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결단엔 명분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땐 더욱 그렇다. 명분이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리더에 따라 같은 사안을 놓고 정반대의 정책이 추진되는 이유다. 그 때마다 내세우는 명분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광주시와 전남도의 대표적 '싱크탱크(think-tank)'인 광주전남연구원 분리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2015년 2월엔 '호남의 미래'를 이야기 했다. 연구원 통합 논의가 시작될 때였다. 당시 윤장현 시장과 이낙연 지사는 "각기 출연한 광역자치단체에 연구가 매몰되고, 공동발전 과제에는 등한시하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고 설득했다. 지역의 미래를 위한 연구가 '따로국밥'처럼 진행돼선 안된다는 거였다. 윤 시장은 "연구원이 지자체장의 용역수행 기관에 머물러서는 미래를 그릴 수 없다"고도 했다.
분리 땐 정반대였다. 광주와 전남의 지향점이 다르다는 논리였다. 도시와 농·어촌 환경, 행정특성의 차이가 전면에 부각했다. 2007년 광주발전연구원과 전남발전연구원으로 나뉠 때였다. 91년 전남발전연구원으로 출범했다가 95년 광주시가 출연하면서 광주전남발전연구원으로 확대된 터였다. "통합 운영이 시·도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지방은 위기다. 경제·사회·문화가 집적화되는 수도권과 달리 소멸위기를 걱정하는 처지다. 국토면적의 11.8%에 불과한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이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선 게 불과 2년 전이다. 2019년 12월말 기준, 외국인을 제외한 전국 주민등록인구는 5천184만9천861명이다. 이 중 50%인 2천592만5천799명은 수도권에 살고 있다. 비수도권 14개 시·도 보다 1천737명 더 많다.
광주·전남·전북 등 호남은 계속 줄고 있다. 2012년 세종시 출범과 혁신도시 조성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호남은 525만188명에서 514만4천130명으로 10만6천58명 줄었다. 감소율 2.02%는 전국에서 가장 높다. 경쟁력 감소로 이어졌다. 광주·전남의 지역내총생산(GRDP)도 전국 중·하위권이다.
균형발전은 헌법상 책무다. 진보·보수정권을 떠나 최우선 국정과제였다. 그 간 정부가 나서 '수도권은 비우고 지방은 채워서' 살리는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 왔던 이유다. 도시들간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가 미래 먹거리 선점을 위한 총성없는 전쟁에 나서면서다. 이젠 지방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믿을 건 싱크탱크 밖에 없다. 지방 스스로 종합개발계획 등 대형 프로젝트를 만들고 이를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향력을 갖춘 싱크탱크는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수도권 집중의 그림자가 비친다. 전국 시·도연구원 규모 등 실태를 살펴보면 인구와 경제력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광주전남은 박사 37명, 출연금 70억원 규모다. 단독 운영하는 충남연구원의 박사 47명, 80억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역사는 반복된다. 2007년의 기시감이 있다. 지난해 강기정 시장이 연구원에 대해 분리를 시사하면서다. 공청회 등 절차도 조만간 시작된다. 선후가 뒤바뀐 느낌이다. 우선, 연구원을 수시로 붙였다 떼는 지자체가 같은 곳인 지 묻고 싶다. 과거 판단이 잘못된 거라면 바로잡을 수 있다. 하지만 ▶ 왜 잘못됐는지 ▶ 개선·보완 및 분리 때 부작용 최소화 방안은 무엇인지 ▶ 연구원의 미래 경쟁력·전문성 확보 등 발전 전략부터 밝혀야 한다.
"붙였다 떼는 지자체, 같은 곳인가"
또 하나는 광주·전남의 미래 전략과 방향성이다. 시대는 '강한 지방'을 요구한다. 그 간 지방의 소멸 위기에도 행정의 경계선은 장벽이 돼 갔다. 전국이 광역·거미줄 교통·통신망으로 일일 생활권이 되면서 지자체를 넘는 행정 수요는 넘쳐난다. 행정구역은 의미가 없어졌다. 광주·전남도 마찬가지. 혁신도시와 공항·소각장 등 주요 현안을 놓고 갈등을 빚었다. 때론 경쟁도 벌인다. 되레 협력과 협치의 영역이 커진 셈이다.
광주전남과 대구경북의 연구원이 공동으로 만든 보고서는 주목할만 하다. 지방의 주요 도시와 인근 농산어촌을 하나의 거대 도시로 키울 수 있도록 연계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국토를 수도권 일극에서 '3+2 자립형' 다핵 체제로 재편하는 게 핵심이다. 호남·제주, 대구·경북,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등 남부권 3곳엔 국가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살린다는 구상이다.
마지막은 지속가능한 운영 전략이다. 지방이 살아남으려면 두뇌 집단의 몸집부터 불려야 한다. 과밀화된 수도권에 맞서는 생존전략 차원에서다. 그럴려면 두뇌를 제대로 관리·운영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싱크탱크의 경쟁력·영향력 확보 방안은 뭘까. 글로벌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에게 물었다.
그러자 '챗GPT'의 처방은 크게 세 가지. 꽤 중립적인 답변이 나왔다. ▶ 전문성과 신뢰성 ▶ 데이터와 자원·재원 접근성 ▶ 독립성과 공정성이다. AI도 아는 걸 인간이 모르진 않을 것이다. 통합-분리는 주요 이슈가 아니었다. '두뇌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제도·체질 개선과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먼저라는 의미다. 지금처럼 각자도생이라면 광주·전남은 청년과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는 땅이 될 수 있을까. 시장·지사가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유지호 부국장대우 겸 뉴스룸센터장?hwaone@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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