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공의 뱃~노오래 가아무~울거~어리면/삼하~악도 파도 깊이 스며어~드느~은데/부두의 새아~악시 아롱젖은 옷자~락/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서~얼움."
그때 그 시절, 무등경기장 야구장은 '목포의 눈물'에 젖곤 했다. 관중들은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1990년대 중·후반까지 목이 터져라 노래를 열창하며 해태타이거즈를 응원했다. '목포의 눈물'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호남의 가슴 속 '응어리'였다. 수십 년간 소외되고 핍박받은 이들의 울분이자 억눌린 민주와 인권, 평화를 향한 욕망의 분출이기도 했다.
김성한, 김봉연, 김종모가 홈런을 치고,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이 승리한 후에는 어김없이 '목포의 눈물'이 흘러나왔다. 관중은 3~4점 차로 지고 있더라도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해태가 연전연승할수록 노랫가락에는 더욱 힘이 실렸다. 야구가 끝났다고 그냥 갈 수는 없었다. 주변 대폿집에 삼삼오오 모여 밤늦도록 그날 치러진 경기를 화두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얼큰하게 취기라도 오를라치면 누군가 물색없이 '목포의 눈물'을 불렀고 너나 할 것 없이 약속이나 한 듯이 따라 불렀다. 5월 18일에 홈경기가 열린 것은 지난 2000년.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무려 18년이나 지난 후였다.
공·수·주 3박자 갖춘 '바람의 아들'
해태타이거즈를 향한 팬덤의 중심에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있었다. 그는 1993년 입단한 후 공·수·주 삼박자를 갖춘 화려한 플레이로 단박에 시선을 끌었다. 그해 한국시리즈 맹활약으로 '시리즈 MVP'까지 오르며 더욱 인기가 치솟았다. 그는 1994년에 84도루로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우고 3할9푼3리라는 엄청난 타율을 기록했다.
이종범은 그야말로 '야구 천재'였다. 그의 뛰어난 타격과 도루 능력은 승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계기가 되곤 했다. 특히 유격수 위치에서 보여준 폭넓은 수비 범위는 상대 팀 선수들의 기를 꺾는 데 큰 역할을 했다. 3루수와 사이로 뻗어가는 안타성 타구를 쫓아가 걷어낸 뒤 이를 정확히 1루로 송구해 아웃을 시키는 모습은 관중조차 믿기 어려운 환상적인 플레이였다. 김응룡 감독이 "투수는 선동열이 가장 잘하고, 타자는 이승엽이 최고지만 야구는 이종범이 제일 잘한다"고 할 정도였다.
관중들은 이종범을 보며 행복감을 느꼈다. "야구장을 찾을 때 경기 승패보다 이종범을 보기 위해 간다"는 말이 이구동성으로 쏟아졌다. 팬들은 전날 경기를 직관한 후에도 방송이나 신문에서 보도된 내용을 빠짐없이 정독하며 당시의 상황을 다시 즐겼다. 신문사는 야구 관련 오·탈자라도 생기면 독자의 항의전화를 감수해야 했다.
이종범은 1997년 일본 주니치로 이적했다가 2001년 KBO리그에 복귀하면서 다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3년에는 20-20클럽에 가입했고, 국가대표로 나서 국제대회에서도 활약한 후 지난 2012년 은퇴했다. 그의 등번호 7은 선동열의 18과 함께 영구결번됐다.
"김도영 보러 야구장에 간다"
올해는 KIA 타이거즈가 1위를 질주하며 '갸(기아)부심'을 일으키고 있다. 시즌 초 주전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경기력 약화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투·타의 조화로 위기를 극복하고 선두를 유지 중이다. 이대로 간다면 KIA 타이거즈가 지난 2017년 이후 7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을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흥행몰이를 주도하고 있는 선수는 김도영이다. 그는 '제2의 이종범'으로 불리며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프로 1~2년 차 동안 김도영은 부상 등에 시달리며 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해에는 발가락 부상 탓에 시즌 초반을 거르면서 84경기 출전에 그쳤다. 선의의 경쟁자였던 문동주가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구속인 160.1㎞을 찍고,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과정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판도는 달라졌다. 시즌 초반 김도영은 강한 힘과 빠른 발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수비와 타력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4월 성적이 화려하다. 4월 타율 3할8푼5리에 10홈런 14도루를 기록했고, 월간 '10(홈런)-10(도루)' 클럽도 KBO리그 최초로 가입했다. KBO 3~4월 MVP에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팬들은 그의 활약을 볼 때마다 '이종범'을 떠올리며 열렬한 응원을 보내고 있다.
김도영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팬들에게는 그의 일거수일투족도 관심사가 됐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한결같이 성실하고 언론 인터뷰에서는 당당하게 소신을 이야기하는 모습 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어느 비오는 날 SNS에 올린 '그런 날 있잖아…'라는 감성적인 글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각종 패러디 열풍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종범을 보러 야구장에 간다"고 했던 팬심은 "김도영을 보는 재미로 야구장에 간다"로 바뀌었다.
'목포의 눈물'은 끝나지 않았다
KIA타이거즈의 성적과 맞물려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리는 홈경기는 연일 만석을 이루고 있다. 홈경기 표를 예매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인터넷 예매는 접속조차 어렵거니와 원하는 좌석은 언감생심이고 구석진 자리라도 얼른 선점하지 않으면 뺏기기 십상이다. KIA타이거즈의 원정경기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은 물론 부산, 대구, 창원 등 가는 곳마다 '구름관중'이 몰려들면서 홈경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유니폼 등 각종 기념품도 매진사태를 겪고 있다. 관중들은 경기장 내 기념품 가게가 문을 열기 훨씬 전부터 길게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힘들게 유니폼을 구해도 인기 있는 선수들의 마킹은 매진으로 구할 수 없다. 이 중 김도영의 유니폼 인기는 단연 최고다.
이종범 팬심이 김도영으로 바뀌는 사이 KIA의 응원가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목포의 눈물'에서 '남행열차'로 변하더니 지금은 경기 전이나 각 이닝에 따라 다양한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치어리더들의 화려한 율동에 맞춰 몸을 흔드는 관중들도 일사불란하다.
하지만 이때 어딘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일까. KIA타이거즈에 대한 열렬한 팬들의 응원문화가 무등경기장에서 함께 불렀던 '목포의 눈물'에 대한 향수까지 덮어버리기엔 무엇인가 미흡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것이 게임을 치르는 경기장이 바뀐 탓인지, 매번 비슷한 자리에서 담배와 껌을 팔던 '해태아줌마'가 없어서인지는 모르겠다.
놓쳐서는 안될사실은 한가지. 아직 5월이 채 지나지 않았고, 그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김만선 취재3본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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