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스웨덴 한림원은 전 세계 공공도서관 5천여 곳에 공문을 보낸다. 공문 내용은 영어로 된 한국 문학 작품과 다큐멘터리 자료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몇 개월 뒤 한림원에 도착한 한국 작품은 황순원의 단편 소설 '소나기' 를 비롯해 고작 180여 편에 불과했다.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추천은 커녕 한국 문학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영어로 된 작품 자체가 극히 적었다.
한국 작품 번역서가 없었던 데에는 당시가 독재 정권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대 흐름 탓도 있었다. 대학 교수의 번역 작업에 의존하던 수준일 정도로 번역작업이 활발하지 못한 점도 작용했다. 지금은 정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을 비롯해 다양한 번역 기관이나 단체, 개인이 활동하고 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대학교 교수들의 번역 작업을 지원했다. 소설이나 시를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해 발간하면 부수의 50%를 정부가 구매해줬다. 교수들의 번역 작업 활성화를 위해서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된 일본 문학 작품이 세계 곳곳에 퍼지면서 일본은 지금까지 2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학창 시절 인문학과 노 교수가 노벨문학상을 거론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밝힌 에피소드 중 하나다.
10일 소설가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고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지난 10월 초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기자회견에서 한강 작품을 "역사의 상처를 마주 보고 인간 삶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평가했다.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 제주 4·3 학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소년이 온다'을 언급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강 작가가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끝없이 고민하고 화두로 제시해온 인간의 폭력성과 고통, 아름다움에 대한 천착이 전 세계에서 높게 평가받은 것이다.
한국 문학계는 2천 년 대 이후 고은 시인, 황석영·이문열 소설가 등이 노벨문학상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한강 작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영국 맨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해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번역은 데보라 스미스라는 당시 20대 영국인 여성이 맡았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데보라 스미스는 독학으로 한국어를 배워 런던대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한강 작품 번역을 하면서 한국 고유문화를 최대한 살리는데 신경을 썼다고 한다.
예를 들어 소주를 코리안 보드카로 하지 않고 'soju'로 직역해 외국 독자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의도를 갖고 번역했다고 최근 밝힌 바 있다. 한류 열풍에 따른 한국 문학과 문화의 위상이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수상으로 노벨평화상에 이어 노벨문학상 작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우리는 가질 수 있게 됐다. 더욱 광주는 한강 작가의 태생지다. 중흥동에서 태어나 효동초를 다니다 서울로 이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고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인문학 관련 콘텐츠를 발굴하고 이를 도시 마케팅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광주시가 중흥동에 북카페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광주 시내 곳곳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특강과 이벤트가 진행되면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일련의 행사와 노력이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체계적인 프로그램과 콘텐츠 생산에 집중해 도시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한다.
공동체 세상을 만들어냈던 5월 정신 계승과 함께 노벨문학상 산실이라는 자부심을 후세에 물려줄 교육 당국의 독서 함양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한 때다.
한강 작가는 지난 7일 스웨덴 한림원에서 열린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과정을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라고 말했다.
광주라는 고유 명사가 세계 속에서 보통 명사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대통령의 비상 계엄 선포로 온 나라가 혼란스럽다. 한강 작가의 말처럼 5·18민주화운동은 현재 진행형이다.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길 바란다. 아울러 인권 도시로서 명성을 날린 광주가 노벨문학상 작가 탄생지이자 책 읽는 도시, 인문 도시라는 새로운 브랜드로서 세계 속에서 꽃피길 기대한다. 양기생 신문잡지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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