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민주당, 잔인한 4월이 되지 않으려면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대표 입력 2023.04.19. 17:57

4월은 웬지 뿌옇다. 하늘엔 황사가 덮였다 걷혔다를 반복한다. 마음은 춘래불사춘이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읊은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연상작용인지 모른다. 봄인 듯 봄이 아닌 듯 변덕스러운 날씨에 혼란스럽고 해가 바뀌는 줄 알았더니, 벌써 4월이라는 조급함도 혼재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가슴 깊은 속 '천 개의 바람'으로 자리한 세월호의 아픔이 있어 더욱 무거운 시절이기도 하다. 그런 4월이 정치인들에게는 의미를 하나 더한다. 매 4년마다 4월 총선을 치러야 하는 부담이다. 적잖이 버거운 시기임에 분명하다. 특히 총선을 1년 앞둔 지금이 정치인이나 정당에게 더없이 중요한 시점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 점에서 민주당과 호남의 함수관계 또한 복잡하다.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이 끝난 직후 어느 날 김대중컨변센터. 호남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당선자 워크숍을 개최했다. 여느 때 같으면 서울이나 어디 공기 좋은 연수시설에서 워크숍을 열었겠지만 이례적으로 광주를 찾았다. 광주 8대 0, 전남 9대 1, 광주전남에서 단 한 석을 건진 데 그친 처참한 총선 성적표 때문이었다. 호남에서 준엄한 회초리를 맞겠다는 게 당시 민주당의 구호였다. 워크숍에 패널로 참석했던 필자는 객석에서 하품하고 있는 당선자를 향해 "의원님 지금 잠이 오십니까"라고 가벼운 조크를 던졌다가 난데없이 SNS스타(?)가 됐던 웃지 못할 기억도 있다. 한 종편방송이 앞뒤 다 자르고 '잠이 오시냐'는 부분만 짤방으로 만들어 돌렸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다는 뉘앙스였다.

과거사까지 꺼내 장황설을 푸는 이유는 2016년과 지금의 민주당 상황이 여러 면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민주당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까지 60%대를 지켰던 호남 내 민주당 지지율이 올해 들어 40% 아래로 주저앉았다. 심지어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무당층 지지율이 민주당을 앞서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비판적 지지층이 與도 싫고 野도 싫은 무당층으로 옮겨간 것이다. 최근 전주을 재보선에서 진보당 후보가 당선된 점이나 지난 지방선거에서 광주의 투표율이 37%대에 그쳤던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하는 시그널로 읽힌다. 2016년 당시에도 바닥에 숨겨져 있던 호남홀대론, 반문재인, 반민주당 정서가 결국 총선 결과로 나타났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안철수의 국민의당이라는 대안세력이 있었다는 점인데, 지금도 대안만 나타난다면 언제든지 갈아탈 수 있는 동력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가장 멀리는 지난 대선 패배 이후 호남의 민심을 제대로 아우르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당시 호남의 유권자들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민주당 후보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지만 패했다. 그 이후에도 민주당은 패닉상태에 빠진 호남민심을 달래기는커녕 '졌잘싸' 운운하며 대충 뭉갰다.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 변화와 혁신의 치유 없이 흘러가고 있다.

또 하나는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잇따라 헛발질을 하고 있는데도 반사이익조차 얻지 못하는 민주당의 한계를 호남지역민들은 보고 있다. 비전도 민생도 없이 그저 이재명 사법리스크라는 늪에 갇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른바 '돈봉투' 사건까지 불거져 혼돈상태다. 이러니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접고 무당층으로 옮겨가는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호남정치의 실종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대부분 초선인 지역 국회이원들이 중앙정치 무대에서 존재감이 없고 한 때 민주당의 중심이었던 호남이 변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회의감이 짙게 깔려 있다. 민주당 지도부도 선거 때만 되면 '호남이 민주당의 심장부'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호남을 어디 주머니 속의 공깃돌 정도로 여기는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다.

반전의 계기는 없을까.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이 호남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눈 자명하다. 문재인 대표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과감하게 비대위 제제로 전환한 뒤 뼈를 깎는 혁신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에도 호남의 반문재인 정서를 달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는 광주에서 살다시피 했을 정도다. 그래서 대선을 호남 압승으로 이끌었다. 결국 답은 변화와 혁신, 그리고 감동을 줄 수 있는 공감능력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두 비호감 정치인에 갇혀 있는 정치구도. 대통령이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들이 대통령을 걱정하는 나라, 지금의 대한민국 상황이 참 보기 딱하다. 더 심각한 것은 그런 정부여당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반사이익조차 누리지 못하는 민주당이다. 엘리엇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역설적으로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했다고 한다. 내년 4월이 민주당에게 잔인한 달이 아닌, 생동의 달로 기록되려면 지금의 모습으로는 곤란하다는 게 호남의 시각이다. 민주당을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한숨소리가 가득하다.

구길용 뉴시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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