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19의 3년은 평범했던 '일상의 행복'이 그리워지는 시기였다. 서로 만나 악수하고 헤어지고, 웃고 보듬으며 서로를 위로하던 그런 일들 말이다. 습관이 되어버린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식당 영업시간 제한, 악수보단 손짓과 주먹인사로 반가움을 표시하며 못내 아쉬워하는, 사실 멈춰버린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겨울이 춥고 길수록 봄은 화사하고 향기롭다'고 했던가. 코로나 19의 고통이 길어서 그런지, 올해 봄꽃은 유난히 만발하고 꽃망울의 미소가 화사해서 그런지, 가슴을 더 시리게 하는 것 같다. 생명을 꽃피우려는 산고의 시간이나, 아무런 잡생각 없이 흥얼흥얼하는 여유로움, 잠시 눈을 감고 유년의 뜰을 걷는듯한 그런 시간들이 떠오른다.
2020년 여름,섬진강 수해의 교훈
그런 생각들 속에 반가운 소식이었다. 지난 10일 광양매화축제 개막식에서 정인화 광양시장과 이상철 곡성군수, 김순호 구례군수, 하승철 경남 하동군수가 '섬진강 관광시대 원년'을 선포했다. 지난 2020년 여름, 수해를 입은 이들 4개 지자체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자'며 맞손을 잡은 것이다. 섬진강 통합관광시대로, 이를 공동 홍보하고 연계투어를 진행하는 등 함께 성공축제를 견인해가자는 취지다.
4년 만에 차례로 열리는 광양매화축제를 시작으로, 구례산수유축제, 하동벚꽃축제, 곡성장미축제 등이다. 선포식에는 김영록 전남지사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2022∼2023년 전남방문의 해에 맞춰 국내 관광객 1억명 시대를 목표로 한 분주한 발걸음이다.
그런 열성 덕분에 광양 매화축제는 하루 17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흥행 대박을 터뜨렸다. 인근 마을에서 함께 시작된 구례 산수유 축제도 긴 차량 행렬로 상춘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이미 코로나의 동면기가 끝나면서 지난 2월에 열린 강진 청자축제가 그 흥행의 시동이었다. 군 전체인구의 3배가 넘는 10만6천여명이 다녀가면서 축제의 새 역사를 썼다. 인근 김성 장흥군수는 축제장을 돌며 뭔가 꿀팁을 얻으려는 모습도 포착됐다.
앞으로 예정된 해남 땅끝매화축제와 벚꽃이 아름다운 영암 왕인문화축제, 여수 영취산 진달래축제, 신안 섬튤립축제, 목포 유달산 봄축제, 보성 다향대축제, 영산강 유채꽃이 장관인 영산포 홍어축제, 함평 나비대축제, 곡성 세계장미축제 등 3∼4월에만 30여개에 달해 남도 들녘은 방문객들로 후끈 달아오를 전망이다.
이 대목에서 광양·곡성·구례·하동 등 4개 지자체가 함께한 '섬진강 통합관광시대'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제각각 경쟁하던 지자체들이 함께 모여 섬진강의 생태 미래를 고민하고 화합을 꿈꾸듯, 지방 소멸시대에 전남의 시·군들도 연대와 통합을 통한 상생의 전략을 마련하라는 메시지는 아닐까.
지방소멸시대를 맞은 전남에서는 이미 가까운 시·군·구끼리 연대와 협력의 사례가 발견된다. 먼저 지난해 농촌지역 생활권 활성화라는 목표아래 정부와 지자체가 협업하는 '농촌협약' 대상에 장흥·강진과 나주·화순이 선정돼 5년간 국비 1천200억원을 확보했다. 이는 여러 사업을 하나로 묶어 패키지 지원하는 것으로, 시·군간의 협업과 연계, 사업간 시너지효과가 목표다. 장흥·강진은 지난 2021년 탐진강 물줄기를 공유하는 수도서비스 상생협약도 체결했다. 강진군과 전남도는 최근 목포·영암·무안군과 함께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공동추진키로 하는 등 연대의 물결이다. 지난 2019년 발족한 광주 북구·광산구, 전남 담양·장성군 등 북부권 4개 지자체의 상생발전협의회도 눈길이다.
섬진강 시대를 연 4개 지자체처럼 영호남 9개 시·군이 뭉친 사례도 남다르다. 남해안남중권발전협의회로, 전남에선 여수·순천·광양시와 고흥·보성군이, 경남에선 진주·사천시와 하동·남해군이 뭉쳤다. 2021년부터 제33차 UN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3, 2028년 한국 개최 예정) 유치에 여수를 중심으로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인구소멸 위기,연대·통합이 답이다
지금 농촌은, 아니 지방은 그야말로 생사의 기로에 놓여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올해 전남지역 33개 초교가 신입생을 한 명도 받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생소한 이색운동회가 열려 관심을 끌었다. '추억을 굴려라∼, 꿈을 날려라∼'라는 주제로 담양 청죽골 작은학교 8개 초교가 청군과 백군으로 나눠 연합운동회를 치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린이들과 주민들 600여명이 함께 모여 하모니 운동회 잔치를 펼친 것이다. 인구소멸이 가져온 진풍경이기는 하지만, 앞으론 농촌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광경이 될 것이다.
섬진강 주변의 지자체들도 지난 2020년 여름 섬진강 범람에 따른 큰 피해와 곳곳 산사태를 경험한 터라, 누구랄 것도 없이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과 정책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섬진강 통합관광시대의 선포나, 협의회의 출범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주민들은 순리에 따르라는 우생마사(牛生馬死)의 교훈에 이어 이제는 좀 더디더라도 함께 멀리 가자는 원행이중(遠行以衆)의 이치를 깨우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강동준(이사·마케팅사업본부장)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