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시대, 만약 킬러로봇이 등장해야 한다면?
하늘을 나는 드론 엔진의 강렬한 소음, 포탄이 터지는 폭발음과 함께 아파트 벽면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인다. 인근 정유시설들은 화염방사기가 내뿜는 불길처럼 높이 치솟고, 동시에 시커먼 연기가 하늘을 뒤덮는다.
지난 9월 20일,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SNS 영상에 공개한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공격 장면이다. 러시아 총선 마지막날을 맞아 쏟아부은 물량공세로, 러시아는 이날 하루동안 드론 1천900대, 항공폭탄 8발, 순항미사일 8발, 로켓 4발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의 대대적 공세에 모스크바 방공망은 뚫렸고, 이에 질세라 러시아는 대규모 보복공격에 들어갔다.
AI와 로봇 전쟁 ‘레드라인’ 넘었다
영상 속 현실 전쟁의 파괴력이나 처참함은 상상 그 이상이다. 추석 연휴에 미국 공군 고위직을 지낸 군사기술 논픽션 작가이자 전략가인 조지 M. 도허티가 쓴 ‘AI 시대, 전쟁의 미래’(김영사.유강은 옮김.2026)를 흥미롭게 읽었다. AI와 로봇의 진화가 미래 전쟁을 어떻게 바꿀 것인 지, 나름의 교훈과 함께 공부의 기회였다.
전쟁은 한번 일어나면 그 영향이 100년간 이어진다고들 한다. 한국전쟁 이후 우리도 마찬가지 사정 아닌가? 풍족한 세상에 살다보니, 우리가 정전(停戰)상태인 분단국가 라는 사실도 깜빡 잊기도 한다. 전쟁의 시작은 쉽고 끝내긴 어렵다. 아니 시작은 쉽지만 승리는 어렵다가 맞을 듯 싶다. 끝날 듯 끝나지 않은 미국과 이란 전쟁이 그렇고, 2022년부터 이어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렇다.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서로가 전략적 패배로 전환하지 않는다. 인명 손실이, 물적 피해가 곧 패배로 직결된다는 전제도 무너졌다. AI가 주도하는 현대전의 특징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타격 대상이고 표적이고 제거 대상이다. 드론으로 3천200㎞가량 떨어진 가스 처리시설을 타격하는 세상이다.
더 섬뜩한 것은 인간의 통제 없이 AI가 스스로 적을 찾아내 공격하는 ‘킬러 로봇’(Killer Robot)이 도덕적 ‘레드라인’(Redline.넘어서는 안 되는 한계선)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남동부 주유소를 타격한 러시아 드론에서 엔비디아 칩이 탑재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칩은 특정 유형의 표적을 구별해 공격하도록 학습된 상태였는데, 문제는 이 공격으로 민간인 3명이 숨졌다는 것이다. 책에서 전쟁은 딥러닝 시스템이 가장 대처하기 어려운 특성들로 이뤄진 것으로 분석한다. 이를 불확실성이 뒤섞인 ‘안개’와 예상치 못한 당혹스러운 요인들인 ‘마찰’로 풀이한다. 민간을 군인으로 오판하는 AI시스템의 불안정성을 말하는 것으로, 킬러로봇의 공포증으로 다가선다.
또 전쟁의 치명적 폐해는 인구에 가해지는 장기적 타격이다. 4년째 이어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는 120만명의 사상자를 낸 것으로 보고됐고, 우크라이나는 인구의 25∼30%를 상실한 것으로 전해졌다. 젊은 남성들이 보이기만 하면 차출되거나 강제징집돼 노동력이 고갈되고 경제동력을 잃게 되는 악순환이다.
지난 8월 우크라이나가 35주년 독립기념일을 맞아 수도 키이우에서 벌인 열병식은 세상 놀랍기 그지없다. 말 그대로 군인이 보이지 않는 세계최초 무인 열병식이다. 병사들의 행진이나 전차의 등장 대신 하늘을 집단으로 비행하는 대규모 첨단 드론과 총포로 무장한 무인 군용차량, 자폭용 무인 수상정에 지상 로봇부대가 퍼레이드를 펼친다. ‘세계최초 드론 주도 전쟁’이란 수식어처럼 AI를 장착한 수백 수천대의 소형 드론으로 이뤄진, 드론 라이트쇼처럼 드론 스웜(swarm)이 미래 군사시스템으로 다가온 것이다.
반도체 특별시, AI윤리에 대한 책무
책의 원제목은 ‘기계 속의 야수’(Beast in the Machine)다. ‘기계에 옮겨진 인간의 폭력성과 통제 불능의 위험’을 뜻하는 비유다. AI 무기가 적절한 인간의 감독과 판단, 정당한 무력 사용이라는 기준에 따라 활용되지 않을 때 닥칠 위험에 대한 경고다. 책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독재정권들이 로봇무기와 군사용 AI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한다면 로봇과 AI윤리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우려는 무의미해질 것이다.”
러시아 드론에서 확인된 엔비디아 칩, 그 엔비디아와 삼성전자는 AI 칩에 들어가는 고대역폭 메모리와 위탁생산 등을 함께하는 협력관계다. 반도체 특별시를 꿈꾸는 우리도 군사, 안보를 부정하거나 방관할 수 없는 일에 처했다.
AI와 반도체, 에너지 등 초광역 전략산업 생태계 구축으로 대한민국 첨단산업 중심지로 대전환하려는, 그것도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까지 배출한 고장인 전남광주특별시가 그 혁신을 이끌거나 의제를 좌우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 머문다. 그래서 만약 킬러로봇이 등장해야 한다면, 차라리 어떤 나라보다 한국의 킬러로봇인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그 세계평화 선도의 중심에 K민주주의의 심장부, 반도체 특별시 광주전남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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