 반면 '아직은 쓰겠다'는 소신과 주변 눈치를 보는 경우가 더 우세하다는 것이 해제 사흘째까지의 결론이다.
팬데믹에서 엔데믹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음에도 시민들은 개인 방역을 강제가 아닌 자율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년여동안 계층과 지역을 넘어 마음과 힘을 모아 고난을 극복해 나간 저력을 시민들의 몸이 기억하고 있는가 보다. 어떻게 회복한 일상인가. 이런 일상을 되찾기까지 많은 고통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행이고 감사할 뿐이다.
엊그제 광주에서 내놓라하는 성형외과 '칼잡이 의사' 후배와 술 한잔하는데, 마스크를 벗으면 성형에 관심 갖고
인상에 신경 쓰는 사람이 늘 거라고 예측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외모에 관심이 많다면, 그동안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을 가꾸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막상 마스크를 벗으니 얼굴이 허전한 느낌이다. '얼굴 관리'까지는 아니더라도 '표정 관리'부터 신경 써야겠다. 류성훈 취재2본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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