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생 동안 지역감정에 부대끼고 언론의 편파적 보도에 시달렸다. 이 두 가지를 극복하려고 숱한 노력을 했다. 그것은 몸부림에 가까웠다…(중략) 경상도 출신 대통령이 지역 차별 정책을 편다면 '경상도만이라도' 잘사는 것이 아니라 '경상도마저' 못 살게 된다. 지역 차별은 모두를 망친다. 물론 일부 특권층은 특혜를 얻겠지만 대다수 국민은 불행해진다. 국민들은 분열하고, 통일역량은 약화되고, 국가의 이상은 표류하게 된다…"
대한민국에 파란 나라와 빨간 나라
'김대중 자서전Ⅰ'(2010, 도서출판 삼인) 책 내용중 6부 '지역감정과 편파보도'에 나온 대목이다. 한 사례로 1990년 11월에 치러진 함평·영광 재보궐선거를 꺼낸다. 당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공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지역감정 해소와 동서화합을 위한 조치'라는 DJ의 말처럼 호남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경북 칠곡 출신의 이수인 해직교수를 공천한다. 지역의 반발은 극심했다. "왜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왔는가.", "도대체 우리를 뭘로 보십니까?"
정작 대구쪽에서도 정략적 발언이 쏟아졌다. "김대중이가 이수인을 이용해 우리를 속이려 한다" 그럼에도 평화민주당 총재 DJ는 시장과 골목 곳곳을 돌며 '망국적 지역감정을 타파해야 한다'며 설득에 나섰다. 상대인 민주자유당은 영광 출신 재선의원이고 정무1장관을 지낸 조기상씨를 후보로 냈다. 하지만 75.38%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수인 후보가 당선된다. DJ는 책에서 "비록 의석 하나를 잃는다 해도 정치적 화합을 위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의미있는 정치적 실험이 될 것 같았다"고 소회를 밝힌다.
그 이후로도 수십년동안 양 지역은 대한민국 지역감정의 양대산맥으로 치부된다. 호남에서는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민주당 공천에 대한 비아냥이 맴돌고, 대구도 역시 보수 정치인들의 발길이 머무는 상징적인 도시로 자리잡았다.
지난 4월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서도 대구·경북(25석)은 한 석도 빼놓지 않고 국민의힘이 모두 독차지했다. 부산·경남(34석)은 30석이 국민의힘이다. 광주·전남·전북(28석)도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했다.
이 대목에서 지역민의 성향을 빗댄 분석이 눈길을 끈다. "대구 사람들은 관광 첫날에 지위를 가려 서열을 정한다고 한다. 그래야 심적 안정을 찾고 일사분란한 일정을 끝낼 수 있다고 믿는다. 반면 광주 사람들은 위 아래를 따지지 않고 서열을 정하지 않는다. 나서면 "지가 뭔데?"라며 오히려 정을 맞는단다."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가 한 동영상 공유 웹사이트에서 여행사 사장의 말을 빌려 패키지 관광에서 두 지역 사람들의 특징을 말한 대목이다. 박 교수는 이런 미묘한 차이가 의외로 정치적 성향을 결정한다고 본다. 합리적이냐 보수적이냐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수논객 정규재씨의 동영상도 상통한다. 대구 사람들은 당에서 공천장을 내려보내면 어떤 사람이라도 지지하고 찍어주는 충성도를 보이는 맹목적 지지자들이라고 판단한다. 반면 광주 사람들은 당의 결정 방향을 선제적으로 정해 당에 올리면 당이 수용하는 형태라고 한다.
어쨌든 총선 결과를 보면 대구·경북이 빨간 나라라면, 광주·전남은 파란 나라다. 지역민들은 '이래선 안된다'며 동서화합을 부르짖고 있다. 올해가 88올림픽고속도로(현 광주대구고속도로) 개통 40주년이고, 달빛동맹 11주년이다. 교류와 소통의 성과도 많지만 해결할 과제도 많다. 그 중 하나가 영호남 1800만 시·도민의 염원인 '광주-대구 내륙철도(달빛철도)' 건설이다. 올해초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돼 앞으로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와 적정성 검사 등을 거쳐 건설방식이 결정된다. 2030년 완공목표로 1시간 생활권에 들어선다. 양 지역의 산업 물류와 민간 교류 확대가 점쳐지지만, 예산이 문제다. 일반철도 단선이냐 복선이냐, 아니면 달리는 속도가 250㎞냐, 350㎞냐 등이 주요 관심사다.
선거제 개혁, 22대 국회서 적극 나서야
만약, 34년 전에 DJ가 했던 것처럼 "몇 십 석을 얻는 것보다 우리 정치에 득이 될 것"이라며 대구 사람을 광주에 공천한다면? 역시 대구에도 광주 사람을 공천한다면? 달빛동맹 확대는 물론이고 지역교류가 더 빛나지 않을까. 지역구가 어렵다면 당 대표가 나서서 비례 공천이라도 책임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진영정치·팬덤정치의 폐해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 대통령 5년 단임제란 혼합된 제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 21대 국회를 마무리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의 말이다. 한 표 차이라도 이기면 모든 것을 다 받고 아니면 다 잃는 현재의 소선거구제는 폐해가 너무 많다. 표 계산에 따른 정치 경쟁이 극단화해지고, 선거가 국민통합보다는 진영간 갈등과 대립을 조장한다. 지역기반을 가진 두 거대정당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체제로 굳어진 형국이니 선거제 개혁이 쉽게 성사될 리 만무하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했던 중대선거구제는 1명의 후보에게 투표하고 2등에서 많게는 5등까지 당선되는 방식이다. 아니면 소선거구에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를 통해 구제할 수 있는 석패율제라도 도입하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손봐야 하지 않겠나.
강동준(상무이사·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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