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기득권 카르텔'과 '다음소희'·'더 글로리', 정순신 사태

@조덕진 입력 2023.03.08. 17:38

전에는 조심이라도 하더니 대놓고 활보한다. 고하가 없고 너나가 없는 형국이다. 조금이라도 약해 보이면 가차 없이 짓밟고, 강자에게는 손을 비벼대며 화해를 갈구한다.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다. 그곳에는 자연의 섭리라도 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한국사회

이 무도하고 야만적인 작태가 자칫 사회의 근간이 될까 섬찟하다.

서울시가 이태원참사 유가족을 막 대하는 행태는 칼이 되어 심장을 찌른다.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이 학폭 가해자인 제 자식 비호에 법 기술을 총동원했던 인물을 버젓이 초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하더니, 급기야 국가가 나서 자국민을, 피해자를 짓뭉갠다.

정부가 일본 전범 기업의 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대신 갚겠단다. 피해자가 결사코 반대하는데도, 일본이 사과도 않는데도, 전범기업이 기금도 못내겠다고 하는데도. 국민(기업)에게 돈을 걷어 일본 죗값을 대신 갚겠단다.

95세의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는 "죽어도 동냥 같은 돈 안받겠다"며 '사과'가 우선이라고 울부짖고있다.

국가가 나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제'하고, 일본에 화해를 구걸한다. 국민에 대한 책무는커녕 당최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다.

이게 소위 요즘 유행하는 '기득권(이익) 카르텔'의 문법, 그들의 정의인가.

정순신 전 초대 국가수사본부장 행태의 확대버전이다. 정 전 본부장은 이 나라 최고 권력기관인 중앙지검 현직 검사 시절 학폭 가해자인 제 자식 비호에 법기술을 총동원했다. 가해자는 권력기관 아비를 등에 업고 제도를 무력화하며 위세를 부리며 일상을 활보했다. 상위권 성적의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대학진학에도 실패했으며 또 다른 피해자는 학교를 떠났다.

정순신사태가 소환한 '더 글로리', 학교폭력 피해자의 통쾌한 복수인가. 허나 한 존엄한 인간이, 그의 전 생이 복수에 저당 잡힌 삶이란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피해자에게 "언제 적 이야기냐, 아직도 물어뜯느냐"고 몰아붙이는 자, 권력 중심부는커녕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말할 자격도 없는 자다.

이같은 안하무인의 무도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약육강식의 정글은 영화 '다음 소희'에서 실사로 만날 수 있다.

'다음소희'는 지난 2017년 전주의 한 대기업 콜센터에 실습 나간 특성화고 여학생의 극단적 선택을 둘러싼 이야기다. 자살로 내몰린, 끔찍한 사회적 타살이었다.

허나 실습 여고생 죽음은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고, 단순 자살 처리됐다. 언론의 추적 끝에 한국사회 치부가 드러났다. 학교·교육청·교육부의 실적놀음, 특성화고 실습을 악용하는 기업, 기업의 하청구조 등 시쳇말로 '이익 카르텔'의 종합판이다. 학벌이나 가난 등 사회적 취약성을 공격 빌미로 악용하는 얍삽함 등 한국사회의 병적 징후가 적나라하다.

더 끔찍한 것은 이 과정에서 누구도 '게으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교사도 학교도 교육청도 최선을 다해 실적을 관리하고, 대기업 하청은 이익 극대화에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다그쳤다. 모두가 최선으로 아이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다. 소위 가진자의 완승이다. 요즘 시쳇말로 '기득권 카르텔'의 승리인 셈이다.

다른 차원에서 '기득권·이익·부패 카르텔' 척결을 적극 당부한다.

2021년 광주도심 한복판에서 현대산업개발 건설현장 사고로 시민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참사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등이 자아낸 끔찍한 인재였다. 대기업 원청의 고질적인 '이익·부패 카르텔'이 멀쩡한 생명을 앗아갔던 것이다,

그뿐인가. 2018년 이후 우리나라는 국민 2천명 이상이 매해 산업현장에서 죽어나간다.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올들어 전남에서만 지난 2월까지 20대 노동자를 포함해 4명이 목숨을 빼앗겼다.

'이익·부패 카르텔'의 희생양이다.

그 동물의 왕국의 지도자들은 자국민 수천명이 죽어나가도 눈하나 깜짝 않는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설사 있더라도 책임은 형식적이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어디선가 누군가의 가족이 끝없이 죽어나간다.

느닷없이 피해자, 사회적 약자가 거대한 공공의 적으로 등장한다. 최소한의 목숨을 지키게 해달라는 노동자의 요구와 간청은 폭력으로 둔갑되고, 사회적 악으로 탈바꿈된다. 노동자, 노동조합이 '이익카르텔'로 콕 찍혀 척결대상으로 등극한다.

국민생명, 존엄이 우선이다

국민생명을 앗아가는 고질적 '부패카르텔'에는 나몰라라 하면서, 죽어가는 노동자·단체를 '적'으로 규정하고 척결하겠다는 칼춤이 난무한다. '단호한' 대통령이 선두에 서고 법무부 장관, 국토부장관이 호위무사로 기세등등하다.

그 칼춤, 어린 청소년, 누군가의 자식, 부모형제의 생명을 앗아가는 '이익 카르텔'에 함께 휘둘러 주길 당부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서.

조덕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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