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진정한 리더십에 대해 묻다

@김만선 입력 2024.10.30. 16:13

김만선 부국장 대우·취재3본부장

리더는 늘 시험받는다. 자신이 맡은 지위 내에서 끊임없이 부여되는 크고 작은 숙제와 시름해야 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떠안는다. 시부저기 이뤄지는 일은 없다. 아쉽고 억울한 일을 겪을 수도 있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거나 다른 리더와 교집합이 있는 영역에 홀로 짐을 지다 보면 그 무게를 감당하기 어렵고 무릎마저 꺾이기 일쑤다.

그렇다고 리더가 책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원에게 적절한 업무를 부여하고 그에 따른 유·무형의 보상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지시를 이행하지 않거나 수행 능력이 부족할 경우 어떤 처분을 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도 리더의 몫이다. 너무 과해서도, 부족해서도 안된다.

권위는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권위와 권위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자신이 우월한 요소를 내세워 남을 억지로 따르게 하기보다 조직원 스스로 믿고 따를 수 있는 '신뢰의 관계맺음'이 필요하다.

마음눈을 돋우는 일도 리더가 갖춰야 할 요소다. 사안의 시시비비나 경중, 선후를 구별하는 능력은 리더가 얼마나 '축적의 시간'을 갖고 내공을 쌓아왔는지에서 비롯된다.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며 판단을 흐리게 하거나 미주알 졸졸 중동무이하는 이들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리더가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야 하는 이유다.

주목받는 이범호 감독 '형님 리더십'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은 어려운 시험 하나를 치렀다. 그는 올해 초 KIA의 스프링캠프에 코치로 참여하던 중 갑작스럽게 감독으로 승격돼 팀을 이끌었다. '초보 사령탑'에 대한 평가는 기대와 우려가 엇갈렸다. 어수선한 팀을 잘 수습해 가을야구에 진출할 것이라는 희망적인 평가가 있었던 반면 경험이 전혀 없고 검증이 되지 않은 만큼 당장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도 컸다.

리그가 개막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KIA가 초반부터 앞서 나가더니 전반기가 끝날 무렵부터 독주체제를 갖춘 것이다. KIA의 전력은 지난해 시즌에 비해 선수층이 두터워지거나 크게 변화된 것이 없었다. 되레 나성범을 시작으로 윌 크로우, 황대인, 임기영, 박찬호, 이의리, 윤영철 등 주전 선수들이 줄줄이 이탈하는 악재가 이어졌을 뿐이었다. 'KIA의 힘'은 이 지점에서 더욱 드러났다. KIA는 보란 듯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압도하며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KIA가 통합 우승을 차지한 원동력은 간판스타 김도영의 활약, 신구 선수 간 조화, 두터운 선수층 등이 꼽히지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요인은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범호 감독의 대명사는 '형님 리더십'이다. 그는 선수에게 무엇을 억지로 가르치기보다는 그라운드에서 자신의 야구를 맘껏 펼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북돋아주는 데 초점을 뒀다. 부상으로 결장한 선수가 복귀하는 시점은 당장의 1승보다 '완전한 회복'을 중요시했고 열심히 준비한 선수는 언제든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관용과 포용으로만 대처한 것은 아니었다. 승부처에서는 팀을 대표하는 간판선수라도 가차 없이 교체하는 강단을 보였다. 상징적인 장면은 지난 7월17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있었다. 이범호 감독은 9-5로 앞선 5회말 2아웃에 베테랑 투수 양현종의 교체를 지시했다. 아웃카운트 1개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확보할 수 있었던 양현종은 당황한 표정을 보였지만 감독의 결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이때 카메라 앵글에 포착된 장면은 이범호 감독의 다음 행동이었다. 투수 교체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는 양현종에게 다가가 '백허그'로 위로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범호 감독은 선수들이 프로에 걸맞지 않은 '워크에식'을 보여줄 때마다 과감히 회초리를 꺼내들었다. 그는 팀의 간판타자로 떠오른 김도영이 본헤드플레이를 하자 다음 타석에서 홈런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수비에서 과감히 문책성 교체를 지시했다. 외국인 선수 소크라테스 브리토와 홈런타자 나성범도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저질렀을 때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범호 감독은 선수들이 실수하면 주전 여부와 관계없이 책임을 묻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는 선수들을 달래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유의 친화력으로 프런트와 코치진, 선수를 하나로 엮는 리더십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범호 감독의 덕목 중 돋보이는 점은 팀 성적의 공을 선수들과 열심히 응원해준 팬들에게 돌리는 모습이다. 그는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수들과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정규시즌 우승 확정 후 "팬분들이 가장 감사한 선수"라며 KIA팬을 앞세웠다. 형님 리더십과 관련해서는 "선수들과 관계에서 틀이 벗어나지 않은 가운데 유대관계를 잘 이어가려 노력했다. 선수들과 케미스트리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왜곡된 리더십은 기억되지 않는다

이범호 감독의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리더십이 더욱 빛을 발한 이유는 '초보 사령탑'이라는 우려를 '통합 우승'이라는 월계관으로 불식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야구는 내년에도, 이듬해에도 계속된다. '이범호표 형님 리더십'이 많은 이들에게 회자가 되고 선한 영향력을 주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이 담보되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 KIA의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많은 사람들은 '형님 리더십'의 한계나 실패를 지적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이범호 감독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리더는 늘 시험받는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한 시간도 있다.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리더의 덕목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앞세우는 데 급급하거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마음눈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리더십은 오래 기억되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이범호 감독의 형님 리더십을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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