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2025년 탄핵정국과 일모도원(日暮途遠)의 교훈

@강동준 입력 2025.02.05. 11:10
강동준(총괄상무 겸 사업협력국장)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를 계속 죽이려고 그랬어요. 검찰권을 동원해서 정치현장에서 말살해버리려고 했어요… 민주당에서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어서 그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윤 대통령이 이재명에게 한 것처럼…."(유시민 작가가 한 정치토론 방송에서)

"다수당의 입법 횡포로 국정을 마비시켜온 민주당 이재명 세력이 국가 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면 끝없는 정치 보복과 극심한 국론 분열로 나라가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의 말씀도 계셨다."(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설 민심을 전하면서)

복수와 보복의 정치, 그 종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보복을 이야기한다. 물론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도 있다. 일부 그렇더라도 설 민심 전체를 대변할 수 없는 일이고, 작가의 말도 민주주의와 '공존의 기술'을 역설하면서 나온 과정 설명이다. 허나 정치토론이든 토크쇼든 말살과 보복이란 단어에, '처절한 복수의 시간이 왔다' 등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새해 벽두부터 희망이 아니라 복수(復讐)나 보복(報復)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와 황망스럽다. 내란 혐의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 기소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로 온 나라가 분열과 대결로 쑥대밭이니 더 그렇다. 굳이 따질 필요까지는 없지만, 복수는 중립적 의미로 피해를 받은 만큼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고, 보복은 부정적 의미로 상대방의 정당한 행위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행위로 풀이된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정치든 일상이든 숨 막힐 듯한 증오나 끓어오르는 복수는 결국 파멸적 결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상상력의 나래는 영화에서 돋보인다. 복수 3부작으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은 "왜 또 복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복수극은 영원한 인류의 이야깃거리다. (복수 영화를)두 번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는 오·대·수(최민식 분)가 조폭이 운영하는 사설감옥에서 15년만에 풀려나 "넌 도대체 누구냐?"며 그 이유를 밝혀내는 대목은 스릴 만점이다.

13년 복역한 친절한 금자씨(이영애 분)가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는 장면, 자신의 복수를 위해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동진(송강호 분)이 류(신하균 분)을 죽이고 "복수는…나의 것"이라고 중얼거리는 장면. 자기파괴적 복수의 결말이다.

탄핵 정국 속에 정치인들의 복수나 보복이란 말을 들으면서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의 명 재상이었던 오자서가 그의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의 눈알을 파내고 쇠채찍으로 300번을 매질하면서 외쳤다는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일모도원(日暮途遠), 도행역시(倒行逆施)"(날은 저물고 길은 멀어서, 어쩔 수 없이 지름길로 갔다)

고향 친구 신포서가 "자네는 일찍이 평왕의 신하로서 시신을 욕되게 했으니 천리(天理)에 어긋난 일이 아닌가?"라고 꾸짖는 편지에 대한 답장이다. 흔히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는 뜻으로 쓰여지지만, 또 다른 의미로 오로지 원수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가득한 오자서가 세상을 경륜할 만한 큰 재주를 가졌음에도 증오와 원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제 꿈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한탄이기도 하다.

복수가 복수를 낳는 우리 삶의 윤회처럼 정치도 마찬가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일모도원의 교훈을 현재의 대한민국 상황에 빗댄다면 내면의 성찰이나 참회가 없이 그런 행위를 해야만 했다는 당위성만 부각시킨 자기합리화요, 자기변명의 한탄으로 들린다. 또 '국회와 언론이 대통령보다 강한 초 甲'이라는 생각에 부정선거 의혹까지 복수의 윤회에 갇혀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거나 목표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 지 궁금하기도 하다.

복수의 윤회에 대한민국 경쟁력은?

정치혼란 속에 이런 교훈이라면 앞으로를 걱정하는 이도 많다. 탄핵까지 몰고온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대통령의 실패가 정부의 실패로 이어지거나, 또는 대한민국의 실패로 귀결된다면 가만히 지켜볼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체제의 문제라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거나 축소하는 권력체제를 바꿔야 하고, 거대 양당의 승자독식이 문제라면 다당제로의 선거제도를 뜯어 고쳐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대중의 최고위원제나 지방자치, 노무현의 당정분리나 지방분권 등을 볼 때 현 민주당이 최소한의 개헌논의나 지방분권이나 다당제에 대한 소신 등 국민에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본다. 그런데 하필 이 시점에 국민의힘과 비명계가 꺼내든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개헌 이야기라니, 지역에선 역적(?)이 되는 분위기마저 감돈다.

온 국민의 눈과 귀가 탄핵과 재판에 쏠려 분열과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간이 12월부터 두 달이 넘게 흘러가고 있다. '심적 내전상태'라는 말처럼 하루하루가 불편하기 이를 데 없다. 트럼프 발 관세전쟁부터 시간과의 싸움인 AI와 반도체법, 전력 에너지 등 기술혁명에 맞닥뜨린 산업계는 노심초사, 불안의 나날이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K 경쟁력과 대한민국의 재능을 놓치고 기회를 잃어버린 뒤에 '일모도원' 한탄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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