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극한호우·폭염·가을실종 기후 위기, 광주·전남 또 되풀이 땐···

@유지호 입력 2024.12.31. 17:20

지난해 이상기후의 심각성을 절감했다. 기나긴 폭염 끝, 가을은 데면데면 스치듯했다. '며느리 대신 집 나간' 전어도 그 중 하나. 8월 이후 바닷물이 차가워지면 지방층이 두꺼워지면서 고소한 맛을 낸다. '무등맛집' 촬영 섭외차 충장로에 있는 단골 가게를 찾았을 때였다. 맛깔스런 회·구이로 손 맛을 자랑하던 곳이다. 전어라는 말에 주인은 손사래쳤다. "하늘의 별 따기에요. 가격이 2∼3배 올랐는데도 구경 조차 할 수 없죠."

독하고 길어진 폭염의 그늘은 깊었다. 여름의 끝이 늦어지면서다. 소주 한 잔, 막걸리 한 사발에 애달픈 삶을 달래주던 안주는 언감생심. 깨가 서말이란 말 처럼 씹을수록 고소한 횟감으로, 소금 뿌려 연탄불에 구워먹던 전어는 어느덧 추억이 됐다. 해수면 온도 상승의 직격탄을 맞으면서다. 10월 남해안 수온은 24.2도였다. 평년(1991~2020년)보다 2.2도 높았던 것이다. 남해안 고수온 특보 역시 가장 긴 71일간 이어졌다.

얕은 바다에 사는 한대성 어종인 전어는 2020년부터 급감했다. 광주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물량이 2020년 20.89t에서 17.28t(21년), 11.97t(22년), 18.52t(23년)으로 줄어든 것이다. 24년은 전년 생산량의 반 토막이 나면서 씨가 말랐다. 11t대를 기록한 것이다. 전어축제도 꼬였다. 광양과 보성은 계획과 달리 전어잡이 퍼포먼스로 대체했다. 수온 탓에 먹을거리를 내세워 모처럼 지역 경제를 살릴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고수온 탓에 벌어진 수산물 대란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은 상징적이다. 가을은 기온이 꺾이는 계절이다. 기상학적으론 '일 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을 시작일로 본다. 설악산 대청봉 첫 서리는 공식적이다. '가을 한 가운데'인 한가위는 추수가 끝난 전통 농경사회의 풍요를 떠올리게 한다. 한 해 농사를 매조짓는 때다. 예부터 넉넉치 않던 농촌에서도 추석빔을 입고 고기 맛을 볼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해엔 하석이란 신조어가 생겼다. 연휴기간 최고기온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다. 차례상부터 바뀌었다. 배·사과 등 과일과 고사리·시금치·배추 등 채소 생산량이 급감하면서다.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잡채에 시금치를 넣지 못했다는 경험담이 잇따랐다. 고사리·도라지도 한 줌에 만원씩 했다. 고기와 생선·전·나물 등 음식은 간소화 됐다. 무더위에 상할까 우려해서다.

뚜렷한 사계절과 장마철, 삼한사온 등 계절의 징표는 모호해졌다. 가을 단풍과 겨울 첫 눈의 공존은 기괴했다. 11월 27일 '무등VIEW'에 찍힌 바람재(무등산)에선 빨갛고 노란 색깔의 나무들이 햐얀 눈을 뒤집어썼다. 예년에 비해 단풍 시계가 한 달가량 늦춰지면서다. 기상청이 실제 기온에 맞춰 계절별 길이를 조정하는 논의에 착수한 배경이다.

절기상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도 낯설었다. 일상에 파고든 좀비 모기 탓이었다. 지난해 10월 광주 도심 트랩 지수는 96.8 개체로, 전년 같은 기간 80 개체보다 21% 늘었다. 2022년보단 4배 이상 폭증했다. 트랩지수는 하룻 밤 한 대의 트랩에서 잡힌 모기 개체 수를 가리킨다. '사계절 모기'를 매개로 한 신종 감염병에 대비해야 할 때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밥상물가는 요동쳤다. 일명 기후플레이션 탓이다. 폭염과 가뭄, 홍수 등으로 인한 농·수산물 수급 불안정 때문에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지난해 봄 '금(金)사과'와 '다이아사과'는 예고편이었다. '금 오이·고추·배추'란 말이 잇따랐다. 생선도 마찬가지. 전어 같은 한대성 어종인 참조기나 국민 횟감인 양식 우럭 등은 물론 조개·굴 등 어패류와 멍게, 낙지·주꾸미 값이 수시로 천장과 바닥을 오갔다.

이상기후, 삶의 질·생존과 직결

이상기후는 생활경제와 직결된다. 한국은행의 분석 결과다. 국내 물가 상승분의 10% 가량이 고온 등 이상기후에 원인이 있다는 거다. 불안전성이 커진 식료품 등의 가격이 3개월여 뒤 소비자 물가를 0.03%p 끌어올렸다. 물가가 올라 지갑이 얇아지면 경기를 위축시키며 산업생산도 갉아먹는다. 농작물 작황 부진이 물가 상승을 견인했고 폭염으로 인한 노동성 저하 등 악영향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광주와 전남에 직격탄이었다. 광주는 경제 기반 자체가 취약하다. 이상고온·이상저온·강수량·가뭄·해수면 높이 등 5가지 요인을 따지는 이상기후지수(CRI)가 전국 상위권이었다. 16개 시·도 가운데 4번째. 산업생산 등 지역 성장 저하와 물가 상승 등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았다는 뜻이다. 농림어업을 기반으로 하는 전남의 타격도 컸다. 과실류 물가가 가장 큰 상승폭을 보였고, 채소류와 식료품 등이 그 뒤를 이은 탓이다.

이상기후는 상수가 됐다. 지난해와 같은 기후플레이션이 일상을 더 깊게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기상 전문가들은 "지난 여름이 앞으로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전망한다. 2050년엔 폭염으로 연 25만명이 사망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불길한 시그널 앞에서 광주와 전남, 더 나아가 대한민국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기후가 삶의 질 뿐만 아니라 생존권과 직결되는 시대다. 2025년 을사년은 '푸른 뱀(청사)'의 해다. 푸른색은 생명력·성장을, 뱀은 지혜·통찰력을 각각 상징한다. 올해는 '허물을 벗는 푸른 뱀'처럼, 당장 눈 앞에 닥친 기후 위기 극복의 원년이 되길 기대해 본다. 기후 위기는 서민들의 삶부터 짓밟는다는 게 2024년 갑진년이 주는 교훈이다.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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